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가, 영화에 출연했다. 지난 5월 초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관에 언론인 손석희의 얼굴이 스크린에 떴다. 손석희가 인터뷰이 중 하나로 출연한 영화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에 초청된 <침몰 10년, 제로썸>. 영화 속에서 그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밝혀져야 하는 건 명확히 두 가지"라며 "구조 방기와 침몰 원인"을 꼽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방송사 사장 출신 언론인이 독립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일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10주기와 손석희라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언론인 손석희는 감히 세월호 참사 보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끌던 JTBC <뉴스룸>은 10년 전 87일간의 팽목항(현 진도항) 현지 연속 보도를 이어갔고, 앵커였던 손석희는 참사 열흘 째 현지에서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참사의, 역사의 기록자로 남을 만했다. 참사 보도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월호 이전까지, MBC를 떠나 종편에 안착한 그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업계와 대중의 관심은 그가 삼성 관련 보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였다. 당시 <뉴스룸>이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망 노동자 사건을 다룬 것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였다. 2020년 1월, 6년 4개월 만에 <뉴스룸> 앵커에서 물러난 직후 손석희는 이런 소감을 남긴 바 있다.

"세월호와 촛불, 미투, 조국 정국까지 나로서는 그동안 주장해 왔던 저널리즘의 두 가지 목적, 인본주의와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는데 평가는 엇갈리게 마련이다."

맞다. 그 손석희다. JTBC 사장에서 물러난 뒤 스스로를 "은퇴자"로 여긴다는 손석희. 그의 지난해까지 직함은 JTBC 순회특파원(전 총괄사장)이었고, 현재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객원교수로 재직 중인 손석희 이름 석 자가 한국 사회에 드리운 외형적 존재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사 결과가 그렇다. 그는 시사저널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2004년부터 17년째 1위를 지켰다. 지난해 시사저널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인' 분야 1위도 손석희였다. 또 시사IN(시사인)과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매년 가을 발표하는 신뢰도 조사에서도 손석희는 지난해 7.7%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3.5%),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2.3%)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7명(71.5%)이 신뢰하는 언론인이 없다고 답한 가운데 나온 이 같은 결과 역시 앞선 시사저널 조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딱히 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그가,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 그가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건 여론 형성을 좌우하는 신뢰할 만한 스피커가 현저히 적다는 방증일지 모를 일이다.
 
그런 손석희가 방송에, 그것도 MBC로 돌아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던 2013년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하차한 지 11년 만에 5부작 특집 <손석희의 질문들>(이하 <질문들>)로 돌아왔다. 지난 13일과 20일 방송 모두 이름값에 걸맞게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고, 언론들이나 대중들도 꽤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손석희는 손석희였다.

손석희의 11년 만의 MBC 복귀, 어땠을까
 
 MBC <손석희의 질문들> 관련 이미지.
MBC <손석희의 질문들> 관련 이미지.MBC
 
그런데, 이름의 무게가 부담이었던 걸까. 결론적으로, 손석희답지 않은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식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토크쇼였다.
 
왜일까. <뉴스룸> 인터뷰와 달랐다. <100분 토론>은 더더욱 아니었다. 기존 토크쇼가 실종되어 버린 방송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유재석이 케이블 방송에서, 더 나아가 그 유재석이 유튜브에서, 심지어 나영석 PD가 유튜브 개인 채널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영상이 수십,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때문일까. 혹여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MBC가 놓은 내외적인 조건이 영향을 미쳤을까.

하필 첫 방송 전, 게스트인 백종원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인 '연돈볼카츠' 논란이 터졌다. 방송 한 달 전 섭외를 마쳤다고 하니, 출연 시점 자체가 오비이락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자영업자의 고충'이란 주제를 살필 수 있는 맞춤형 '셀럽' 게스트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평균 이상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증하는 그 백종원 아닌가.

하지만, 백종원이 "연출자가 < PD수첩 > 출신이던데"라는 농담으로 부담(?)을 표했던 제작진이 가리키는 <질문들>의 방향은 정통 인터뷰나 토론 프로그램도, 토크쇼도 아니었다. 예상외로 <질문들>은 하나의 주제를 심층적으로, 그리고 다각도로 진단해 보고자 하는 연성화된 종합 시사 프로그램에 가까워 보였다.

첫 방송이 딱 그랬다. '자영업의 위기 그리고 기회'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펼쳐내는 관련 백종원과의 대담과 그에 따른 나름의 진단이 이어졌다. 무리는 없어 보였다. 그 스스로 넷플릭스 토크 예능을 진행했던 백종원은 2700여 개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는 요식업 프랜차이즈 회사 사장이자 골목상권과 지역 상권 살리기에 앞장서는 방송인 겸 유명 유튜버 아니겠는가.
 
손석희도, 제작진도 몸이 덜 풀려서일까. <질문들>의 질문들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핫한 이슈였던 '연돈볼카츠' 논란에 짓눌렸던 건 아닌지, 기존 백종원식 자영업자의 고충 해결 형식에 기댄 건 아닌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을 통해 거대 프렌차이즈 대표에게 듣는 자영업자의 위기와 해결책이 공적 영역에서 자영업자들의 피부에 가닿을지도 미지수로 보였다.

유시민이 말한 <질문들>
 
 MBC <손석희의 질문들> 관련 이미지.
MBC <손석희의 질문들> 관련 이미지.MBC
 
2회 절반은 좀 더 논쟁적이었다. 언론과 미디어를 주제로,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대담을 벌였다. 출연자는 유시민 작가와 30년 경력의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였다. 창과 방패까진 아니지만 대립각은 선명했다.
 
유 작가는 우리 기존 레거시 미디어를 "기득권"이라 칭하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고, 김희원 기자는 "그럴수록 좋은 기사를 찾아 봐야 한다"거나 "자신도 욕할 때도 있지만 일선 기자들은 노력하고 있다", "유튜브가 기존 미디어가 보도하는 영역을 다 아우를 수 없다"며 며 반박을 펼쳤다.
 
안타까운 장면의 연속이었다. 유튜브가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원론적 수준의 논쟁이었다. 유 작가의 창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날이 서 있지 못했다. 김 기자의 방패는 직업과 업계를 대변하는 꽤나 일방적인 항변에 가까웠다. 1대1 토론도, 평균적인 대담도 아닌 어중간한 형식의 삼자 토크가 가져다준 함정이었을까.
 
해답은 유시민의 입에서 나왔다. 2회가 방송된 이튿날인 지난 21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알릴레오> 라이브 방송에 정준희 교수와 출연한 유 작가는 "시사 유튜브 채널을 대표하는 김어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많은 부분이 편집됐다"며 편집의 한계를 지적했다. 
 
전반부가 맥이 풀렸다면 후반부는 김태호 PD가 출연한 예능 토크쇼에 가까웠다. 김 PD는 현재 손석희와 같이 MBC를 퇴사하고 자신의 제작사를 통해 JTBC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 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다. 그런 그에게 듣는 올드 미디어에 대한 향수와 OTT 및 유튜브 플랫폼의 미래는 결코 논쟁적인 내용일 수 없었다. 제작진의 의도였다면 할 수 없다. 그러나 전반부와 후반부가 따로 놀고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손석희는 손석희다
 
 MBC <손석희의 질문들> 관련 이미지.
MBC <손석희의 질문들> 관련 이미지.MBC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 나온다'는 명제는 인터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절체절명과도 같은 평생 숙제라 할 수 있다. 엇비슷한 맥락에서, 손석희가 과거 인터뷰에서 했던 "모든 저널리즘의 시작은 (공적영역에서의) 질문"이라는 말도 여전히 널리 회자되는 중이다. 요즘 같이 언론과 방송계가 하 수상한 시절, 손석희가 MBC에 복귀한 프로그램 제목이 <질문들>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인터뷰는 인터뷰하기 쉽지 않은 대상을 인터뷰어의 눈 앞에, 카메라 앞에 앉혀 놓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질문들>의 출발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상대편에 앉혀 놓을 수 있는 손석희라는 이름값, 즉 유일무이한 권위라고 할 수 있다. 백종원을, 유시민을, 김태호를 2주 간격으로 불러 놓은 것을 보라. 백종원의 해명을, 김희원 기자의 현 언론계 인식을 대중들이 확인하는 것만으로 <질문들>은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질문들>은 그에 비해 설명과 사족을 더하는 식으로 정공법을 피해 갔다. 기존 손석희가 출연했던 뉴스나 시사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는 방청객들의 잔잔한 웃음 효과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분위기를 바꿔 보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라는 손석희의 말처럼,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순서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사실 실제로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들이 준비돼 있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인터뷰 대상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것과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인터뷰를 곁들이는 방식의 차이는 얼핏 유사해 보이지만 그 만큼의 내공이 담보됐을 때 그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다. 또 그럴 때야 비로소 시청자들과 수용자들도 그 차이를 유효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들>은 아직 그 경계에서 갈피를 잡고 있는 도정인 것으로 보인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박사의 미래 진단이 사족처럼 느껴진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제작진의 친절함이 기우였기를. 손석희가 유재석일 필요는 없다. 손석희의 짧은 귀환을 환영하는 시청자들 중에 tvN <유 키즈 온 더 블럭>과 같은 친절함을 원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시청자들은 그 어느 국가보다 유튜브를 애호한다. 시청 기록이 미국보다 월등히 높다는 게 최근 조사 결과다. 그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 <뉴스룸> 시절이나 전통적인 형식의 인터뷰가 유효할 리 없고, 또 강요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손석희는 손석희다. 그는 과거 천하의 이효리를 앉혀 놓고도 진지한 인생철학을 고백하게 만드는 진중함의 대명사였다. 또 그럼에도 방송사 메인 뉴스에 연기자와 연예인들을 카메라 앞에 앉고 싶게 만드는 마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다. 방청객들 박수나 부드러운 음악, 친절한 편집보다 특유의 까칠함과 정공법을 원하는 이들이 더 많을 거라 짐작하는 이유는.

천하의 손석희도 나이를 먹었다. 굳이 백종원의 나이를 언급하며 "10살이 많다"고 고백하는 그도 벌써 낼모레 일흔을 앞뒀다고 한다. 살짝 친절하고 부드러운 질문들로 무장한 <질문들>은 그러나 언론인이자 방송인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인'인 그 손석희가 아직 한국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무사는 군불을 쬐지 않는다."
 
유튜브 출연을 권유하는 김 PD에게 손석희는 정색을 하며 이런 소신을 천명했다. <알릴레오>에서 유 작가는 그런 손석희가 레거시 미디어에서 진행하는 <질문들>이야말로 손석희라는 불세출의 언론인이자 인터뷰어의 존재와 필요를 증명한다고 정의했다. 공감한다. 2회까지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질문들>이 스스로 '은퇴자'라 표현한 손석희의 은퇴 시점을 늦추는 방송이 되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니 조금 더 '쎈' 질문들을 마련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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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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