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언즈>의 포스터

<미니언즈>의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공포물이 주름잡던 여름 극장가의 주도권이 국내외 블록버스터에 완전히 넘어간 모양새다. 지난해는 4대 배급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군도> <명량> <해적> <해무>가 흥행 바통을 이어가며 다른 작품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더니 올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 최동훈의 <암살>이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한국영화와 할리우드의 자존심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꿰찼고, 이병헌, 전도연의 <협녀: 칼의 기억>도 출격을 대기 중이다. 이에 맞서는 건 할리우드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마블 히어로 영화다. <판타스틱 4>와 <앤트맨>이 늘어난 국내 마블영화 팬의 지지를 업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 블록버스터의 강세가 이어지는 박스오피스 순위표에서는 의외의 흐름도 포착할 수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의 강세다. 방학을 맞아 일제히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박스오피스 4위부터 7위까지를 점거하고 있는 것. 일찌감치 4백만 관객을 돌파한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과 <미니언즈> <명탐정 코난: 화염의 해바라기> <극장판 요괴워치: 탄생의 비밀이다냥!>이 그것이다.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형국인데 아무래도 부모의 지지를 받는 미국 애니메이션이 다소간 우위를 점하는 듯하다.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미니언즈>다. 지난 7월 9일 개봉해 2주 만에 2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빠른 흥행속도를 과시하고 있다. <슈퍼배드> 시리즈를 히트시킨 일루미네이션이 제작을 맡았고 시리즈 성공의 주요한 원인으로까지 평가받은 미니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슈퍼배드> 시리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슈퍼배드>의 스핀오프 <미니언즈>, 스핀오프 잔혹사를 뒤집을 수 있을까?

 <미니언즈>의 그나마 참신했던 오프닝 시퀀스

<미니언즈>의 그나마 참신했던 오프닝 시퀀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미니언즈>는 2013년 2편까지 제작된 <슈퍼배드> 시리즈의 스핀오프 영화다. 스핀오프란 오리지널 영화의 커다란 흐름과 상관없이 특정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 독립적으로 만든 작품을 말하는데 오리지널 영화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속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미니언즈>는 <슈퍼배드> 시리즈에 등장해 특유의 귀여움을 과시하며 인기를 얻은 명품조연 미니언 종족을 전면에 내세운 스핀오프로 개봉 전부터 오리지날 시리즈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스핀오프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디즈니와 애니메이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드림웍스가 대표적이다. 드림웍스는 2011년 <슈렉>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장화 신은 고양이를 내세워 <장화 신은 고양이>를 제작한데 이어 지난해엔 <마다가스카> 시리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펭귄 4총사를 주인공 삼아 <마다가스카의 펭귄>을 내놓아 쏠쏠한 재미를 봤다.

드림웍스만큼 전격적인 행보를 보이진 않지만 디즈니에게도 스핀오프는 끌리는 선택인 듯하다. 2013년 개봉해 전 세계를 휩쓴 <겨울왕국>의 인기 캐릭터 올라프의 활용방안이 끊임없이 논의되더니 안나와 올라프, 크리스토프 등이 출동하는 스핀오프 영화 <프로즌 피버>가 제작되어 올해 소개됐다. 장편 개봉에 앞서 상영되는 7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에 불과했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디즈니가 스핀오프에 관심을 드러냈다는 점만으로도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미니언즈>는 유니버설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일루미네이션이 디즈니와 드림웍스의 양강구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작품이다. <슈퍼배드> 시리즈에 이어 스핀오프까지 성공을 거둔다면 십수 년간 이어져 온 양강구도가 재편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일루미네이션이 산드라 블록, 마이클 키튼 등 명성 있는 배우에게 목소리 연기를 맡긴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스핀오프에 희망은 있는가?

 <미니언즈>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스칼렛 오버킬(산드라 블록 목소리 연기). 그녀의 전형적인 캐릭터로는 대세를 뒤집기 역부족이었다.

<미니언즈>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스칼렛 오버킬(산드라 블록 목소리 연기). 그녀의 전형적인 캐릭터로는 대세를 뒤집기 역부족이었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하지만 스핀오프는 가능성만큼이나 한계 역시 뚜렷하다. 비교적 스핀오프 제작이 활발했던 히어로 영화 가운데 <엘렉트라> <캣우먼> <더 울버린>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개봉해 실망감만 안겼고, 야심차게 제작된 <에반 올마이티> <스콜피온 킹>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드림웍스의 <마다가스카의 펭귄>이 성공 사례라고 할 만하지만 그밖에 스핀오프 영화로 성공한 작품은 손에 꼽는 게 현실이다.

문제의 근원은 오리지널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용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조연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주연으로 바꿀 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를 수정할 경우 본연의 매력이 훼손될 수 있고 수정하지 않으면 영화의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인데, 그럼에도 제작자가 스핀오프 영화를 기획하는 건 오로지 상업성 때문이다. 오리지널 영화의 인기에 기대 성공을 이어가자는 얕은 생각이 대부분의 스핀오프 영화의 출발점이다.

작은 이익을 탐하다 큰 신뢰를 놓치다

 배고픈 스튜어트의 눈에 비친 케빈과 밥.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려 착시현상을 경험한다는 흔한 설정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배고픈 스튜어트의 눈에 비친 케빈과 밥.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려 착시현상을 경험한다는 흔한 설정으로 웃음을 유도한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미니언즈>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신스틸러라는 말은 <슈퍼배드>의 조연일 땐 찬사였으나 <미니언즈>의 주연으로선 벗어야 할 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미니언의 캐릭터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고 이를 해소할 만한 장치도 특별히 준비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영화에 쏟아지는 대중의 유일한 평가, 요약하자면 '귀여움과 지루함의 대결'이라는 틀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유일한 준거가 되어버렸다.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제대로 된 언어 하나도 구사하지 못하고 그렇게 만들 생각조차 없었던 미니언 캐릭터를 앞세워 한 편의 영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생각은 무모했다. 하물며 왕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극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미니언과 악당의 캐릭터도 한숨만 나올 정도다. 오로지 캐릭터의 귀여움으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소수의 관객을 제외한다면 <미니언즈>는 호평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미니언즈>는 스핀오프 제작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지나치게 성공을 좇다 보면 어렵게 쌓은 신뢰와 명성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남긴 교훈이라면 교훈일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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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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