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03.이처럼 감독은 이 작품의 주제와도 같은 loveless, 사랑의 상실을 표현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지점의 감정을 이용한다. 이혼을 앞둔 보리스와 제냐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행동이 하나,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아들인 알료샤가 느끼는 것들이 또 다른 하나다. 보리스와 제냐는 각자가 서로에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하며, 그들이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이유는 그저 알료샤가 생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부가 각자의 내연자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이 영화 속에 투영되는 동안 그들의 아이인 알료샤는 영화 속 러닝타임에서 잊힌다. 이후 알로샤가 종적을 감추게 되는 것과 이 부분의 표현 방식이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감독이 그를 의도적으로 시선에서 유보하는 것처럼 부부 역시 그들의 삶 속에서 자신들의 아들을 미필적 고의적인 상황 속에서 내버려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짧은 기간 속에서만 그런 생활이 지속한 것은 결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이를 찾기 위해 받게 되는 몇 가지 질문들 앞에 부모라는 사람들이 그 어떤 대답에도 좀처럼 확신을 가지 못하는 장면들이 표현되며 그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04.아들이 행방불명 되고 난 뒤에도 두 사람은 쉽게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두 사람 각자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한 것이다. 사실상 아이를 찾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다. 이는 반대로 두 사람이 결국 아이를 찾는 일에 전력을 다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들이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 걱정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일부 제시되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각자 사랑의 곁을 찾는 두 사람의 모습. 어쩐지 아이를 잃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기분을 전해주지는 못하는 이유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공동의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여전히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기운을 감추지 않는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부부가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가지며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는 게 두 사람에게 부모로서의 자각을 심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자신의 불안이나 위험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일부터 떠오르고 마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행동 곳곳에서 드러난다. 오히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알료샤가 더욱 어른스러워 보일 정도다. 아들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아이의 사체를 확인한 이후 감정적으로 무너져버리는 두 사람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적 토로만이 그 공간을 채울 뿐, 그 이상을 넘어서는 감동이나 연민과 같은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 영화의 시작에서 학교를 마친 알료샤가 나무에 걸어놓은 끈 하나가 영화가 끝나는 지점까지 외롭게 흩날리는 모습이 꼭 채워지지 않는 감정의 불안과 허전함을 대신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