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라클여행>의 포스터 앞에 선 허철 감독.

영화 <미라클여행>의 포스터 앞에 선 허철 감독. ⓒ 하성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움직인다. '갈등'이나 '정치'보다 '순수'나 '정화'와 같은 단어가 어울린다. 강정마을의 바다가, 그 자연의 소리가 보는 이들을 그렇게 만든다. '해군기지'나 '세월호'란 몇 가지 정보만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광경은 분명 우리사회의 이면이지만, 그 안의 갈등까지 품어 안을 것 같은 묘하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5일 개봉한 <미라클 여행기>(아래 <미라클>)는 그렇게 '서사'와 '서정'이 행복하게 동거하는 다큐멘터리다. 청년백수가 '강정 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위해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벌어지는 나흘 간의 이야기는 예상과 달리 논리와 이념을 뛰어 넘어 사람과 자연을 보게 만든다. 살짝 힘을 뺀 연출은 그래서 더 힘을 발휘한다(관련기사 : 강정에서 눈물 흘린 백수, 그녀는 빨갱이일까?)

이 <미라클 여행기>를 연출한 허철 감독은 미국에서 15년 동안 영화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다시 국내에서 영화과 학생들을 가르친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전작 <영화판>은 한국영화계와 역사의 계보를 훑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80년대를 살아냈던" 세대 답게 자신의 영화들이 결국 사회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수렴된다고 못을 박는다. 

다음은 개봉 전 허철 감독과 만나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비극의 세월호가 희망의 배였던 그때... 청년백수 제주로 향하다 

 영화 <미라클 여행기>의 한 장면.

영화 <미라클 여행기>의 한 장면. ⓒ 미라클필름


- 개봉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개봉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주변에서 힘을 많이 줬다. 다 영화인들이라(웃음). 옆 사무실 쓰는 <한공주> 이수진 감독은 '감독님,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배급사 없어도 영화를 세상에 나오게 하는 게 감독의 책임이고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도리'라고 하더라. 아이들을 키워봤지만, 부모들 맘대로 안 된다 깨우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진짜 부모 마음이 되더라(웃음). 이젠 <미라클 여행기>란 제목처럼 자기 운명으로 여행을 떠나겠구나 싶어 담담하다."

- 영화인들 반응은 어떻던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진영 논리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따뜻하고 순수한 의도를 받아들여 준 것 같다. 독립영화전용관을 비롯해 속속 개봉관이 확정되고 있는데, 그 동안 도와준 분들에게 할 일은 한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하고."

- 제주로 향하는 배가 세월호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아무래도 보여주는 입장에서도 부담을 느낄만한 소재가 됐다. 
"종합선물세트처럼, 세월호를 타고 강정을 가는 이야기라 불편해 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 자체가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누가 옳다는 걸 주장하는 게 아니잖나. 한국사회 분위기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그렇지.

세월호도, 강정도, 쌍차도, 비정규직 문제도 모두 다 약자나 지역주민들 소리에 대해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들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진심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사회를 꿈꾸는 것, 그게 기적이고 미라클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도 그런 노력들을 더 많이 면 하는 바람이다."

-  세월호 내부를 제대로 보여주는 첫 영화이지 싶다.
"세월호는 우리가 배로 제주까지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지금은 불행의, 비극의 배였지만, 그때만 해도 기적을 꿈꾸며 5천 명의 마음을 싣고 가는 희망의 배였는데….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몰락을 봤다면, 주인공인 최미라는 세월호를 타고 강정에 가서 공동체의 몰락을 봤다. 언뜻 비슷한 문제인 것 같다.

광화문 단식 농성도 참여했었는데, 그때 개인적으로 만나 영화에 세월호 장면이 있다고 말씀도 드렸다. 불꽃놀이도 그렇고 그때 찍은 사진과 배경음악도 그대로인데…. 유가족 분들이 영화에 나오는 세월호를 보고 더 마음 아파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긴 했다."

<미라클 여행기>에 올리버 스톤 감독이 등장할 뻔?

 언론시사 당시 허철 감독과 배우 최미라.

언론시사 당시 허철 감독과 배우 최미라. ⓒ 미라클필름


- <미라클 여행기>는 주인공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다.
"주인공이 필요한 영화라 깨닫고 누굴 선택하느냐 고민이 많았다.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니까 그 세대들이 고민이 많더라. 연구실에 온 친구들에게 "나중에 뭐하고 싶냐"고만 물어도 펑펑 울기도 하고. 왜냐고 물어봤더니 그런 질문을 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뭘 할까를 도와주기보다 학점, 스펙, 돈 이런 부분만 알게 하고."

- 주인공 최미라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2007년에 처음 봤는데, 그땐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었다. 사실 기억도 안 나는 학생이었지(웃음). 2013년 봄, 여름에 4개월 정도 단편 다큐에 연출부를 하며 이 작품까지 연이 닿게 됐다. 고대 경영학과를 나와 연기자를 하려는 친구였다. 그런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왜 고대 경영 나와 연기자를 하느냐'란 말이 제일 듣기 싫다더라. 쌓인 게 많고 응어리 진 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제주도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하고. 뭔가 응어리진 청년 백수가 한 번도 안 가본 제주도에 간다는 설정이 좋았다. 알려진 배우였다면 안 썼을 거다(웃음)."

- 역시나 다큐는 선택이 더 중요한 거 같다. 강정마을에 간 거 자체도 그렇고.
"최미라 배우를 못 만났다면, 나라도 내레이션을 했을 거다. 나 또한 강정마을은 처음이었으니까. 한국에 다시 와서 7년이 됐을 때인데,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하면서도 학교에 있으니 완전히 뛰어들기 보다 어느 정도 사회현실과 거리를 두기도 했고. 그때 올리버 스톤 감독이 강정 마을에 왔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접하게 됐다."

- <JFK>로 유명한 그 '반골' 올리버 스톤 감독?
"그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 감독이 한국에 와서 강정까지 갔다는 사실이. 처음엔 스토리를 가지고 영화를 끌고 갈까도 싶었다. 올리버 스톤의 일반인 팬이 그가 갔던 길을 찾아 가는 걸로. 근데 너무 한정적이고 연기지도도 해야겠더라. 그래서 그걸 피하고 머리 속에만 강정이 있는 주인공이 자연스레 느끼는 걸 보여주자고 싶었다.

촬영 당시가 딱 그랬다. 배 안에서 촬영할 때만 해도 정신이 없었지. 미라씨가 카메라를 조금 의식하더라고. 술도 좀 마시고 사람들도 만나고 갑판도 나가고 하는데, 표정이 어정쩡 한 거지. 그래도 그냥 놔뒀다. 더 어색해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런데,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강정에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자연스레 녹아들 거라 예상했다."

- 주인공이 망루에 올라가는 장면도 연출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 장면이 바로 터닝포인트다. 공사 현장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망루였는데, 덩치 큰 촬영 감독도 무섭다고 못 올라가는 곳을 미라씨가 치마를 입고 올라간다는 거다. 안전 문제가 있었지만 길게찍기로 그냥 놔둔 이유가, 본인이 (공사)현장이 정말 보고 싶다고 하더라. 도대체 어떻게 돼 가는 거냐고. 신부님들과 경찰들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난 뒤라 '아, 이 친구 감정이입이 됐구나' 싶었다. 영화에서 보듯 캐릭터 변화가 실제로 이뤄진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현재진행형의 '강정'을 주목하라

 영화 <미라클 여행기>의 한 장면.

영화 <미라클 여행기>의 한 장면. ⓒ 미라클필름


- 일반적인 다큐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어디까지 의도한 건지도 궁금했고.  
"처음부터 억지로 설정을 만들어 찍는 건 하나도 없었다. 스태프들도 단편 때 다들 같이 했던 팀이고, 미라씨도 공짜 여행이니 진짜 더 가고 싶다고 하고(웃음). 오히려 연출을 한 건 (최규석 화백의)그림을 넣거나 음악을 신경 쓴 정도? 강허달림이나 손병휘는 세월호에서 공연을 했던 거라 자연스레 들어간 거고. 반면 경찰과 대치하는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서 만난 가족이 고립되고 아이들이 울고 하는 모습은 꼭 넣고 싶었는데 소스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뺐다. 

오히려 예상을 한 건 (강정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에) 책을 가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받는 사람들의 마음 정도일 거다. 그 흐름은 그대로 갔고, 올리버 스톤 얘기는 다 빠졌고(웃음). 접근 방식은 다큐나 극영화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스토리텔링이고, 어떻게 설득력있게 예술적으로 그리느냐는 동일한 것 같다."

- 내레이션은 어땠나.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치였는데.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미라씨에게 솔직한 마음을 쓰라고 했고 같이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만들어 나갔다. 경험이 많지 않은 연기자가 연기를 하려고 할 때 어색하게 나오는데, 그러다보니까 편집하면서 갈등도 많았다. 아무래도 내레이션이 정말 중요하니까. 지금도 완전히 만족은 못 한다.(웃음)"

- 결국 '강정'이다. 영화 속에서 말하듯, 현재도 강정마을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니까.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게 단순히 강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케이스로 한국사회를 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근데, 너무 무기력한 것 같다. 시민사회도 그렇고,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나. 이제 해군기지는 완공을 앞두고 있고. 최근엔 군관사 건축 때문에 주민들에게 4차 경고장이 나왔다고 한다. 13일까지 퇴거를 안 하면 강제철거를 한다고. 마을 주민 전체 1900명인데, 많은 분들이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

영화의 마지막 카피처럼 지금도 강정은 현재진행형이다. 하나도 안 변했다. 이번에 주민들에게 영화를 보여드리려 제주에 갔는데 매일 매일이 그대로더라. 관객들이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강정만이 아니라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 쌍용 문제도 그렇고 모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 어떤 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까. 
"가장 화가 나고 답답한 건 과정이 일방적이라는 거다. 강정의 경우도, 지역 주민의 호소도 뭐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이고.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좀 더 문제의식을 가지고 관심을 가진다면 그런 일들이 덜 벌어지지 않을까? 젊은이들도 개인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많구나라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구호는 사실 말도 안 되잖나. 스펙이 약해서 그래라며 자책하지 말고, 구조적으로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을 했으면 싶고, 그런 변화들을 기대 하고 있다." 

- 이러다 인터뷰가 나가면 '종북 감독'으로 불리는 거 아닌가?
"일베나 어버이연합에서는 종북감독이라고 하겠지(웃음). 대통령도 통일이 대박이라는데 종북이라니(웃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다 종북 아닌가? 영화감독이나 대학교수나 지식인들은  세상을 비판적으로 봐야 창작이 되고 예술을 할 수 있는 거잖나. 정치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나. 모든 예술하는 사람, 문화 창작자들은 다 리얼리스트다. 정치적이니까 문제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멘트인 거지. 예능프로, 로맨스를 그린 사랑 영화에도 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이 들어 있고,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인 건데…."

"영화판이든 강정이든, 결국 '인간의 조건'에 관한 이야기들"

 영화 <미라클 이야기>를 연출한 허철 감독.

영화 <미라클 이야기>를 연출한 허철 감독. ⓒ 하성태


- 전작 <영화판>은 한국영화의 역사를 조망하는 프로젝트였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니, 똑같다고 생각한다.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미시적인 것, 사람들 얘기, 그러니까 '휴먼 컨디션'이랄까, 인간의 조건에 관심을 두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판>은 던지는 질문이 큰 것 뿐이다.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 안에서 바둥거리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전작이 영화인이 정치검열에서 자본검열의 시대로 넘어와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보여준다면, <미라클>은 청년세대가 보이지 않게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는 사회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 교수를 그만 두고 진짜 '영화감독'이 됐다. 
"겉으로 보이는 스펙만 보면 의아할 수 있는데, 정체성이 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1992년도에 유학 가서 한국에 단 한 번도 안 왔다. 연출 공부했던 뉴욕 생활 4년이 가장 행복했지. 하지만 80년대를 겪었다는 건 변함이 없다. 전두환시절 때 대학을 보내서 그런지 거대 권력에 관심이 가고."

- 개인적으로 아는 허철 감독은 일반적인 '386세대'와는 달라 보인다. 
"반미를 외쳤어도 사람들 마음 속엔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았나. 하지만 미국에서 돈과 인종주의가 확 보였고, 핵심적인 권력도 모두 백인남성들이 쥐고 있더라. 80년대를 살아왔기에 교육을 통한 의식화가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눈을 갖게 된 것 뿐이다. 그래도 박사 과정을 하면서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방법론보다는 스토리, 좋은 삶에 대한 고민과 휴먼컨디션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와중에 정지영 감독을 만나게 되면서 <영화판>을 하게 된 거다. 극영화를 찍기 전에 의무감을 갖고서. 그 사이 <미라클>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 거고."

- 영화계 마당발로 소문이 자자하다. 
"마당발은 아니고(웃음). 샌프란시스코 한국영화제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제를 통해서 한국영화인과 계속 교류를 해 왔다. 봉준호 감독 <괴물>의 CGI 작업을 도와주기도 했고. 15년 동안 한 번도 안 왔더니, 다들 농담으로 망명한 거냐,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느냐 묻기도 하더라(웃음).

신기한 게, 그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와와서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는데 아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만났던 분들이 다 있더라고. 묘한 감정이 들더라. 미국에서 마이너리티 컬쳐 운동을 한 건데, 그때만 해도 한국영화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 한국영화를 아이오와와 샌프란시스코에 소개한 거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은 느낌이긴 하다."

- 그런 노력 뒤에 영화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완성된 독립영화가 <미라클>이라 해도 될까?
"배급, 마케팅홍보, 제작까지 다 했으니 진정한 독립영화라고 해도 될까?(웃음) 독립영화의 기준이 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 미학적 관습으로부터의 독립, 내용에서의 독립. 세가지 중 하나만 해도 독립영화인데 세가지를 다 실현시킨 거니까(웃음).

4일 촬영해서 84분 영화가 나왔다. 촬영 동안 쓴 비용은 60여 만 원. 마케팅은 크라우드 펀딩.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처럼 원스탑 서비스가 이뤄진 것 같다. 사실 여기까지 온 게 정말 신기하다."

미라클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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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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