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특종: 량첸살인기 포스터

▲ 특종: 량첸살인기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일생일대의 특종인 줄만 알았던 사건이 그저 소설 속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자 사건을 보도한 기자 허무혁은 깊이 절망한다. 그러나 때늦은 절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시위를 떠난 사건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경찰과 언론, 국민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사건을 끝내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허 기자. 그런데 끝날 줄만 알았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스스로도 살인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노덕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특종: 량첸살인기>의 줄거리다. 개봉 1주일 동안 5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이 영화는 <더 폰>, <성난 변호사> 등과 함께 올 가을 액션스릴러 장르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역린>, <협녀: 칼의 기억> 등 앞선 기대작들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배급작으로,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436개의 스크린(28일 기준)을 확보하고 있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장르오락물의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가 고점에서 만난 작품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의도치 않은 선택 이후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사건에 휩쓸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며, 그 과정에서 언론과 경찰,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블랙코미디적 풍자가 이어진다는 점이 그렇다.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젊은 감독의 작품치고는 속도감과 흡입력 있는 전개 역시 일품이다. 꼼꼼하지 못한 디테일과 흐리멍덩한 결말이 못내 아쉽지만, 올 가을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겠다. 하지만.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시작과 끝

특종: 량첸살인기 각본은 잘 써놓고 연출에선 곳곳에서 역량부족을 드러낸 노덕 감독.

▲ 특종: 량첸살인기 각본은 잘 써놓고 연출에선 곳곳에서 역량부족을 드러낸 노덕 감독.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흠을 잡으려 든다면야 무사하지 못할 영화긴 하다. 한 장면 걸러 하나씩 부족한 점이 눈에 띄고, 단순한 구성에도 가지치기를 못해 우왕좌왕하는 부분도 한둘이 아니다. 영화에서 더없이 중요한 오프닝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부터, 클라이막스 이후 결말에 이르는 과정도 억지스러워, 따지기 좋아하는 관객을 만난다면 적어도 수십분은 악평을 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오프닝은 변호가 안 될 만큼 실망스런 수준이다.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오프닝을 감독은 범인의 살인신으로 마련해두고 있는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성과는 없으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길고 난삽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특히나 범행이 이뤄지기 전까지 야밤의 공원에서 벌어지는 키스신은 도대체 어떤 의도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장면으로 아까운 오프닝을 낭비했다는 것부터가 감독이 영화를 효율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소개팅에서 사람을 만나도 초반 3초의 인상을 극복하기 어렵다는데 하물며 영화야 어떻겠는가.

엔딩 역시 마찬가지다. 러닝타임 내내 진실과 거짓, 또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들 사이에서 헤매던 주인공은 영화의 끝에 이르러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는 대신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을 믿기를 선택한다. 영화는 이를 위해 러닝타임 내내 주플롯과 보조플롯을 함께 전개해 왔는데, 여기서 주플롯은 살인사건에 휘말린 기자로서의 이야기이고 보조플롯은 아내와의 가정사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결말부에 이르러 허무혁의 손에 친자검사 결과통지서를 쥐어준다. 그런데 이를 받아든 허무혁은 딸의 친부가 자신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결과서를 태워버린다. 마찬가지로 살인사건의 진상 역시 덮어버린다.

감독은 허무혁이 두 상황 모두에서 진실을 증명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실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블랙코미디적으로 표현하기를 의도했던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위적 표현을 위해 길고 지루한 보조플롯을 이어왔다는 건 낭비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허무혁을 살인범과 조우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친자확인서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진실을 감추는 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내의 이야기를 교차시킨 선택이 투박하고 조악하게까지 느껴졌다.

짜임새가 부족한 결말부와 엉성한 디테일 탓에 허무혁이 경찰에 출두하는 대신 아내와 병원에 머물고 사건을 묻어버리는 선택이 억지스럽게 여겨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블랙코미디적 결말로 이어가는 연결고리도 허약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사회부조리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블랙코미디라기보다 급작스런 방향전환에 가깝고, 이를 보는 관객 역시 이야기가 끝맺어지지 않은 듯한 찝찝함을 맛보게 된 것이다. 오락영화로서 소재와 설정이 흥미로운 건 사실이지만, 부족한 역량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다 보니 스스로 걸음이 꼬인 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영화는 결말 이후 극영화에선 다소 낯선 톤으로 채널A와 조선일보 사옥을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는데, 이러한 장면이 감독의 의도를 더욱 투박하게 노출시킨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살려낸 배우들

특종: 량첸살인기 조정석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 특종: 량첸살인기 조정석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특종: 량첸살인기 영화를 살린 건 절반은 이 배우의 공. 용감한 시민을 연기한 김대명의 연기가 숨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 특종: 량첸살인기 영화를 살린 건 절반은 이 배우의 공. 용감한 시민을 연기한 김대명의 연기가 숨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살린 건 전적으로 배우들의 공이 아니었나 싶다. 조정석과 김대명의 공이 특별히 컸다.

주인공 허무혁 역을 맡아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사건에 당황하는 연기를 펼친 조정석은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이후 <관상>, <역린>의 주조연급 캐릭터를 거쳐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이어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확고한 주연급으로 발돋움했다. 다소 식상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충무로의 블루칩'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우도 없을 것이다. 기회가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배우인 만큼 한 번의 기회를 기필코 성공으로 연결 지으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그려지는 원톱영화이기에 조연급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악역으로 등장해 많지 않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김대명의 연기도 따로 언급할만 하다. 특유의 순수하게 들리는 얇은 목소리로 흉악한 연쇄살인범을 실감나게 연기한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지금보다 못한 평가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밖에 배성우와 이미숙, 태인호, 이하나, 김의성 등도 출연해 제 역할을 나름대로 소화하고 있어 연기의 측면에선 여러모로 볼거리가 충분한 영화였다. 캐릭터의 문제를 단지 연기만으로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특종: 량첸살인기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덕 김성호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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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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