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작가 시점'은 늘 카메라 뒤에 서 있지만 방송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인터뷰①] 출연진 손짓에 스태프 60여명 울컥, '너를 만났다' 뒷얘기
 
 '용균이를 만났다'편 예고 이미지

'용균이를 만났다'편 예고 이미지 ⓒ MBC

 
산업재해 사망자 '김용균'이라는 인물을 VR(가상 현실)로 만날 수 있을까. 뉴스 단신이 아닌 김용균의 시공간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모여 <너를 만났다> 시즌2 마지막 편, '용균이를 만났다'가 탄생했다.

'용균이를 만났다'는 가족 간의 그리움과 사랑을 다뤘던 기존 시리즈와 결이 달랐다. 고 김용균씨의 시간과 공간이 VR로 제작됐고,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이를 체험해보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너를 만났다> 최미혜 작가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물었다. 

"시즌2를 준비하면서 VR이라는 기술의 가능성을 가지고 또 어떤 걸 해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김종우 PD가 'VR 저널리즘'이라는 걸 시도해보자고 하더라. 공교롭게도 저 역시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처음엔 VR 저널리즘이라는 게 뭔지 감이 잡히지 않더라.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확실했다. 김용균이라는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작진은 김용균을 알지 못하고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실제 그가 일했던 장소에서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24살 김아무개씨가 작업 도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는 간단한 뉴스로만 접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복원된 용균씨의 휴대전화
 
'너를 만났다' 최미혜 작가  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의 최미혜 작가.

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의 최미혜 작가. ⓒ 이정민

 
이를 위해 제작진은 시민들에게 HMD(head mounted display)를 착용하게 해 VR로 김용균이라는 사람의 삶 속에 잠시 머무르게 하면서 용균씨가 어떤 상황이었고 평소 어떤 생활을 했으며 어떤 성격을 가진 청년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곤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를 관찰했다.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용균씨가 사고를 당한 태안화력발전소에 접근이 어려웠다. 제작진은 남아있는 동영상들을 수집하는 한편 그의 동료와 친구들을 취재했다. 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씨의 동의 하에 그가 사용했던 휴대전화 포렌식도 진행했다.

"당시 어머니도 주야 교대 근무를 하고 계셨는데, 용균씨와 시간이 맞지 않아 전화 통화는 자주 못하고, 주로 톡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 어머니는 용균씨 사진과 아들과의 대화 내용을 복원하고 싶어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개인적인 내용은 많지 않았다. 대신 원청에 보고하기 위해 찍었던 작업 사진들이 많이 복원됐다."

복원된 용균씨의 휴대전화에는 85일 근무하는 동안 찍은 작업 보고용 사진 966장과 25개의 동영상이 남아있었다. 제작진은 그가 남긴 작업 보고용 사진을 토대로 발전소 내부 공간을 구현했다. 스물 넷 청년 김용균의 일상은 그가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녹음한 음성 파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용균씨는 착하고 순진한 청년이었던 것 같다. 동료 증언에 따르면 1부터 10까지 하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일하는 성격이었고 술, 담배도 안 했다고 한다. 그 세대 젊은이답게 취업 고민도 많았던 것 같다. 용균씨가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고 PC방 가서 게임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동영상도 첫 월급 받고 친구들에게 치킨 쏘는 모습이랑 친구들이랑 떡볶이 먹는 게 전부다."

김용균 잘 모르던 이들, 어떻게 변했을까 
 
제작진은 교수, 주부, 취업준비생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시민 12명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VR 체험 기회를 마련했다. 그 무렵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더 이상 용균씨 같은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국회에서 단식 농성 중이었다. 그런데 체험자 가운데 용균씨의 뉴스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했다. 

"한쪽에서는 이 일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뉴스를 만들어도 관심이 없는 분들은 보지 않으시더라. 들어는 봤지만, 팩트를 제대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이 HMD를 쓰고 VR로 복원된 용균씨의 작업장에 들어가서 경험을 한 뒤 어떻게 바뀔 것인지가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나. 그런데 처음엔 용균씨 뉴스를 접한 적 없다던 청년이 VR 체험을 하고 나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가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느끼게 됐다. 그런 변화는 뉴스 한 줄로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체험자들은 대부분 용균씨가 처했던 열악한 노동 환경에 충격을 받거나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최 작가는 VR로 만들어진 공간은 순화된 버전이라고 언급했다.

"안타까웠던 것이 용균씨가 일했던 공간은 VR로 표현한 모습보다 더 열악하다고 한다. 동료들 증언도 그렇고 용균씨가 직접 찍은 동영상도 보면, 발전소 내부가 무척 어둡다. 그런데 용균씨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랜턴도 지급받지 못해 자신의 휴대폰 불빛을 이용해 점검했다. 시속 5m/s로 빠르게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분진이 계속 날아와 몸에 붙고 시야를 가린다. 또 기계 소음이 엄청 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데시벨로 기계 소음을 구현하면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볼 수가 없지 않겠나. 그래서 완벽히 똑같이 만들 수는 없었고 여러 측면에서 수위 조절을 했다." 
 
 준비 중인 스튜디오 전경. 최미혜 작가 제공

준비 중인 스튜디오 전경. 최미혜 작가 제공 ⓒ 최미혜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방송을 본 뒤 어떤 이야기를 전했을까. 최 작가는 "어머님이 두 번인가 보셨다고 하시더라. 용균씨의 이야기를 공감해주시는 분이 많아 안도하셨던 것 같다. 어머님이 용균씨 사진을 간절히 원하셨던 이유는 아들을 기억할만한 걸 갖고 싶으셨던 건데 저희가 VR을 통해 어머니가 본 적 없는 아들의 일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아들을 볼 수 있는 게 어머니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랐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용균이를 만났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하는 등 각계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최 작가는 "처음 생각했던 게 100%라면 실제 표현된 건 40%도 되지 않았다. 원래는 훨씬 디테일하고 큰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예를 들면 VR 체험 부스를 만들어서 청와대도 가고 국회도 가는 것이다. 대통령도 VR 체험 해보시고, 국회의원들도 HMD를 써본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언젠가 <너를 만났다> 팀을 태안에서, 국회 앞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최 작가는 현재 <너를 만났다> 시즌3 준비에 한창이다. 그는 이번에도 운명처럼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시즌1과 2가 그랬던 것처럼. 최 작가에게 한 지인은 "마음 관리 잘하라"며 애정 어린 연락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VR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마치 철학책을 읽는 느낌이란다.

"우리가 펼쳐놓은 것은 분명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체험자들이 보여주는 건 진짜 마음이다. 이 리얼리티를 어떻게 해석하야 하는가? 알 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일 하며 배우는 느낌이다."

최 작가는 <너를 만났다>를 만드는 일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산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마음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할 수 있을까. 그저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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