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포스터

▲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포스터 ⓒ 몽씨어터


"공동주택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주민들 사이에 위기감이 감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동주택이지만 주민들 사이엔 이렇다 할 친분이 없다. 오가며 몇 차례 인사를 나눈 게 고작. 범인이 누구인지,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이와 같은 줄거리를 가진 소설과 만화, 영화, 연극 등이 국내에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만도 벌써 여러 편.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김휘 감독의 <이웃사람>, 정길영 감독의 스릴러 <우리 동네>가 모두 그와 같은 작품이다.

언제나 그렇듯 창작물은 현실의 반영이다. 공동주택을 무대로 익명성과 소외, 이웃 간 거리를 다룬 작품이 제작된다는 건 한국사회가 그와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옆집 사람보다도 얼굴을 맞댄 적 없는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건 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기야 층간소음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하면 우퍼스피커를 설치하라는 조언이 나오는 세상이니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익숙한 빌라 풍경 속 미스터리 블랙코미디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공연 사진

언제나 그렇듯 창작물은 현실의 반영이다.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역시 마찬가지다. ⓒ 몽시어터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한창 공연 중인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도 이 같은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발단이 되는 사건이 살인이 아닌 고양이 살해라는 것, 정통 스릴러라기보다는 미스터리 블랙코미디라는 점 정도다.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도 힘든 도시 외곽 허름한 빌라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극을 다뤘는데, 8명의 빌라주민이 등장해 고양이를 상습적으로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이 줄거리라 할 수 있다.

극이 펼쳐지는 공간은 관리자의 집이다. 몇 달 새 빌라 앞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살해당한 채 버려지는 일이 반복되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입주민을 불러모은 것이다. 펼쳐지는 광경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등장인물 개개인이 특이하기 짝이 없다. 이웃사촌이 옛말이 되어버린 지금, 여느 빌라풍경이 이러할까 싶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모인 이유를 궁금해하던 이들은 관리자가 고양이 사체를 꺼내놓자 당혹감에 휩싸인다. 고양이를 죽인 범인이 누구이며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이는지부터, 반복되는 사건을 막아낼 방책을 궁리하는 게 모두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마침 옆 동네에서 여대생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경찰이 이 빌라에서 탐문수사를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대책회의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해진다. 처음으로 같은 공간에 모인 빌라주민들은 고양이를 죽인 범인이 살인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고 모임이 나오지 않은 301호 남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강력한 서스펜스를 이끄는 불온한 인물 내면의 풍경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공연 사진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강력한 서스펜스를 추동력으로 삼는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 몽시어터


두 시간이 조금 넘는 극은 고양이를 죽인, 나아가 사람까지 살해했을 수 있는 범인이 같은 빌라에 산다는 추정으로부터 발생하는 강력한 서스펜스를 추동력으로 삼는다. 사실상 극 전반부는 빌라 주민들이 머리를 모아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301호 남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과정으로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긴장과 궁금증이 관객의 관심을 극에 매어두는 요소로 작동한다.

하지만 후반부는 전반부의 전개와는 딴판이다. 이야기가 전개되고 증거가 확보될수록 긴장감이 배가되는 대신 극 중 인물들의 결점과 불안한 내면이 더욱 강조되고 그 속에서 블랙코미디적 정서가 느껴지는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경찰과 공무원 준비생 등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함은 물론 각자의 불안한 내면이 전면에 떠오르며 사회 비판적인 주제의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자신의 결핍을 내면에 은밀히 감추고 있다. 더불어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핍을 채우지도 못한 듯 보인다. 도덕 선생님은 가정폭력으로 추정되는 사유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지 않고 유일한 가족으로 등장하는 부부 역시도 서로를 무시하고 헐뜯기만 한다. 공무원 준비생은 온갖 열등감과 편견으로 가득한 인물로 그려지며,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들 역시 내면에 불안하고 불온하기까지 한 특성이 있는 듯 보인다.

연극은 이와 같은 등장인물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다. 극 중에서 '누구나 (마음이 비틀리면 화풀이로 죽일) 고양이 하나쯤 가진 것 아니냐'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거니와 각박한 세상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정상적인 것처럼 위장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통이 없이 가면 아래 침잠하는 자아와 그로 인한 부작용, 억눌린 욕망과 분노를 비틀린 방식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이 연극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공연 사진

'누구나 (화풀이로 죽일) 고양이 하나쯤 가진 것 아니냐'는 대사는 현대인의 단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 몽시어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부분 만큼 아쉬웠던 순간도 많았다. 무엇보다 두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쳐 관객을 지치게 하면서도 여운을 남길만한 강렬하고 효과적인 장치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 그랬다.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 역시 이미 수차례 다뤄진 것이어서 차별화되는 부분이 부재했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비틀린 자아와 이웃 간의 관계 등 돌아볼 만한 내용이 없지 않았지만 이를 꿰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그로부터 관객의 가슴에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무기를 갖지 못한 듯했다.

필요하지 않았던 부분을 쳐내고 꼭 전하고픈 이야기에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이보다 나은 작품이 마련됐을 것이다.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공연 사진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비틀린 자아와 이웃 간의 관계 등을 이야기하는 연극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 몽시어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싸이코패스는 고양이를 죽인다 몽씨어터 연우소극장 김성호의 무대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