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사도>의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사도> 포스터

영화 <사도> 포스터 ⓒ (주)쇼박스


여든셋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52년 동안을 왕으로 살아간 사람. 그러나 재위기간 내내 정통성을 의심받은 인물. 탕평책을 통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균역법을 실시하는 등 민생을 돌본 왕. 하지만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유례없는 조치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아버지. 이 모두가 설명하는 건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다.

영화 <사도>는 바로 영조의 이야기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비극,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와 그의 아버지 영조의 이야기를 다뤘다. 차기 국왕으로 내정돼 있던 세자가 아버지의 명령으로 겨우 27살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는 그 외형만으로도 보는 이의 흥미를 돋운다.

여기에 하나뿐인 아들을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다는 지극히 예외적인 처형방식이 더해지며 비극은 더욱 기묘한 인상을 얻었다. 대체 영조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 부자 사이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사도세자는 그토록 잔혹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은 것일까. 이준익 감독은 영화 <사도>를 통해 이 같은 의문에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교육으로 비틀린 부자관계, 과연 영화에서만일까

 영화 <사도> 스틸컷. 아버지와 아들의 행복했던 한 때

영화 <사도> 스틸컷. 아버지와 아들의 행복했던 한 때 ⓒ (주)쇼박스


주지하다시피 영화의 주인공은 영조(송강호 분)의 둘째 아들이자 세자인 이선(유아인 분)이다. 첫 아들 효장세자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죽었고 이선은 이후 7년 동안이나 후사를 얻지 못하던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적통을 이을 아들의 탄생에 영조가 어찌나 기뻐했는지는 이선이 태어난 그날 원자로 책봉되고 이듬해 세자로까지 책봉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둘 모두 조선 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인 것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세자의 나이 열 둘, 본격적으로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수업이 시작되며 아버지 영조와 아들 이선의 관계는 비틀려간다. 영화는 영조의 마음에서 세자가 비껴가기 시작하는, 즉 세자의 마음에 병이 싹트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한달음에 옮겨간다. 자기도 모르는 새 내면의 열등감을 아들에게 쏟아내는 아버지, 끝없는 요구와 기대에 급기야는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아들. 이준익 감독이 그려낸 영조와 세자의 이야기는 역사책 속 먼지 쌓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시대 여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처럼 내밀하고 현실감 있게 전개된다.

숨 쉴 틈 없이 자식을 옥죄고 성과를 강요하는 부모가 어디 영조만이겠는가. 끝없는 학습의 길로 내몰려 늘 평가받고 기를 펴지 못하는 자식이 어디 세자뿐이겠는가 말이다. 자식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와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들의 긴장국면은 이백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풍경이다. 다만 뒤주와 같은 극단적인 소품이 등장하지 않을 뿐.

<사도>가 일종의 학원물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자의 뒤편에 앉아 대리청정하는 왕이 극성 학부모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하들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세자는 주관 없는 학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나부터 끝까지 지적하고 몰아붙이는 아버지의 태도에 마침내 일탈하고 마는 세자의 모습은 그래서 사극이라기보다는 시대비판적인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부채 안에 갇힌 용,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화 <사도> 스틸컷. 아들을 보는 눈이 예전같지 않은 아버지

영화 <사도> 스틸컷. 아들을 보는 눈이 예전같지 않은 아버지 ⓒ (주)쇼박스


아비는 아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자신을 더욱 사랑했다. 어머니의 신분이 미천하고 형인 경종의 독살설에 연루되는 등 근본적인 취약점을 가진 왕이었기에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으리라. 자신과 달리 하나뿐인 아들만큼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만큼 빼어난 군주로 만들고자 했지만 이것이 도리어 세자의 날개를 옭아매어 비틀리게 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여염집 여느 아들이 그러하듯. 하지만 아들에게 아비는 너무도 멀었고 왕이란 존재는 너무도 높았다. 세자는 종종 꿇어 앉아 염원했고 그보다 자주 엎드려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언제나,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가 아비를 증오하게 된 건 자연스런 일일지 모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소품은 중반부에 등장하는 용이 그려진 부채다. 아들인 이산이 태어나던 날, 세자는 꿈에서 본 용을 종이에 그려 들고 아내에게 달려간다. "아들이오! 내가 태몽을 꿨소! 꿈에서 하늘을 나는 용을 봤소!"라고 외치는 그의 손에서 장인 홍봉한이 그림을 받아들고는 부채로 만들어 두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이 곧 영화의 주제와 통한다고 생각한다.

난 세자가 그린 용이 세손 이산이 아니라 세자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공으로 자유롭게 비상하는 용이 부채 안에 갇히고 마는 게 마치 영조가 만든 틀에 갇혀버린 세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뒤주에 갇힌 세자가 부채를 쥐고 오열한 건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도 처음엔 태몽으로 여겼지만 실은 용이 자기 본연의 모습이자 감춰진 욕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왕이 된 정조(소지섭 분)가 아버지의 활쏘기를 춤으로 표현하던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던가. 비상하지 못했던 용과 세자가 쏘아올린 화살의 대치는 영화 <사도>의 노골적인 상징인 것이다.

 영화 <사도> 스틸컷. 파국에 도달한 부자관계

영화 <사도> 스틸컷. 파국에 도달한 부자관계 ⓒ (주)쇼박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와 빅이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사도 송강호 유아인 이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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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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