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야구예능 <최강야구>에서 활약했던 단국대 내야수 류현인은 안정된 수비와 의외의 타격실력을 뽐내며 지난 9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202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kt 위즈에 지명을 받으면서 프로진출에 성공했다. 류현인이 <최강야구> 고별전에서 2루타가 빠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자 최강 몬스터즈의 단장인 장시원 PD는 류현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kt가 주기로 한 계약금과 연봉의 3배를 제시하기도 했다.

류현인은 대학리그에서도 4할대의 맹타를 휘두르는 공수를 겸비한 좋은 선수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고교 유망주들이 프로로 직행하기 때문에 대학야구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최강야구>에서 보물 같은 선수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류현인이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70번째로 이름을 불린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류현인은 4년 전 진흥고 졸업 당시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대학 진학을 선택한 바 있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하기 전 대학을 거치는 게 당연했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대학야구의 위상이 지금과는 달랐다. 수억대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진출하는 특급 유망주들은 대부분 대졸선수였고 각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유망주를 영입하기 위한 대학 야구부들의 스카우트 경쟁도 대단히 치열했다. 지난 2007년에 개봉한 임창정 주연의 영화 <스카우트>는 1980년 초고교급 투수 선동열을 영입하기 위한 대학야구 스카우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스카우트>는 '포스터가 안티'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포스터가 영화의 내용 및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스카우트>는 '포스터가 안티'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포스터가 영화의 내용 및 주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CJ ENM
 
야구 관련 직업은 '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198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을 시작으로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사용, <퍼펙트게임>의 고 최동원과 선동열까지. 한국에서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야구영화들은 대부분 그라운드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하나의 야구리그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선수들 외에도 빛나지 않는 곳에서 야구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야구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했던 전미 여자프로야구리그의 이야기를 그린 페니 마샬 감독의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부상 때문에 몰락하고 여자야구팀 감독으로 부임한 왕년의 홈런왕 지미 듀간(톰 행크스 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인생을 자포자기하며 폐인처럼 살아가던 듀간이 열정이 넘치는 여자야구 선수들을 보면서 야구에 대한 애정을 되찾는 과정은 여느 남자선수가 주인공인 야구영화 못지 않게 흥미롭다.

임창정과 고소영, 차승원이 출연했던 1998년작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임창정이 연기한 주인공 범수의 직업은 바로 야구심판이다. 물론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야구심판들의 애환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야구심판과 톱스타의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다. 하지만 소재가 소재인 만큼 영화에서 야구장면이 다뤄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는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용 감독과 김성한 코치가 카메오로 출연해 영화를 빛냈다.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며 관중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선수들이지만 매년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려가는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단장이다. 미남배우 브래드 피트가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을 연기하며 화제가 됐던 할리우드 영화 <머니볼>은 야구팬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단장이라는 직업의 애환과 매력을 잘 보여준 영화였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통해 프로야구 단장이라는 직업이 소개된 바 있다.

사실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단장도 아닌 바로 야구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주는 팬이다. 1996년에 개봉한 로버드 드니로와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더 팬>은 삐뚤어진 야구사랑으로 본인은 물론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야구선수가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준 스릴러 영화다. 비록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야구소재의 영화다.

코믹한 포스터에 현혹되면 안 되는 영화
 
 <스카우트>에서는 '어린이 이종범'이 주인공 호창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가상의 설정이 등장한다.
<스카우트>에서는 '어린이 이종범'이 주인공 호창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가상의 설정이 등장한다.CJ ENM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던 1980년의 광주에는 초고교급 투수 선동열이 있었다'.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야구광인 김현석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모두 담당한 <스카우트>는 몇 개의 우연이 겹쳐 생긴 저 한 문장의 '팩트'에 김현석 감독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작품이다(김현석 감독은 도입부에 "이 영화는 광주 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의 이야기다. 그리고 99%픽션이다"라고 밝히며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 사이에서는 '포스터에 속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포스터를 보고 영화의 장르와 내용을 속단해 극장에 갔다가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를 보고 실망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2006년에 개봉했던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과 2009년에 개봉한 이해준 감독의 <김씨표류기> 등이 대표적이다. <스카우트> 역시 임창정이 선동열의 등에 매달려 코믹한 표정을 짓고 있는 포스터에 속으면 곤란하다.

결론적으로 <스카우트>는 '야구를 소재로 한 임창정표 코미디'로 오해한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것을 꺼리면서 전국 31만 관객으로 흥행에 실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스카우트>는 코미디와 멜로, 드라마가 적절히 섞인 수작으로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김현석 감독은 <스카우트>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과 부일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이야기꾼'으로서 능력을 인정 받았다.

1997년 <비트>를 기점으로 가수와 배우활동을 본격적으로 병행한 임창정은 2000년대 초·중반 <색즉시공>과 <위대한 유산> < 시실리 2km > < 1번가의 기적 > 등에 출연하며 코믹연기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 임창정에게 선동열 영입을 위해 광주에 왔다가 5.18 민주화 운동에 휩쓸리게 되는 <스카우트>의 호창은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임창정은 <스카우트>를 통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스카우트>에는 선동열 외에도 광주가 낳은 불세출의 야구영웅이 한 명 더 등장한다. 이제는 젊은 야구팬들에게 '정후아빠'로 불리기 시작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LG트윈스 주루코치)이다. 아역배우 윤찬식이 연기한 이종범은 <스카우트>에서 축구를 하다가 호창이 글러브를 선물하면서 야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장면에서는 이종범이 한국야구의 기둥으로 성장해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에서 결승 2루타를 때려내는 중계화면이 나온다.

두 남자가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그녀
 
 세영은 호창과 서곤태의 목숨을 건 희생 덕분에 '광주의 비극'에서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세영은 호창과 서곤태의 목숨을 건 희생 덕분에 '광주의 비극'에서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CJ ENM
 
엄지원이 연기한 세영은 Y대 신입생 시절 야구부의 호창과 연애를 했지만 이소룡이 죽던 날, 호창이 재단비리에 맞서 시위를 하는 학우들을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 호창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세월이 지나 고향인 광주에서 호창과 재회한 세영은 군부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다가 경찰에 잡히지만 또 한 번 호창의 희생 덕분에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다. 세영은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TV로 코치가 된 선동열을 보며 호창을 떠올린다.

2007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두 편 개봉했다. 5.18 항쟁기간 시민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화려한 휴가>와 5.18 직전 광주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카우트>였다. 그리고 이 두 영화에 모두 출연한 유일한 배우가 바로 광주 태생의 박철민이다. 박철민은 <스카우트>에서 세영을 짝사랑하는 광주 토박이 건달 서곤태 역을 맡아 사랑을 위해 경찰서를 습격해 세영을 구하는 '순정마초' 캐릭터를 연기했다.

<스카우트>는 Y대학 야구부 직원 이호창이 광주일고의 초고교급 투수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에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영화다. 하지만 정작 영화 내내 여러 캐릭터들로부터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괴물투수 선동열은 영화 시작 1시간 20분이 지난 후에야 화면에 등장한다. 호창과 마주 앉아 고기를 먹는 짧은 장면이 전부였던 고교생 선동열 역은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로 유명했던 아역배우 출신 이건주가 연기했다.

<스카우트>에서 호창은 선동열이 다니는 광주일고에서 라이벌 K대의 스카우트 병환을 만나는데 둘은 대학시절부터 악연이 있었던 사이다. 두 사람은 눈에 불을 켜고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경쟁하는데 호창은 선동열 아버지(백일섭 분) 앞에서 병환과 술 대결을 별인 후 잠이 든 병환에게 과거의 일을 사과한다. K대 스카우트 병환 역을 맡은 배우는 훗날 영화 <아저씨>와 드라마 <미생> 등으로 유명세를 떨친 김희원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스카우트 김현석 감독 임창정 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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