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장항준 감독, 배우 김의성, 최덕문,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등 문화예술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유성호
다행이다. 아니, 당연한 귀결이다. 영화인들이,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고(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 발표 당시 2천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연명에 함께 했다.
당시 이들은 성명서에서 "고(故) 이선균 배우의 장례 기간 내내 방송, 영화, 음악 등 연예계를 총망라한 많은 분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수사당국의 수사절차의 적법성을 따져 물었고, 녹취를 보도한 KBS를 포함한 언론 및 미디어의 보도가 '사이버 렉카'와 같이 이선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아닌지 꼬집었으며, 마지막으로 정부 및 국회에 이렇게 요구한 바 있다.
설령 수사당국의 수사절차가 적법했다고 하더라도 정부 및 국회는 이번 사망사건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사사건 공개금지와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수사당국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선균을 둘러싼 작금의 영화계 밖 움직임은 어떨까.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해 이선균이 포함됐던 경찰의 유명인들 마약 의혹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된 모양새다. 경찰이 이선균과 함께 입건해 포토라인에 세웠던 '지드래곤' 권지용도 무혐의 처분 됐다. 수사 당시 이선균을 앞에 내세웠던 경찰은 함께 수사 선상에 올랐던 11명 중 5명만 검찰에 송치했다.
이선균 관련 보도를 쏟아냈던 대다수 언론들이 이 같은 경찰의 수사 종결 내용을 두고 '용두사미', '흐지부지', '조용히 끝났다'와 같은 제목의 보도를 내놨다. 보도 자체가 조용했다. 아예 가치 판단이 없는 제목도 다수였다.
지난 1월, 문화예술인들이 이선균 보도에 나섰던 언론 및 미디어를 향해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고 물었던 것이 머쓱해지는 보도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헌사와 달리 영화계 밖 현실은 '이선균 전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총선 직후인 지난 5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유정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이선균 (재발)방지법 (제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같은 당 양부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피의사실공표금지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역시 '이선균 재발 방지법(가칭)' 발의를 예고한 민주당 주철현 국회의원이 주최했던 '검·경 조사과정 자살자 전수조사 결과에 따른 재발 방지 토론회'도 토론회에 그쳤을 뿐이다. 지난 8월 초 열린 '온라인 사이버렉카 피해 대책 마련 위한 정책 토론회' 역시 이선균 배우의 사례가 언급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선균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빠르지만 '이선균 재발 방지법'을 현실화 하는 일은 무척 더딘 상황이라고 할까. 나아가, 더딘 이선균 재발 방지법의 국회 통과가 전부일 수 없다. 같은 사안이 반복될수록, 그리고 이선균이란 이름이 회자할 때마다 '이선균 수사'가 정치, 그리고 정치에 복무한 수사기관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복기하게 된다.
'영화는 다시 찾아볼 수 있지만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유재명 배우가 길어 올린 경구가 뼈 아프게 다가오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