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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희준은 전작 <마약왕>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까지, 연달아 우민호 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 그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우 감독의 연출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감탄했다. 앞서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이병헌은 "<남산의 부장들> 촬영 도중 <마약왕>이 개봉됐는데, 흥행에 실패해서 그런지 우민호 감독이 현장에서 굉장히 차분했다"며 우민호 감독을 놀리기도 했다. 이날 이희준 역시 그에 대해 언급하며 "진짜 <마약왕> 때와는 우민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고 귀띔했다.
"<마약왕> 때는 즉석 애드리브도 많았다. 상황에 맞게 배우들과 함께 빈 틈을 채워가면서 영화를 즐겁게 만들어 갔다. 반대로 여기(남산의 부장들)서는 오랫동안 차갑게, <남산의 부장들>만의 온도를 유지하려고 (감독님이) 진짜 애쓰셨다. 그런 걸 영화를 보고 알았다. 촬영할 때는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되게 (우민호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느꼈다."
그도 지난 2018년 단편 영화 <병훈의 하루>를 통해 연출에 도전했다. 당시 <병훈의 하루>는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고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등 꽤 주목을 받았다. "감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이 겸손으로 들렸다. 이희준은 "그런 영화를 너무 보고싶어서 누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 내가 사비로 만들었다"며 "영화를 만들면서 감독들을 더욱 존경하게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어 그는 연출을 경험한 뒤 달라지게 된 부분이 있다고 고백했다.
"영화 감독님들을 더 존경하게 되고 새롭게 보이기도 하더라. (직접 연출을 경험하고) 가장 크게 바뀐 점은 비 오는 날의 내 반응이다. 배우는 촬영 날인데 비가 오면 '아싸' 한다. 90퍼센트? 친한 배우들과 등산을 가거나 술도 한 잔하면서 놀기도 하고. 내 단편 영화는 3회차로 찍었는데, 마지막 회차 촬영 때 새벽 5시에 모이기로 했다. 전날 잠을 자는데 밤 12시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서 '비 언제 그치지, 그칠 비인가' 고민하느라 한숨도 못 잤다. 5시에 모였는데 비가 그때까지 계속 왔다.
PD 형이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 물었다. 원래 내가 쓴 시나리오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오늘은 실내에서만 찍고, 야외 촬영은 다음에 하루를 다시 잡자'고 말했더니, PD 형이 귓속말로 '감독님 그러면 500만 원이 더 듭니다'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럼 오늘 다 찍자'고 했다. 마침 영화를 보면 비가 오다가 후반에 그친다. 마치 연출한 것처럼, 인물의 심리에 따라 비가 그친다. 얻어걸린 거다. 이제는 배우로 참여하는 작품에서도 (촬영 날) 비가 오면 (감독에게 미안해서) 신난 마음을 좀 숨기려고 애쓴다."
장편영화에 도전할 계획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또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게 구체화 되면 도전해보고 싶긴 하다.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고 쓰고 있기는 하다"며 "내가 배우로 참여하는 대본들과 비교하면 형편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때그때 많이 메모하는 편"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