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 '파친코' 시즌2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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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시대"는 세기말을 앞둔 1989년 일본 '버블경제'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다. 여기서 "이 사람들"은 일본인과 미국인들, "우리"는 재일조선인들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한금자가 소유한 자택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성공과 부를 위해. 그는 10억 엔이란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하는 것도 모자라 같은 1세대 자이니치인 외할머니 선자(윤여정)까지 동원한다.
이때까지 솔로몬도 사실 잘 몰랐다. 정말 시대가 변한 건지, 일본과 미국이 조선인들에게 빚을 진 건 맞는지 말이다. 늘그막이 글자를 깨우칠 만큼 신산하게 살아왔던 한금자는 억만금을 준대도 땅을 팔기 싫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과도 소원한 한금자에게 평생에 걸쳐 소유권을 쟁취해낸 땅이야말로 죽어서 묻혀야 할 심리적‧물적 토대요, 어떤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일 터다.
이러한 1세대 자이니치 한금자와 부사장 승진이 걸린 솔로몬의 대립각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 낀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 간, 이념 간 가치관 갈등을 대변한다. 고뇌하는 솔로몬에게 선자는 "그라모, 평생 자식들 뒤에서 희생하는기, 그기 우리 팔자가 이 말이가? 언제쯤 그만하면 되노? 죽으면 그만해도 되나?"며 역정을 낸다. 부산 영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죽도록 고생했던 선자의 한이 서린 한탄이었다.
그리하여, 한금자와 뒤이은 솔로몬의 예상치 못한 결정으로 인해 이중 삼중의 경계인인 솔로몬의 운명은 또 한 번 변곡점을 맞게 된다. 자기 땅, 그러니까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자신들의 물적 토대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출이 극적 반전을 도모하는 추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단순히 반일이나 반미 등 민족적 대결 구도에 빚지지 않음을, 세대 간 대립까지 품어내는 야심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설정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뉴욕타임즈 '베스트 도서 10선'으로 꼽힌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 원작이자, 애플TV가 1억 3천만 달러(약 1000억)를 투자한 OTT 시리즈 <파친코> 시즌1은 4대에 걸친 한인 가족들의 이민사를 그리며 현재가 과거를 경유해 그 과거를 반추하게 만들고 또 그 과거가 현재를 추동하게 만든 바 있다.
"시대가 변했잖아요"라던 솔로몬의 대사처럼, 그렇게 <파친코>라는 TV 쇼는 텍스트 안팎으로 시대가 변했음을 온몸으로 강변해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도 엄두를 못냈던 소재에 도전한 이 용감무쌍한 미 애플TV 드라마는 미 매체에서 먼저 반향이 일었고, 글로벌 OTT와 K-컬쳐 바람을 타고 전 세계 27개 언어로 타전됐다.
지난해 <파친코>는 끝내 수상이 불발된 에미상은 외면했지만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 시리즈상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고, 전 세계 11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어렵지 않게 시즌2가 결정됐고, 마침내 첫 방영으로부터 2년 만인 지난 8월 23일 <파친코> 시즌2 1화가 공개됐다.
시즌2로 돌아온 <파친코>의 관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