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언론노조MBC본부 주최 ‘MBC 파업콘서트-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서 아나운서들이 무대에 올라 그동안 아나운서국에서 벌어진 부당한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권우성
내가 너무 낭만적인 것일까? 미디어 환경이 크게 바뀌었고 MBC의, 지상파의 위상도 추락했지만 아직도 난 그때의 MBC를 잊지 못하고 오히려 그때 이상의 MBC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돌아와 준다면 가능하다. 대부분 다른 부서로 쫓겨나거나 해직됐지만, 그들이 돌아와만 준다면. 오히려 더 강해지고 깊어졌을 그들이기에 더 멋진 방송을 할 수 있다는 희망. 그건 내가 버릴 수 없는 희망이었고, 그 생각이 나를 버티게 만들었다.
파업의 시작내 기억의 시작은 약 석 달 전, 8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나운서들이 5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2012년 파업 이후 지난 5년 동안 아나운서들은 심의국으로, 주조정실MD로, 라디오편성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나운서국 밖에 있던 사람들과 아나운서국 안에 있던 사람들과 5년 만에 재회해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로 이동하면서, 낯설지만 뭉클함을 느꼈다.
2016년 3월, 아무 방송도 못 하고 무기력감에 휩싸여 지내던 나를, 회사는 사회공헌실로 발령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나는 방송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방송을 하고 있던 황선숙 아나운서와 차미연 아나운서를 아무 예고 없이 심의국과 경인지사으로 발령낸 것은 큰 충격이었다.
사회공헌실에서 지내면서 '5년 전부터 나가 계셨던 선배님들은 정말 힘드셨겠구나, 난 그분들의 마음을 10분의 1도 헤아리지 못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잘 지내보려 노력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우린 파업 전 '제작거부'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경영진 아래서 더 이상 이런 뉴스를, 이런 방송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아나운서들의 생각이었다. 우리의 결의는 그날 공고해지고 단단해졌다.
8월 18일부터 아나운서 27명은 제작거부(아나운서들에겐 '방송거부'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에 돌입했다. 그리고 22일, 상암 MBC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발등이 타버릴 것 같았던 뙤약볕 아래서 우리는 그동안 느꼈던 고통과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이후 인터넷 상에서 우리를 뜨겁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터뷰를 거치면서 '아나운서국의 상황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이제라도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뉴스타파>의 한 코너 '뉴스포차'를 찍던 9월 4일, <뉴스타파> 사무실 겸 '뉴스포차' 스튜디오에 찾아가 해직 기자 박성제 선배를 만난 날이 떠오른다. 박성제 선배는 '뉴스포차'의 MC다. 동기 허일후 아나운서와 나, 박성제 선배가 한 화면에서 방송하는 건 즐겁지만 슬픈 일이었다. MBC에서 아침뉴스 앵커와 뉴스 PD로 함께 뉴스를 만들어나갔던 모습이 아직 생생한데 지금은 아나운서·기자가 아닌 신분으로 MBC에 대해 성토하는 모습이었다. 우린 비교적 담담하게 그간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