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온 파이어 포스터

▲ 노트르담 온 파이어 포스터 ⓒ 찬란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은 현대의 수많은 재난사고와 관련하여 가장 훌륭한 법칙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는 흔히 1:29:300의 법칙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대형 참사는 29번의 작은 사고, 다시 300여 번에 이르는 징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지면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타이타닉 잠수정 실종사고는 물론, 한국사회를 참담하게 했던 여러 참사들도 하인리히의 법칙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고 뒤 속속 들려오는 여러 이야기들은 세상의 많은 재난이 결국 그 징후를 제때 포착하고 해소하지 못한 인간의 잘못임을 일깨우고 마는 것이다.
 
2019년 4월 15일,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한다. 불에 탄 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와 현대 교회의 대표적 명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이곳은 그저 유명 관광지일 뿐 아니라, 국보급 보물 일천여 점이 보관된 곳으로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 중 가시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 당시 썼던 기독교도들의 성물로, 예루살렘에서 발견돼 콘스탄티노플에 보관하던 것을 프랑스왕 루이 9세가 동로마 제국 황제 보두앙 2세에게 산 것이다. 그 가격 또한 놀라운데, 몇몇 성물을 더하여 무려 13만 5000리브르, 당시 프랑스 왕실 수입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였다.
 
불타는 대성당, 가시면류관을 구하라
 
노트르담 온 파리 스틸컷

▲ 노트르담 온 파리 스틸컷 ⓒ 찬란

 
어렵게 구한 성물은 질풍노도의 프랑스 역사 가운데서도 온전히 보전되었다가 19세기 초 파리의 한 곳에 새로 둥지를 트니 그곳이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이로써 파리와 노트르담 대성당은 예수의 육신에 직접 닿았던 성물을 보관한 장소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대성당이 보관한 가장 귀한 것, 심지어는 대성당 그 자체보다도 훨씬 더 귀한 것이 이곳에 놓인 가시면류관인 이유다.
 
그런 대성당에 불이 났으니 프랑스 사회가 뒤집어질 밖에 없다. 작은 불도 아니고 성소 전체를 휘감고 속한 모든 것을 태울 법한 큰 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화재로부터 프랑스 소방당국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전소와 붕괴를 막아냈고, 그 안의 귀한 보물 또한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불이 났고, 또 이를 막아낼 수 있었던 걸까. 바로 이것이 이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의 관심이다.
 
화재의 시작은 징후를 알아채지 못한 부주의, 그 부주의를 낳은 사회적 맹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노트르담 성당의 야간 시설 당직자의 출근이다.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으로 보이는 그는 이날이 첫 출근으로, 이틀 동안 두 시간의 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를 두고 퇴근하는 책임자는 그에게 공용 작업복을 내어주는데, 그는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게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성실하게 홀로 제 당직시간을 지킨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이 난 이유
 
다음날 저녁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다름 아닌 책임자, 그는 당직자에게 저녁 당직자가 갑자기 못 오게 되어 저녁까지 당직을 서달라고 말한다. 어떻게 잡은 일자리인데 놓칠 것인가, 그는 알겠다고 말하고 잔뜩 화가 난 아내를 설득한다. 그리고 불은 그날 저녁 일어난다.
 
처음은 알람이다. 갑자기 경보알림이 울리고 화들짝 놀란 당직자는 매뉴얼에 따라 알람을 확인하고 익숙지 않은 불어로 알람에 뜬 장소를 경비에게 읽어준다. 경비는 곧장 성당 다락으로 가보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경비는 성당 설비가 낡아 알람이 오작동하는 일이 자주 있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다.
 
그래도 꺼지지 않은 알람에 당직자는 어딘지 마음이 쓰이는 눈치다. 그는 다시 퇴근한 제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전화를 받은 상사가 경비에게 전화를 거니 당직자가 읽어준 대로 가본 곳과 알람이 울린 곳이 다르지 않은가. 다락은 다락이되 성당 다락이 아닌 종탑이 있는 성소 다락이었던 것이다. 전화를 끊고 경비가 이곳에 올라가 보니 이미 불이 커져 있었다.
 
줄어든 사람만큼 위험은 커진다
 
노트르담 온 파리 스틸컷

▲ 노트르담 온 파리 스틸컷 ⓒ 찬란

 
영화는 이처럼 화재가 처음 시작되고부터 소방대가 출동하여 이를 진압하기까지의 과정을 차근히 보여준다. 설비를 점검하지 않아 곳곳이 고장이고, 훈련이 부족하여 대처 또한 부실하며, 소방대의 진입이 어려운 도심의 상황, 도움도 안 되는데 다짜고짜 방문하는 대통령, 협조가 부족한 시민의식 등 온갖 문제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이 대부분이 실제 사건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영화를 감독한 장 자크 아노가 화재가 발생한 그해 겨울 자료를 받자마자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라 전한다. 제작진은 그날로부터 350여 명의 성직자, 소방관, 목격자 등을 인터뷰했다하니 이 영화가 그저 극영화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다.
 
수많은 문제의 연속 가운데 영화가 주목한 첫 장면은 각별히 인상적이다. 작업복을 입는 일을 해본 적도 없이 단 두 시간 교육을 받고 출근한 당직자의 상황은, 다시 그와 교대할 다른 당직자가 급하게 출근하지 않는 사건과 연결된다. 처우가 열악하니 불어가 익숙지 않은 이민자가 오게 되고 그 비용마저 아까워서 둘이 아닌 하나만 고용한다. 그러니 작은 불도 즉각 알려주는 좋은 설비가 있어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장비만 설치해두고 이를 돌리는 사람은 감축하고 비용을 줄이는 이 같은 행태는 비단 프랑스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또한 곳곳에서, 그야말로 온갖 곳들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름 모를 노동자들이 끼어 죽고 깔려 죽고 떨어져 죽는 온갖 일터에서, 당신과 나의 일터에서 말이다.
 
수도 복판에서 국보를 태운 나라, 그들 뿐이랴
 
노트르담 온 파리 스틸컷

▲ 노트르담 온 파리 스틸컷 ⓒ 찬란

 
징후는 사고로, 사고는 참사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 영화 속 화재 또한 다르지 않아 수많은 경보와 낡아가는 설비는 마침내 파리 최고의 보물 중 하나인 가시면류관을 태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파리의 사람들은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으니, 그것이 이 영화가 또한 말하고자 하는 바다.
 
세상의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기실 그건 틀린 말이다. 누군가는 사회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또 누군가는 저를 희생하여 남을 안녕하게 하는 법이다. 이 영화는 그와 같은 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파리를 지키는 귀한 사람들을 영화를 통해서나마 응원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테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태웠으나 완소와 붕괴를 막고, 보물을 지킨 것이 오늘의 프랑스다. 제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일어섬을 응원하는 이 영화 또한 역시 프랑스의 산물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수도 한가운데서 국보가 타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오늘의 한국 사람들에게 오늘의 프랑스를 말하는 이 영화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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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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