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해안선>을 보았다. <올드보이>의 시사회장에서 김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조재현의 자리를 비집고 출연한 장동건을 만난 직후였다.

ⓒ 엔터원
적어도 내 깜냥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는 예술 영화의 키치적 특성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작품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감독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제작자와 투자자의 입김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가 프린트되어 나온 후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기덕은 이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고집과 뚝심이 있다. 그 대신 그는 적은 제작비를 들여 빨리 찍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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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페라도>를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제작비를 줄일수록 영화는 자유로워진다”고 말한다. <친구>를 통해 흥행배우의 반열에 오른 장동건이 개런티를 포기하고 출연을 감행한 김기덕 영화에서 ‘고문관’으로 분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강한철 상병은 말 그대로 공명심과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언젠가 해안에 침투하는 간첩을 잡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생각할 만큼 한시도 경계를 늦추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가 해안선을 넘어서서 위험한 정사를 벌이고 있던 민간인을 간첩으로 오인, 사살한 후의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그가 사살한 남자를 사랑했던 미영은 충격으로 미쳐가기 시작하고, 강 상병이 꿈꾸던 영웅주의는 절망과 패배감으로 뒤바뀐다.

인위적으로 설치된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그것은 <해안선>에서 마치 섬처럼 부유할 수밖에 없는 부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겪게 되는 갈등의 시발점이 된다.

특정한 공간에 갇혀 있는 인물들의 불안한 시점은 그대로 화면을 가득히 채우는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휴가를 채우지 못하고 귀대하는 강상병을 린치하는 동네 건달들 뒤로 뛰어다니는 미영의 모습이나 제대를 한 뒤에도 부대 바깥을 서성이는 강 상병의 광기 어린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 <해안선>은 그동안 감독이 숱하게 선보였던 ‘공간’과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골라내어 내면화시키는 김기덕 영화를 ‘잉여 작품’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다양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문관’을 자처하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다. 이제는 트랜드를 신경쓰지 않는 ‘고문관’같은 감독들이 하나 둘씩 나와야 한다. 설사 평론가들과 언론이 앞 다투어 그들의 작품을 물어뜯더라도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누가 그랬듯이 ‘김기덕의 지루한 동어반복’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매번 그가 천착하는 작가의식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그래서인지 <해안선>이 '툭' 하니 던지는 자신감만큼은 도저히 밉게 보이지 않는다.
2003-11-14 10:1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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