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 스틸컷
미디어나무(주)
03.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일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 하나였다. 오프닝 타이틀이 끝나고 카메라 한 대가 고요한 아침의 꿈틀리 인생학교를 비추던 짧은 신 하나. 학교의 측면 현관문을 열고 나온 한 학생이 멀리 거치된 카메라를 향해 환하고 밝게 인사를 건넨다. 그것도 90도의 힘차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거치된 카메라 뒤에 제작진이 존재했는지의 여부는 관객의 입장에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단적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앞서 잠시 밝힌 대로 이 공간에는 공교육 시스템 속에서 여러 문제를 경험한 학생들이 모인다. 극 중에서 소개되는 바를 보자면, 스트레스로 인해 섭식장애를 겪어 힘들어했던 학생도 있고, 아버지의 갈등을 이기지 못해 마음속에 큰 상처를 받은 친구도 있었다. 직접 소개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매체나 주변을 통해 흔히 알고 있는 여러 관계적 어려움을 겪은 친구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친구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찾아온 (사전에 충분한 설명이 분명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카메라를 향해 그렇게 밝고 환한 인사를 먼저 건넬 수 있다는 것은 그 과정이 회복과 재생의 시간 속에 있음을 충분히 증명해 낸다.
이들에게 주어진 1년이라는 시간은 그 외에도 꽤 다채로운 활동과 경험으로 채워진다. 자신의 경험을 에세이로 녹여내며 함께 공유하기도 하고, 텅 빈 논에 김을 매며 수확의 기쁨을 기다리기도 하는 등 그동안 억눌려있던 내외면의 성장을 함께 도모한다. 성적의 압박과 권위적인 태도로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던 부모와의 관계 역시 재정립되는 과정에 놓인다. 이제 이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먼저 감정으로 교류하는 쪽으로 새로운 관계의 싹을 틔울 것이다.
04.
그렇다고 해서 기숙형 전환 학교이자 대안학교인 꿈틀리 인생학교에 긍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교육의 분리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에 속한다. 교육 기관에서의 교육만큼 가정에서의 교육 또한 함께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교육 기관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부모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퇴소를 결정하는 학생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안 학교가 필요한 학생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닌데 학생 수가 점차 감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의 어려움이다.
이는 선택과 방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아직 존재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선택과 완전히 다른, 잠시 쉬었다 나아가는 일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현재의 출렁이는 현실을 더 부추긴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시스템에는 아직까지 백 퍼센트 자체 조달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운영 자금 확보의 문제도 함께 연결돼 있다. 이런 구조의 대안 학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쉽게 구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꿈틀리 인생학교를 졸업한 거창 연극고 3학년 황하름 학생은 지금 현실로 돌아가 무대 감독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교내에서 꾸려진 연극 무대를 직접 구성하고 지휘한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지난 1년의 시간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면 거짓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분명 후회는 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만약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그는 어떤 모습의 학생이 돼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