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EBS <다큐 프라임>을 보면, 그해의 담론을 알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EBS <다큐 프라임>은 새로운 이야기로 2023년을 연다. <다큐 프라임>이 준비한 건 '저출생보고서'이다. 3부작에 불과하지만, 2021년부터 준비를 시작했단다. 사례자 140여 명, 1년 여의 촬영 기간을 걸쳐 2023년을 여는 이야기가 준비되었다. 

10년 전에 비해 절반 정도도 안 된다. 결혼 이야기다. 30대 중 50%가 비혼을 생각해 본다고 한다. 2021년 출산율 0.81명, 다음 해는 더 줄어 0.79명이다.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20대에서부터 40대 초반에 이르는 이른바, MZ 세대는 반문한다. 출산율이 나날이 줄어 심각? 그런데 출산율에 기여하기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 않은가? 민족 중흥을 위해 결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더는 결혼과 출산이 당연한 통과 의례가 아니라고 그들은 당당하게 주장한다. 
     
부모 세대와는 다른 선택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 EBS

 
카피라이터 정송이(31)씨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설봉주(37)씨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동거 커플이다. 3년쯤 사귀던 그들은 '같이 살아보자'고 의기투합, 함께 지내고 있다. 만약 결혼을 하면 지금 이 사람과 하겠지만, 굳이 서류상 과정인 결혼까지 할 이유를 두 사람은 찾지 못한다. 서로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나봤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여 상대방의 가족까지 감당해야 할까 싶다. 

동거, 유일하게 불편한 점이라면 타인의 시선? 그래서 굳이 '동거'라는 말 대신, '같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정작 동거를 공표하자, '하고 있었어'라는 주변의 반응처럼 말은 안 했지만 사실 많이들 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친구들 역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든가, 결혼 전에 동거를 해보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이들의 반응처럼 2022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5.2%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응답했다. (만 13세 이상 약 3만 6000명 대상)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자녀들인 MZ 세대, 그들의 부모 세대는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통과 의례려니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며 갖은 노력을 다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들의 자녀들은 그런 부모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다.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 EBS

 
29세의 현철승씨는 25년째 경찰 공무원을 하던 아버지 현기석씨의 뒤를 이어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다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도전하면 할 수 있어'라며 안정적인 공무원의 삶을 독려하지만 아들은 나중에라도 공무원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한다. 그러면 돌아오는 질문은 하나다. '뭐해 먹고 살 건데?' 그러면 아들은 말한다. 개인 방송을 하며 나답게 살아봐야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 게 아니냐고. '안정'을 물려주고픈 아버지와 지금의 행복을 중요시 여기는 아들은 평행선이다. 아버지는 안정을 찾아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지만, 당연히 아들에게 결혼은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한 후 언젠가 여유있을 때 생각해 볼 문제일 뿐이다. 

MZ 세대들은 한 술 더 떠서 아이를 낳는 게 무책임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 일자리와 주거가 불안정한 시절, 미래에 대한 비전도 불명확한 세상, 심지어 환경 오염은 갈수록 극심해져 가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행복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무엇보다 상황이 갖춰지지 않았어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던 부모와 달리, 조건이 갖춰졌을 때 결혼도, 육아도 생각해 보겠단다. 아니 자신의 삶에 결혼이나 출산이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비혼 등을 선택하겠다는 게 요즘 세대의 입장이다. 
     
결혼? 출산? 삶의 한 형태일 뿐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 EBS

 
35세의 게임 마케팅 기획자인 김주은씨에게 중요한 건 삶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만, 일 외에 독서 모임이라든가, 스터디처럼 생산적 삶을 루틴으로 삼아가려 하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미래에라도 아이는 안 가질 것이라고 단언하는데, 그 이유가 아이가 삶의 선택지를 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감정적 에너지가 보상 받거나,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 한다면 그로 인한 허무감을 감당하지 못 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토로한다. 

42세의 김승일 시인의 경우 어린 시절 학교 폭력을 경험했고 이를 자신의 시로 승화시켰다. 결혼 7년 차 아이를 갖지 않은 이들 부부, 김 시인은 말한다.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에게 폭력과 왕따를 당한다면 자신은 정말 견뎌내지 못 할 것 같다고. 시어머니는 '그래도 아이는 있는 게 좋지 않겠니?'라고 넌지시 말하고, 아이들 중심으로 흐르는 친구들과의 모임은 적조해져간다. 하지만 김 시인과 아내 심선화씨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는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어른답게',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출생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여름의 문> 저자 가와카미 미에코는 아이의 출생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전 양해도 없이, 의논도 없이, 키우고 싶다, 낳고 싶다는 부모들의 의지만으로 세상에 덜컥 던져진 아이들의 출생권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 EBS

 
다큐의 프리젠터로 등장한 안현모씨 역시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를 낳지는 않았다. 출산 경계선의 나이에서 배아를 냉동해 놓았지만, 그녀는 아직 출산을 '선택'하지 않았다. 49세의 백지선씨는 2006년 개정된 입양법에 의거 두 딸을 입양했다.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모르는 아이들과도 함께 가족을 만들어 살 수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결혼 성공률보다 입양 성공률이 더 높은 게 현실이다. 아빠는 필요없다는 두 딸, 그녀의 보물단지들이다. 

다양한 출연진들처럼 이제 MZ 세대들에게는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거나, 출산을 하는 건 그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형태들일 뿐이다. 
     
개인주의와 소비 지상주의의 고도 자본주의 사회, 안 낳거나 적게 낳는 흐름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분석도 등장한다. 전근대 사회가 '아이'가 자산의 가치로써 의미가 있었다면, 이제 더는 아이를 낳아, 그 자녀에게 노후를 기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사회, 그리고 복지 제도로 인해 아이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저출산은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조엘 코엘 교수는 타인이나 부모의 말이나 관습에 따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던 통과의례로서의 결혼이나 출산을 넘어, 스스로 결정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MZ 세대의 삶이 '엄청난 성공'이라고 진단한다. 스스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여겨온 기성 세대와는 다르게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것이다.  즉, 왜 결혼을 안 해? 왜 아이를 안 낳니?라는 질문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MZ 세대들의 삶을 보아야 한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 프라임>의 한 장면. ⓒ EB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저출생보고서 인구에서 인간으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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