<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등을 연출한 김상진 감독은 감독 데뷔 전, 강우석 감독 밑에서 각본가와 조연출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따라서 김상진 감독의 영화에는 '사수'인 강우석 감독의 색깔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관객들도 있지만 김상진 감독은 사수의 장점을 잘 흡수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힌다.

오는 26일 신작 <밀수> 개봉을 앞두고 있는 류승완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영화들을 섭렵하다가 감독으로 데뷔한 '성공한 영화덕후'다. 류승완 감독 역시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하기 전 박찬욱 감독의 < 3인조 >와 곽경택 감독의 <닥터K>에서 연출부로 일하며 현장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에선 박찬욱 감독이나 곽경택 감독의 색깔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충무로에서는 선배감독 밑에서 스태프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다가 자신의 영화를 만들며 데뷔하는 것이 감독이 되는 정석 코스 중 하나다. 2017년 <택시운전사>를 연출하며 천만 감독이 된 장훈 감독 역시 고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에게서 독립해 만든 첫 번째 영화 <의형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가진 감독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장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였던 <의형제>는 전국 550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였던 <의형제>는 전국 550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주)쇼박스
 
독립 후 만든 첫 영화로 청룡 작품상 수상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장훈 감독은 2001년 <헤라 퍼플>과 2004년 <신부수업>에서 연출부로 일하다가 같은 해 김기덕 감독의 <빈 집>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소위 '김기덕 사단'의 일원이 됐다. 2005년과 2006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활>과 <시간>에서 조연출로 참여한 장훈 감독은 2008년 김기덕 사단에 합류한 지 4년 만에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장편 데뷔작을 선보였다.

소지섭과 강지환이라는 인기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하며 영화 제작에 많이 관여한 영화로 20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 전국 13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데뷔작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색깔을 거의 보여주지 못한 장훈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를 끝으로 김기덕 사단을 떠나 독립했고 2010년 신작 <의형제>를 선보였다.

장훈 감독의 독창적인 색깔이 많이 묻어난 실질적인 데뷔작 <의형제>는 충무로 최고의 흥행파워를 가진 송강호와 미남배우 강동원을 앞세워 전국 55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의형제>는 액션과 첩보, 드라마를 적절히 섞은 장훈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이 호평을 받으면서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장훈 감독 역시 <의형제>를 통해 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의형제>의 성공 이후 한 박자 쉬어갈 법도 했지만 장훈 감독은 이듬 해 곧바로 한국전쟁 후반에 있었던 가상의 애록고지 전투를 배경으로 한 신작 <고지전>을 선보였다. <고지전>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와 개봉시기가 겹치며 전국294만 관객에 머물렀다. 하지만 <고지전>은 '충무로 전쟁영화의 진화(고 김종철 평론가)'라는 극찬과 함께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고 장훈 감독은 2년 연속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고지전> 이후 약 6년의 공백을 가졌던 장훈 감독은 2017년 <말모이>의 엄유나 감독이 각본을 쓴 신작 <택시운전사>를 연출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운행을 온 택시기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택시운전사>는 송강호와 유해진, 류준열 등 배우들의 열연과 장훈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지면서 전국 1218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장훈 감독은 <택시운전사> 이후 6년째 신작을 선보이지 않아 관객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대중성' 갖춘 장훈 감독
 
 <의형제>에서는 송강호가 국정원 요원, 강동원이 남파간첩을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의형제>에서는 송강호가 국정원 요원, 강동원이 남파간첩을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주)쇼박스
 
지난 2017년에 개봉했던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에서는 미남배우 정우성이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를, 곽도원이 남한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를 연기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배우들을 평소 이미지와 다른 역할로 캐스팅해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역캐스팅'을 극복할 수 있는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와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탄탄한 각본, 그리고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장훈 감독은 <의형제>에서 송강호를 해고된 남한의 국정원 요원 이한규 역에, 강동원을 북한의 남파공작원 송지원 역에 캐스팅했다. 누가 봐도 역할이 바뀐 듯한 캐스팅이었다(심지어 송강호는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을 연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송강호와 강동원은 관객들이 '역캐스팅'이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챌 수 없도록 역할에 녹아 들어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의형제>를 통해 드러난 김기덕 감독과 장훈 감독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대중성'이었다. 김기덕 감독이 '보고 싶은 사람만 보라'는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장훈 감독은 관객들이 이야기를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 특히 서로를 감시하며 경계하던 이한규와 송지원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은 과연 <의형제>가 장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노련한 연출이 돋보였다.

초반부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한규와 그림자(전국환 분)가 벌이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추격전 역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장훈 감독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물론 <의형제>의 추격전은 마이클 베이 감독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추격전 만큼 화려하진 못하다. 하지만 <의형제>에서는 대한민국의 도로와 골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더욱 현실감 넘치는 추격전을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여러 장면과 연기가 있었지만 <의형제>에서 관객들을 가장 찡하게 했던 장면은 이한규와 송지원이 함께 송지원 어머니의 차례를 지내는 장면이었다. 한국에서 명절이나 기일에 조상들께 드리는 차례는 가족과 친척들끼리 하는 행사다. 그런 차례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한규가 송지원의 차례를 준비하고 함께 지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따로 맹세하지 않았어도 서로를 '의형제'로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실감나는 연기로 관객들 혼란스럽게 한 배우
 
 고창석은 베트남 조직의 보스 연기를 실감나게 소화하며 본의 아니게 관객들에게 큰 혼란을 줬다.
고창석은 베트남 조직의 보스 연기를 실감나게 소화하며 본의 아니게 관객들에게 큰 혼란을 줬다.(주)쇼박스
 
70년대부터 연극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전국환 배우는 80년대부터 드라마, 2000년대부터는 영화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젊은 대중들에게는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현빈 분)의 아버지인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연기했던 배우로 유명하다. 전국환 배우는 <의형제>에서 북한의 킬러이자 영화의 최종보스 그림자를 연기했는데 그림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변절한 남파간첩과 그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극악무도한 인물이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김성균이라는 배우가 등장했을 때 대중들은 "아무리 리얼리티가 중요하다지만 정말 건달을 캐스팅했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영화의 신스틸러로 친근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고창석도 <의형제>에서 베트남 조직 보스를 맡았을 때 그가 진짜 베트남 배우라고 착각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고창석은 <영화는 영화다>부터 <택시운전사>까지 장훈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에 출연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 중반 영화와 드라마 쪽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윤희석은 <의형제>에서 동료들을 배신한 남파간첩 손태순 역을 맡았다. 숨어살던 자신을 찾아온 송지원에게 구타를 당하던 손태순은 송지원에게 국정원에서 해고된 이한규가 개인적으로 자신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하지만 손태순은 배신자 처리를 위해 다시 남한으로 넘어온 그림자에 의해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 당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의형제 장훈 감독 송강호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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