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들은 다음 시대가 예약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예약일 뿐, 미리 당겨 쓰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이들은 예약된 권력은 크지만 현재 쓸 수 있는 권력은 한정된 사람들이었다.
 
'예약된 권력'과 '현재의 권력' 사이의 그 같은 갭은 이들의 신변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차이는 이들에 대한 도전을 현직 군주에 대한 도전보다 쉬운 것으로 만들었다. 세자가 즉위하면 자신들이 불리해질 거라고 믿는 세력은 '예약'을 취소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도전했다. 세자들은 그런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
 
tvN 사극 <청춘월담>의 세자 이환(박형식 분)도 그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는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의 동향에 항상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제1회 때의 사냥 장면에서도 묘사됐듯이,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는 예약된 권리가 소멸되지 않도록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주 위험에 노출되는 세자
 
 tvN <청춘월담> 한 장면.

tvN <청춘월담> 한 장면. ⓒ tvN

 
이 드라마 속의 세자와 똑같지는 않지만, 조선 제12대 주상인 인종 이호(李峼)도 세자 시절 그런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그가 열두 번째 생일 때 겪은 사건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눈들을 의식하며 살아야 했던 그의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인종이 태어난 날은 음력으로 중종 10년 2월 25일(양력 1515년 3월 10일)이다. 만 12세가 된 중종 22년 2월 25일(1527년 3월 26일), 그는 기괴하고 끔찍한 생일 선물을 받았다.
 
음력으로 그해 3월 22일자 <중종실록>은 사지가 찢기고 불에 태운 쥐가 그 선물이었음을 알려준다. 그 선물이 그의 침실 창문 밖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불태운 쥐가 사용됐다 하여 작서(灼鼠)의 변으로 불리는 사건이 그의 생일에 일어났던 것이다.
 
어린 세자를 저주하고 위축시키려는 못된 어른들의 장난이었다. 12세 된 세자의 신하로 예약된 자신들의 운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 윤씨는 인종을 낳고 엿새 뒤에 세상을 떠났다. 1515년에 사망한 장경왕후의 뒤를 이어 그의 7촌 조카뻘인 문정왕후가 2년 뒤 새로운 중전이 됐다.
 
어린 세자를 지켜주는 힘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서 더 강력하게 나왔다. 아버지는 새로운 왕후가 낳은 왕자로 세자를 바꾸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다. 친척이 새어머니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생후 6일 만에 강력한 후원자를 잃은 인종의 앞날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인종에게 작서가 생일 선물로 배달됐던 것이다.
 
인종이 세자가 되고 7년 뒤에 발생한 이 사건은 중종의 후궁인 박경빈(경빈 박씨)의 소행으로 정리됐다. 박경빈과 아들 복성군은 작위가 없는 서인(庶人)으로 강등됐고, 그 뒤에 사약을 받았다. 작서의 변 5년 뒤, 옛 권신 김안로의 아들인 김희가 벌인 일이라는 상소문이 중종에게 제출됐다. 박경빈이 진범이 아니라는 폭로가 뒤늦게 나온 것이다.
 
세자인 인종의 처지는 갈수록 열악해졌다. 19세 때인 1534년에 새어머니가 아들을 낳은 뒤로 더욱 그랬다. 훗날 명종으로 불릴 그의 이복동생이 열 살 정도 됐을 때는 문정왕후 윤씨를 중심으로 소윤 세력이 형성됐다. 이 세력은 장경왕후 윤씨의 소생인 인종을 옹호하는 대윤과 권력투쟁을 벌였다.
 
인종이 세자가 되고 14년 뒤에 명종이 태어났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19세였다. 그래서 명종이 인종을 제치고 왕이 되는 것은 확률이 높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문정왕후와 윤원형 남매를 중심으로 차기 대권을 겨냥한 소윤 세력이 형성됐다. 인종의 예약된 권력을 지켜주는 힘이 그만큼 약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종의 거처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인종이 28세가 됐을 때의 일이다. 중종 38년 1월 7일자(1543년 2월 10일자) <중종실록>은 "불 기운이 매우 왕성했다"고 보고한다.
 
화재가 발생한 동궁전의 주인이었던 것에 비하면, 사건 당시 인종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위 실록은 영의정 윤은보 등이 주상 비서실인 승정원에 세자의 소재를 묻자, 승정원 승지가 "창졸간이라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보고한다. 동궁전에 불이 났는데도 세자의 소재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종이 화재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의 처지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화재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문정왕후를 지목하는 소문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중종은 세자의 신변을 위협하는 중대 사건이었는데도 이를 덮는 데 치중했다. 그해 2월 24일자(1543년 3월 28일자) <중종실록>에 따르면, 그는 궁녀의 실화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덮으려 했다.
 
누가 인종을 위협하는가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차 명확해졌다. 새어머니인 문정왕후가 핵심 몸통으로 점점 부각됐다. 문정왕후가 어머니라는 지위와 소윤의 힘을 앞세워 전처소생인 인종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있다. 인종이 중종을 이어 왕이 된 뒤에도 문정왕후가 인종을 압박한 사실이 그것이다.
 
문정왕후가 죽은 날의 상황을 다룬 명종 20년 4월 6일자(1565년 5월 5일자) <명종실록>은 중종이 죽은 뒤에 인종이 문정왕후에게 극진하게 효도를 하는데도 문정왕후가 인종을 원망하는 일이잦았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문정왕후가 "우리 가문을 살려달라"며 인종을 괴롭히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tvN <청춘월담> 한 장면.

tvN <청춘월담> 한 장면. ⓒ tvN

 
'예약된 권력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인종
 
위 실록은 그로 인해 인종이 가슴의 답답함을 느끼며 번민에 빠졌다고 말한다. 여기다가 부친상으로 과도하게 슬퍼한 것까지 함께 작용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실록은 말한다.
 
인종이 재위한 기간은 양력으로 1544년 12월 4일부터 1545년 8월 7일까지다. 29세의 군주가 불과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데는 문정왕후와의 갈등으로 인한 심리적 요인도 작용했다는 것이 <명종실록> 사관의 분석이다.
 
인종이 세상을 떠나자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즉위했고, 실권은 문정왕후에게 넘어갔다. 문정왕후는 즉위 당시 11세였던 친아들을 대신해 8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문정왕후는 그 8년이 흐른 뒤에도 권력를 내주지 않았다. 그의 권력 행사는 사망 연도인 1565년에야 끝났다.
 
인종은 자신에게 예약된 권력을 8개월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그 권력은 문정왕후에게 돌아갔다. 예약된 권력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인종은 세자 시절에 항상 위협을 받았고, 그 위협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이는 그의 정치 생명뿐아니라 육체적 생명까지도 단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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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 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antijapan1910.com).제15회 임종국상..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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