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Vol.1> 앨범 커버 이미지
케이앤씨뮤직
다양한 장르의 대두로 국내 음악의 황금기나 다름없었던 1980년대의 끝자락 어느 겨울,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즐기면서 취미로 음악을 하던 의대 지망생이 있었다. 그는 베이시스트 조동익, 기타리스트 이병우로 이루어진 포크 듀오 어떤 날의 공연을 본 후, 귀갓길의 압구정역에서 조동익을 마주치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팬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저 김현철인데요. 팬입니다."
당황한 조동익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누고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고 떠났다. 이 짧은 만남이 김현철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는 의대에 낙방하고 전기공학도가 되었지만, 공부는 뒷전인 채 조동익의 집에 자주 놀러가며 점차 음악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 그는 조동익의 집에 놓여 있던 악보를 멋대로 손보았다. 그 악보를 본 조동익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여러 뮤지션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렇게 그는 그 시절 가장 잘나갔던 언더그라운드 음반 기획사, 동아기획과 손을 잡게 되었다. 1989년 8월, 국내 퓨전 재즈계의 걸작 <김현철 Vol. 1>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무 살의 풋풋함, 소박한 시선 담아낸 앨범
모든 트랙을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점에 주목이 가지만, 작품의 질을 한껏 높일 수 있었던 데에는 든든한 선배 뮤지션들의 세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타에는 들국화 출신의 손진태와 시인과 촌장의 함춘호, 드럼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김희현, 그리고 베이스에는 그의 스승 조동익이 참여했다. 심지어 코러스는 박학기, 윤영로, 그리고 장필순이었다. 그것은 동아기획 자체의 힘이기도 했지만, 많은 선배가 김현철의 음성에서 유재하의 감성을 느끼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이기도 했다.
"나의 머릿결을 스쳐 가는 이 바람이 좋은 걸.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이 기분." - 김현철 '오랜만에' 중에서.
그럼에도 이 작품은 오로지 김현철이라는 젊은 신인만의 것으로 다가온다. 베테랑들의 노련함은 피복일 뿐, 중요한 뼈대는 스무 살의 풋풋함, 세상을 보는 소박한 시선과 그로 인한 행복감이다. 첫번째 트랙 '오랜만에'의 첫 소절부터 행복의 포근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춘천가는 기차'는 보사노바 리듬의 편안한 진행이 인상적인 최대 히트곡으로, 정말 춘천행 기차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나른한 휴식과 설레는 마음이 공존하는 기분이 든다. 첫사랑의 기억이 남아있는 동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동네', 마지막으로 자신의 스승인 조동익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형'까지, 가사와 멜로디 곳곳에 김현철 특유의 젊고 세련된 감각이 녹아 있다.
김현철의 등장은 국내 대중음악이 갑작스레 받은 선물이었다. 너무나도 젊고, 재능이 탁월하며, 확고한 자신만의 색깔과 강단이 있었던 뮤지션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1990년 5월,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경색으로 무려 2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음악을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1집 앨범 작업이 그랬듯,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힘을 얻은 그는 2집 < 32°C 여름 >을 발매하며 복귀했다. 영화 <그대 안의 블루> OST와 3집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의 3번 트랙 '달의 몰락'이 크게 성공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김현철을 다시 음악의 길로 끌어들인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