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작가 시점'은 늘 카메라 뒤에 서 있지만 방송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지난 3월 12일 tvN <놀라운 토요일> 출연자들과 PD, 작가들의 3주년 기념 촬영 사진

지난 3월 12일 tvN <놀라운 토요일> 출연자들과 PD, 작가들의 3주년 기념 촬영 사진 ⓒ tvN

 
"어느날 조카가 '놀토'라는 말을 쓰더라. 학교에 가는 토요일, 안 가는 토요일이 있는거다. 저는 토요일도 항상 학교에 가는 세대였는데, 그 말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보였다. '나중에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고 메모해뒀지. 그런데 프로그램 기획할 때 '놀토'라는 말을 던졌더니 이태경 PD는 싫어했었다. 요즘 애들은 놀토라는 말을 모른다는 거다. 프로그램 명으로 '놀토-도레미마켓'이 복잡하기도 하고. 그래놓고 요즘은 좋다더라. 가볍고 편해서. 프로그램이 잘 돼서 좋은 게 아닐까(웃음)."

이제는 명실상부 토요일의 예능 강자로 떠오른 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아래 <놀토>)은 그렇게 탄생했다. 전국 시장의 맛있는 음식을 걸고 노래 가사 받아쓰기 게임을 하는 포맷의 <놀토>는 지난 2018년 4월 7일 첫 방송된 이후 3% 이상의 고정 시청률을 확보하며(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변함 없이 사랑 받고 있다. 프로그램의 기획 단계부터 함께 했다는 유진영 작가를 최근 마포구 모처에서 만났다.

"처음엔 예능이 없는 시간대에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보자는 거였다. 돈키호테같은 거지. 그래! 우리도 할 수 있어! 토요일 (7시 40분) 시간대를 예능존으로 만들고 싶어서 '놀라운 토요일'이라고 큰 이름을 붙였다. 그 첫 주자가 '도레미마켓'이었는데 너무 잘돼서 이제 '도레미마켓'을 <놀토>라고 부르게 됐지. 앞으로 '도레미마켓' 말고도 다른 더 재미있는 코너로도 사랑받으면 좋겠다. 그럼 저 말고 다른 작가나 PD도 조명받을 수 있지 않을까?"

<놀토>에는 '도레미마켓' 이외에도 게임을 통해 숨어있는 마피아를 찾아내는 서바이벌 코너 '호구들의 감빵생활'도 있었지만 저조한 성적으로 6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현재는 '도레미마켓' 코너만 남아 있는 상황. 유 작가는 "(호구들의 감빵생활은) 야심차게 준비했던 코너였는데 너무 아쉽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놀토>의 시작 역시 순탄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맨 처음 시작할 때는 욕도 많이 먹었다. 가사 맞히는 포맷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없었던 게 아니니까.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인데, '신선하지 않다. 결국 한다는 게 신동엽 데리고 쟁반노래방 하냐?' 그런 댓글도 많았다. 하지만 우린 분명히 다르다고 믿었으니까. 쟁반노래방은 온 가족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건 젊은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비문, 발음, 맞춤법에 대해서도 알릴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신동엽은 첫 촬영 당시 "6회까지만 갈 것 같다"는 섣부른(?)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놀토> 시청률은 6회 이후에도 승승장구 하며 주말 인기 예능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유진영 작가는 "신동엽씨 성격이 워낙 신중해서 원래 그런 말도 잘 안 하는데 제작진과 워낙 친해서 그런 것"이라고 웃으며 대신 해명했다. 신동엽과 이태경 PD, 유진영 작가 세 사람은 tvN 공개 코미디쇼 <SNL 코리아>부터 <인생술집> 등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한 사이라고. 그는 "저는 특히 그전부터 신동엽씨와 프로그램을 많이 해서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사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동엽을 처음으로 진행자가 아닌, 출연자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여 설명했다.

"신동엽씨는 항상 MC를 보던 사람인데 저희는 붐을 그 자리에 앉히고 신동엽을 n분의 1로 만들었다. 처음에 자기도 놀랐을 수 있다. 항상 대본을 보고 뭘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이제 맨몸으로 앉아서 문제를 풀어야 하니까. 역할이 바뀐 거다. 항상 주인 역할만 하다가 처음으로 손님이 된 거니까. 파악이 안 됐겠지. 뭐가 어떻게 될지 윤곽이 안 잡히니까. 당황해서 그런 말도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을 떠오르지 않게 만들 방법이 새로운 배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동엽을 내려앉힌 거다. '여기 앉으면 젊어보일 거다'라고 꼬드겼지. 처음엔 본인도 어려워 하다가 8~10주 지나고 나서 젊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고 좋다고 얘기하니까. 지금은 받아들인 것 같다. 내가 여태 했던 것과 다른 콘텐츠를 가져온 거구나 생각해주고. 항상 점잖으신 분들만 (신동엽을) 재밌다고 하다가 처음으로 어린 애들이 좋다고 이야기 하니까. 이젠 본인도 좋아한다."

 
 tvN <놀라운 토요일> 유진영 작가 프로필 사진

tvN <놀라운 토요일> 유진영 작가 ⓒ 유진영


격주로 금요일마다 2회분을 촬영하는 <놀토>는 2주 단위로 모든 일정이 짜여서 돌아간다. 촬영 전까지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 제작진들은 무척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노래도 골라야 하고 음식을 구하러 전국 방방곡곡 시장을 다녀와야 하고 게임도 만들어야 한다. 그 와중에 월·수·금엔 회의를 하고 주말에는 편집도 한다. 유 작가는 그 중에서 노래를 고르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며 "출연자들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때 가장 억울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문제를 유출하거나 (출연자에게) 가르쳐준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우리 스태프 100명에게 다 물어봐도 그럴거다. 그게 가장 열받지. '(정답) 알려준 거 티가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 퀴즈쇼의 생명은 문제다. 답을 알려주는 퀴즈쇼가 어디 있겠나. 그런 댓글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며칠간 밤을 새우며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는 건데.

연도별로 정리된 노래들 중에 후보를 몇 개 골라서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한다. 하루에 3~4시간씩 스무명 넘게 앉아서 계속 들어보고 맞춰보고 어떤 과정으로 풀리는지 다 해본다. 거기다가 문세윤은 1990년대 노래를 잘 알고, 넉살이 어느 래퍼랑 친하더라, 소녀시대 태연이 활동했던 시기인가, 키가 가요프로그램 MC했던 시기인가. 그런 것까지 모두 신경써서 못 맞힐 만한 걸 가져가는 거다. 그래도 요즘 많이 털리고 있다. 그래서 (음식을 못 먹는) 햇님이 많이 삐졌다(웃음)."

 
멤버들이 가사를 틀렸을 때 음식을 대신 먹는 역할을 하는 '입짧은 햇님'은 <놀토>의 마스코트다. 17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먹방' 유튜버인 그는 멤버들이 2라운드까지 모두 틀렸을 경우 20인분 가량의 식사를 모두 해치우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멤버들이 1라운드부터 정답을 맞히는 바람에 아예 음식에 손도 못 대는 경우도 많다. 유 작가는 처음부터 먹방 유튜버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전했다. 

"홈쇼핑 방송을 보면 할아버지나 아이들이 평상에 앉아서 (음식을) 막 먹지 않나. 그런 것처럼 상을 차려놓고, 우리가 못 먹으면 잘 먹는 가족들이 먹고 그런 그림을 그렸다. 운동 선수들을 앉혀서 먹든지. 여러 가지 그림을 상상했는데, 그런 와중에 먹방 유튜버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런 먹방 유튜버 중에 우리 멤버들과 잘 어울릴 만한 순한 사람을 찾았는데 그게 햇님이었다. 너무 착하고 순하다. 하다 못해 우리 음식 나르는 FD, 푸드팀, PD, 작가는 물론이고 연기자들과도 너무너무 친해졌다. 이제는 가족같은 사이가 됐지."

<놀토>의 또다른 재미 포인트는 MC 붐의 실수다. 멤버들은 멍청이와 붐을 합쳐 '붐청이'라고 부를 정도. 가끔 제작진이 실수한 붐에게 분노의 종이를 던져 웃음을 더하기도 한다.

유진영 작가는 "붐이 실수를 많이 하지만 어지간한 실수는 재미있다. 그런데 (제작진을) 욱 하게 만드는 실수도 있다. 제가 던지고 싶어서 종이를 구긴다. 이태경 PD가 '던지세요 누나' 하면 던진다. PD는 편집을 생각해서 (방송에서) 살릴 수 있겠으면 던지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저는 (편집 생각하지 않고) 화가 나면 일단 구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붐이 <놀토>를 좋아하고 아이디어도 많이 준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붐이 저희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해서 지나가다가도 회의실에 온다. 아이디어도 내고 이런 거 어떠냐, 저런 거 어떠냐. 그런 MC가 흔하지 않은데, 붐은 굉장히 제작진 마인드다. 라디오 DJ를 하고 있으니까 노래를 듣다가 잘 안 들리면 바로 녹음해서 저희한테 보내주기도 한다. 시간 나면 <놀토> 회의실에 와서 놀다가고, 시도 때도 없이 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저한테 새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항상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다."

이날 유 작가의 답변에서는 붐뿐만 아니라, 멤버들 한 명 한 명과 스태프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멤버들과도 이젠 가족과 다름 없는 사이가 됐다"는 그는 촬영이 끝나면 출연진, 스태프들과 술을 마시는 일도 잦다고 했다. 방송에서도 멤버들이 여러 번 "회식하러 '놀토' 온다"며 술자리에서의 유쾌한 일화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건 꼭 써주셨으면 좋겠다"며 "회식을 오해하시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흔히들 생각하시는, 제작진 전원이 모두 모여서 '위하여'를 외치는 그런 회식이 아니다. 전 스태프가 모이는 건 1년에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다. 보통은 녹화 끝나고 출연자들, 메인 작가, PD 한두 명? (코로나 19 방역으로) 5인 이상 모임 금지 지침이 없었을 때도 6~7명 정도 모여서 그날 있었던 녹화 이야기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맥주 한잔 하고 싶은 사람들이 남아서 복기하는 자리다. 그 자리를 희한하게 게스트들이 너무 좋아한다. 편안해서 그런가보다. (집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술자리에) 온다. 신동엽씨가 워낙 술을 좋아하고 PD, 작가들도 다들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렇다."

이어 그는 최근 혜리가 하차했을 때의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귀여운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그날은 안 울 수가 없었다. PD, 작가들, 매니저들 전부 서운해서 울었다. 그런데 회식의 맹점이 뭐냐면 감정이 격해진다는 거다. 키, 한해가 군대갈 때도 엄청 울었다. 두 사람이 다시 돌아왔는데 너무 민망한 거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나 싶게 빨리 오더라. 혜리 때도 나라를 잃은 듯 엉엉 울었는데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드라마를 녹화하더라. 혜리가 촬영장에 놀러와서는 깔깔 웃으면서 '나 올 줄 몰랐지?' 하는데 너무 민망했다."
 
1995년 SBS <이주일쇼>로 방송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유진영 작가는 <기쁜 우리 토요일> <좋은 친구들> <인기가요>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밤에> <SNL 코리아> <힙합의 민족> <전체관람가> <인생술집>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동안 유튜브에서 1990년대 <인기가요>를 스트리밍 하는 '탑골가요' 열풍이 불던 시기, 엔딩 크레디트에서 '유진영'을 발견한 후배들이 "진짜 언니예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그럼에도 그는 2021년에도 새롭게 데뷔한 아이돌의 음악을 듣고 퀴즈를 내고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방송작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사람들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을 꼽았다. 20여 년간 변함 없이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책임져 온 사람이기에 더욱 와닿는 말이었다.

"(방송작가로서) 어떤 걸 만들어야겠다는 건 명확하게 갖고 있다. 어떤 풍경인데, 아주머니들이 자판이나 찜질방같은 데서도 텔레비전 하나면 온갖 시름을 잊는다. 솔직히 현실이 좋지 않잖아. 가족이 아프고,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남녀관계도 잘 안 되고, 돈도 계속 없고, 아직 집도 못 샀고. 팍팍한 현실인데 TV 속은 너무 즐거운 나라다. 파리 쫓으면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도 우리 방송을 보면서 깔깔 웃으며 3시간이든, 4시간이든 보낼 수 있으면 그게 TV가 하는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다 그런거다. 교훈을 주고 그런 게 아니라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즐거운 프로그램. 그게 <놀토>인 거지. '너 돈 있니', '차는 뭐 뽑았니' 이런 얘기보다는 '어제 혜리 너무 웃기더라, 붐도 재밌더라' 이런 얘기가 더 편하지 않나. 선정적이거나 나쁜 이야기도 아니니까. 그럴 수 있는 프로그램이고 싶다."
놀라운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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