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우
허정무 감독의 프로행을 두고 축구계에서 말이 많은 요즘이다. 허 감독의 프로 복귀는 지난 6월 인천의 초대 사령탑, 7월에는 부천SK 감독 내정설 등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언론사 스포츠면에 특종으로 실리곤 했다.

용인FC라는 상당 규모의 축구학교를 건립하며 한국 축구의 초석을 다진 데 이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며 프로행을 전격 선언한 허 감독.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그의 속내는 K-리그 우승의 목마름이 아니었다.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팀을 맡아 수년 안에 국내를 넘어 아시아 정복에 이어 세계 톱 레벨의 팀들과 견줄 만한 팀을 만들겠다는 것.

93∼95년 포항, 96∼98년 전남드래곤즈 감독으로서 프로 생활을 마감하고 98년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2002월드컵 준비와 올림픽대표팀을 동시에 맡았으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2차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이렇듯 허 감독은 화려했던 선수 시절에 비해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 미련이 많이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미련 때문만은 아니었다. '호걸'형의 허 감독은 무언가 강한 의지가 치솟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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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축구학교 '용인FC'

다음은 허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용인FC만 생각하면 흐뭇"

- 용인FC 일 때문에 바쁘다고 들었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코치진 경력도 짧고 공사도 덜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한국의 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도입했다. 프로 2군으로 조기 진출하는 고등부 선수들보다 우리 선수들이 앞으로 가능성은 더욱 높다.

역할 분담이 돼 있어 내가 특별히 많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선수들 대회 출전하는 곳에 가끔 따라 가는 건 지도자로서 여러 경험을 갖출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고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 현재 맡고 있는 용인FC와 유학 시스템을 비교한다면.
"개인적으로 그런 도전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도피성 유학이 되면 안된다. 학교 교육 시스템에 도피한다면 유학이 모든 걸을 대신해주진 않는다. 유학을 가는데는 관문이 많고 어린 선수들에게 어려움도 많다. 문화, 언어, 식생활, 훈련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유학에 따른 효과는 있겠지만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외국은 워낙 시설적으로 훈련환경이 좋기 때문에 두루 경험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프로팀 맡아 세계 호령하고 싶다"

ⓒ 임채우
- 용인FC 총감독으로 있는데 프로로 갈 생각은 없나.
"팀을 맡더라도, 오라고 한다고 무작정 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조건은 중요치 않다. 단지 적극적인 투자에 대한 확실한 답을 해줘야 한다. 나도 좋은 팀을 만들고 싶은 건 당연하고 구단에게도 그게 좋은 일이니. 좋은 명문 팀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확실히 해 줘야 한다."

- 부천SK 감독에 내정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몇 차례 접촉은 했지만 기자들이 앞서 간 것이다. 부천 구단이 알려지길 투자에 인색하고 그러다 보니 팬들로부터 인식이 안 좋아진 게 사실이다. 몇 차례 부천 경기장에 가 43명의 선수를 파악해봤다. 그 중에는 못 쓸 선수와 가능성 있는 선수도 있었다.

일단 팀을 맡으면 연패 사슬을 끊고 어느 정도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로 과감한 투자만 약속한다면 나는 프로로 갈 생각이 있다."

- 부천 말고도 인천, 서울 등이 프로구단 창단에 적극적인데.
"인천은 내년 시즌에 참가하기 위해 아직 사무국 인선이 안된 상태이다. 사무국이 구성된 후 코칭스태프 얘기가 나오는 게 수순이다. 내년에 뛸 선수들 뽑아 훈련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아직 서울구단을 논하기엔 시기상조이고.

프로에 가서 좋은 팀 만들어 우승하고 싶다. 나아가 한국을 넘어 유럽 명문팀과 맞설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게 내 바람이다. 이런 건 개인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고, 구단주가 넓은 안목을 갖고 투자를 해주는 등 여러 부분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월드컵 4강이 현실로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의 잠재력을 지녔다. 세계적인 팀이 못될 것도 없다. 한국축구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과 프로감독의 매력을 비교한다면.
"역시 꽃은 프로가 아닌가. 정말 좋은 팀을 만들고 싶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목표가 있다. 유소년 지도 또한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지금 프로에 갈 시기다. 꽃을 다 못 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포항에서 홍명보, 황선홍, 라데 등과 함께 막강한 팀을 만들었고 96년 전남드래곤즈를 맡아 FA컵에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 이후 대표팀 감독을 맡았는데 그 당시 얘기를 해준다면.
"그 때 2002월드컵 준비를 위해 젊은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며 이영표, 이천수, 김남일, 송종국, 설기현, 박지성 등 대부분의 선수들을 중용했다. 프로에서 아쉬웠던 것, 그런 야망 등 모든 걸 정리하고 어린 선수 발전을 위해 힘썼다.

그 나라 축구가 강해지기 위해선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야 한다. 2002월드컵 이후 정말 많이 좋아졌다. 협회도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며 용인FC처럼 시 자체에서 결단을 해 그런걸 만들었다는 게 대단하다. 감히 프로팀이나 협회에선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나는 영원한 축구감독"

ⓒ 임채우
- 언론에서 '히딩크 영웅 만들기'가 너무 심하지 않나.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 중 한사람으로서 어떤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인정할 건 하고 우리나라 감독들이 잘 못한 건 반성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건 있다. 우리나라 감독들이 히딩크 만큼의 시련이 있었다면 그 상황에 감독 몇 번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김호곤 감독에 대해서도 그렇다. 네티즌, 언론 등에서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호곤 감독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 히딩크 감독 역시 처음엔 비난 받았지만 결국 좋은 성적을 일궈냈다.

나는 이번 한일전에 최성국, 정조국 투입 시점을 3가지로 분석한다. 김호곤 감독이 스타팅 멤버에 넣었지만 전날이나 경기당일 몸 상태가 안 좋았거나, 상대와의 전략싸움에서 일부러 흘린 경우, 또 하나는 선수 길들이기가 아닌가 싶다."

- 방송 해설과 신문 기고 등 다른 방면으로도 일을 하는데.
"해설과 글을 쓰는 건 시간이 날 때 틈틈이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일선에서 뛰는 지도자다. 본격적으로 다른 길로 나설 생각은 없다. 올 해 여건이 허락한다면 프로에 갈 생각이 있다. 프로에서 못다한 것도 있고, 현장 지도자로서 그 역할이 어울린다."

- 축구인 출신 행정가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감독' 말고 향후 다른 계획은 없는가.
"(웃음) 아무래도 난 성격이 이상한 것 같다. 정치를 정말 싫어 한다. 사실 그쪽과 관계되는 사람이 정치입문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축구와 인연을 맺어 성공한 사람이다. 전혀 관심 밖의 일이다.

축구쪽 말고는 다른 공부를 많이 못한 게 사실이다. 정치에 나서면 '나 같은 놈들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말을 누군가 할거다. 마찬가지로 글쎄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축구 쪽 행정가는 몰라도 다른 쪽은 전혀 생각 없다. 선수 가르치는 게 천직인 것 같다.(웃음)"

- 한 번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진돗개 별명의 '유래'에 대해.
"(크게 웃음) 진도 출생이어서 비롯됐다. 진돗개가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동물이며. 천연기념물 53호이기도 한데 원래 선수시절 똥개, 진돗개 두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 선수시절 당시 감독이셨던 함흥철 선생님이 지어주셨다.

처음엔 '진도야, 진도야'라고 부르시다 진돗개가 됐는데 어느 날부터 시합만 나가면 '야 진도 너 오늘 골 못 넣으면 똥개야!'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겠어. 똥개 말고 진돗개 되려면 꼭 넣어야지."
2003-07-31 10:1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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