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인> 스틸컷
영화사 진진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노가다들 돈 돈 거리는 거 정말 빡세다. 조금만 늦어도 전화 오고 문자 오고…"
기홍(박기홍 분)은 목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목공소에서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아니라 현장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직접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런 목수. 전문 인테리어 업자처럼 작은 공사들을 맡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고, 나머지 일은 다른 인부들을 불러 해결하는 식이다. 현장에서 직접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힘이 들어서 그런 걸까? 그의 태도는 꽤 거칠다. 함께 일하는 인부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 임금을 제때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다. 직장 부하 직원에게도 이렇게 하대하지는 않을 것만 같다.
이런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자신에게 일을 맡겨준 피아노 학원 원장 아영(이소정 분)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고 퇴근길 마트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게는 순서를 양보하기도 한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모습의 차이가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의 말처럼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직업의 특성상 서로에게 하대를 하고 고성이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걸까?
영화 <괴인>은 인물을 그려내는 방법부터 기존의 영화적 문법에서 탈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한 인물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해 캐릭터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형식으로 인물의 면모를 쌓아나간다. 특정한 사건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게 되는 극의 구조에서도 다소 벗어난 느낌이다. 기홍의 자동차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주어지기는 하지만 이 상황이 영화 전체를 이끄는 동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영화의 선재물에 놓인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고민스럽다.
02.
기홍이라는 인물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앞서 설명했던 것들이 그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행동만 보면 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경험 많은 목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하고 목수 일로 넘어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 정도 경력이면 다른 사람 밑에서 한창 일이나 배우고 있어야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기홍은 벌써 현장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모두 구비해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 인테리어 업자가 아니더라도 자신과 같은 목수들에게 바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자재도 많이 남길 수 있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부풀려져 있는 것 같다.
완전히 거짓인 부분도 있다. 디자인 일까지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훔치고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디자인 작업도 자신이 직접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일감이 부족한데도 자신을 찾는 연락이 많이 온다는 허세도 부린다.
처음 만나는 여성에게 자신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외관 사진을 보여주며 잘 나가는 사업가처럼 이야기하는 건 조금 귀엽게 봐줘야 하는 걸까. 그의 남은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자면 아직도 차고 넘치지만 영화가 처음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괴인'처럼 보인다. 사람의 외면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만, 덥수룩한 수염과 곰처럼 한 덩치 하는 그의 겉모습을 모두 함께 놓고 보면 더욱.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런 그의 모습이 나쁘거나 밉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인물에게서도 악의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 역시 불편하거나 격앙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사소하지만 이상한 일 하나가 그에게 던져진다. 피아노 학원의 시공이 모두 끝난 어느 날, 자신의 작업 차량 천장이 움푹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차량의 블랙박스에서는 누군가 차 위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확인된다. 피아노 학원의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기간 중에 벌어진 일이며, 피아노 학원의 창문으로부터 누군가 도망쳐 나오다 벌어진 사건임이 확실하다. 다만 밤중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블랙박스의 영상 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