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김형욱 부부가 함께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고 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처방해 드립니다.[편집자말]
경기도의 모 대학에 재직할 때였다. 학습상담 기간에 한 학생이 찾아왔다. 국어국문학과 학생이었는데, 별안간 자신의 학습 문제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강의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집중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곧 그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전공이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완전히 이과 성향이었지만 문과에 입학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에서 여러 번 수상했을 정도로 이과 과목에 소질이 있었다고 했다. 하여 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의 관심이 보통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학원을 몇 개나 다니며 진도를 빨리 빼더니 대학 수학까지 배워야 한다고 압박했다.

시험 때 한두 문제라도 틀리면 부모님이 나무랐고, 더 잘할 수 있는데 못 하냐며 타박했다. 그는 더 이상 숫자도 보기 싫어졌다고 했다. 성적은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과학고에 진학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일반고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때는 수학·과학에 완전히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2학년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야 했을 때는 단지 수학과 과학을 더 이상 하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과에 지원했다고 한다. 대학과 전공은 그냥 성적에 맞춰 왔고 말이다. 그에게 국어국문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지인의 건너 아는 분의 자제가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해서 내게 조언을 구한 적도 있다. 졸업을 앞둔 그는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대학원 진학과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헤어졌다. 나는 그때 그 학생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비범하다고 생각했다. 촉이 나름 적중했다.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영재를 발굴한다는 모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 영재 출신이었다. 수학과 언어 능력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와 호기심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대학교도 성적도 전공도 모두 평범했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의 부모님은 자식이 영재라는 걸 알고는 그 재능을 더욱더 키워주고 싶었다고 한다. 영재 교육기관들에 찾아가고, 각종 좋다는 교육은 다 시켜줬다. 하지만 아이에겐 큰 부담이었을까, 아이는 점차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나오는 편이라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과의 격차가 좁혀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선 공부를 해야 성적이 유지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학교 시험쯤은 문제없던 터라 다시 공부에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영화 < 4등 >과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경우
 
 영화 <4등> 포스터.

영화 <4등> 포스터. ⓒ ㈜프레인글로벌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 4등 >이 떠오른다. 12살 재상이는 오늘도 엄마 손에 이끌려 수영장에 간다. 수영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재능도 있고 매일 훈련을 하는데 대회만 나가면 늘 4등이다. 엄마는 만년 4등이라며 재상이를 나무란다. 그저 좋아서 수영을 시작했던 재상이는 이제 수영이 싫어지려고 한다.

엄마는 엄마대로 답답하다. 재상이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은 오히려 엄마다. 이른 시간부터 수영장에 재상이를 데려다주고, 더 좋은 코치와 훈련 방법을 찾아보느라 바쁘다. 결국 재상이가 수영을 그만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한다. "엄마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네가 무슨 권리로 너 혼자 수영을 그만둬?"라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 수영을 하는 것은 재상이인데, 왜 엄마가 더 열심히 해야 했는지. 엄마가 열심히 하는 것이 재상이의 수영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걸까. 재상이 엄마는 재상이에게 물고기 뿐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도 모두 가르쳐주었는데, 오히려 재상이는 더 이상 수영이 하기 싫어졌다.

엄마가 수영을 하도록 만들지 몰라도, 진짜 수영을 해 내는 것은 재상이 자신이다. 결국 수영을 왜 하고 싶은지, 왜 더 잘하고 싶은지, 노력하는 것은 재상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해답은 자발적인 동기유발에 있다. 동기는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들고,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다. 동기는 다양하게 유발될 수 있다. 엄마의 당근과 채찍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동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동기이다.
 
재상이네 상황과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의 사야카다. 그녀는 성적 최하위이자 문제학생이다. 심지어 무기한 정학을 받게 되어 대학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사야카는 엄마의 권유로 입시학원에 상담을 가게 되고, 일본 최상위 대학인 게이오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목표를 스스로 정한다. 동서남북도, 영어단어도 전혀 모르는 꼴찌 사야카는 혼신의 노력 끝에 게이오 대학 합격증을 거머쥔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이라면, 사야카의 엄마가 그녀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나 강요를 않는다는 것이다. 사야카가 게이오 대학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된 것도, 친구를 만날 때나 늦은 밤까지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된 것도 어느 누구의 회유나 강요가 아니었다. 사야카가 목표를 이루는 데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사야카의 엄마, 아카리와 세이호 입시학원의 츠보타 선생님의 역할이다. 그저 스스로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돕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응원해준 것뿐이다.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포스터.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포스터. ⓒ 글뫼

   
아이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다. 아이에게 다양한 자극과 경험들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흥미를 찾도록 해줄 수 있다. 또 아이 스스로 무엇을 배우고 공부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공부하고 싶게 도와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가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만났다면,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를 교육한다는 건 뭘까. 아이를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변화는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변화의 대상인 아이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손과 발을 움직여 무언가 해내야만 한다.

많은 부모가 으레 그러는 것처럼 아이에게 떠먹여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스스로 힘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과정이기에 그렇다. 그러니 쉽고 편하게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거짓일 확률이 높다. 그런 방법은 내가 아는 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고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물고기를 잡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이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나갈 것이다.
 
부모를 위한 영화 처방전

아이를 교육시키며 부모가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과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는 왜 집중을 잘하지 못할까?', '우리 아이는 왜 책상에 앉는 걸 싫어할까?',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왜 성적은 좋지 않을까?', '저녁마다 앉아 공부를 하는데, 왜 물어보면 모른다고 할까?', '분명 다 아는 거라는데, 왜 시험만 보면 틀릴까?', '누구는 공부를 재밌어서 한다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어릴 때부터 올바른 공부습관을 들여줘야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 공부를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속 시원히 물어볼 곳 없는 질문들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으면 한다.
 
아이를 교육하면서 만나는 궁금증이나 문제들을 영화 속 상황에 빗대어 담아내려 했다. 다양한 장르에서 교육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또한 여러분이 마주한 상황이나 어려움이 비단 여러분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영화는 허구이지만 현실에 기반한다. 보여주는 방식이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가'와는 별개로 현실에 있는 문제와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누군가가 마주하거나 고민했던 상황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과정을 짧은 시간에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온전히 보여줄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인물의 다양한 모습들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으면 어쩌지' 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변화는 어려운 일이지만, 교육은 변화시키는 일 그 자체이니까 말이다.
아이 공부 부모 역할 영화 처방전 4등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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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배우는 방법과 잘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선생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수업 컨설팅 및 학습 컨설팅 자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학습 상담과 학습 프로그램 운영, 교육 콘텐츠 기획과 개발 그리고 연구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했습니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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