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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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이, 아동극이 그의 종착역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신인 시절 설경구를, 황정민을, 조승우를, 윤도현을 발탁한 김민기의 원칙 역시 새로움이었다. 본인 역시 도전하는 입장에서 백지 상태의 순수한 연기자와 함께 <지하철 1호선>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는 대목에선 이미 레전드에 반열에 올라섰지만 그 기득권을, 상징 권력을 모두 내던져 버렸던 그의 겸허함과 순수함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앞서, 학전을 통해 김민기가 본인 몫보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개런티와 계약서를 챙기고, 심지어 러닝 개런티까지 도입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대학로에서도 최초였고, 1990년대 문화예술계의 현실을 떠올린다면 가히 혁명적인 조치였다. 그것도 다 신인들과 공연 자체를 존중하고, 앞것들을 아끼고 애정한 뒷것으로서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리라.
아동극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웃음소리 듣는 게 그저 좋았다"며 자꾸 무대로 내려왔다는 김민기는 '돈 안 되는 일'에 매진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티켓값도 업계 최저로 받았다. 학전을 통해 신인을 키웠던 심정으로, 예술하고 창작하는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은 결과일 터다.
김민기의 이런 철학을 이어받아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학전을 아동전용극장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란 소식이다. 아마도 김민기의 철학과 유산, 그리고 노래들은 한국 문화예술계의 자산으로 오래도록 전승되고 전이될 전망이다. 그렇게, 김민기는 탄압받은 가객에서 문화예술계의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본 사람에게 울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지난 5월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연출한 김명정 PD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감이다. 이를 살짝 비틀어보자면, 이제 세상 사람들은 둘로 나뉠 거라 확신한다. 지금껏 김민기에게, 그의 노래와 학전의 공연에 영향을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이들로 말이다.
그의 나이 올해로 73세. 너무나 큰 산이 너무 일찍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한대수의 노래를 김민기가, 또 김광석이 다시 불렀던 '바람과 나' 속 가사처럼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인생을, "저 언덕 너머 물결같이 춤추던 님"과 같은 삶을 살았던 큰 어른이 "자유의 바람"이 됐다.
24일은 그의 발인이다. 부디, 편히 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