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
심오한 질문을 던지려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된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 25일 개봉하여 벌써 73만 명의 관객을 만났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혹평이 압도적이며 에그지수는 69%까지 떨어졌다. 전쟁이란 민감한 소재를 신중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지적과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 가장 난해한 세계관을 구축했지만, 정작 영화 속 설명은 불친절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새롭게 선보인 여성 캐릭터 '히미'는 지브리만의 독보적인 여성상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히미는 자유자재로 불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이 능력으로 위기에 처한 현실 세계의 영혼 '와라와라' 무리를 구하고 앵무새의 습격을 받은 주인공 '마히토'를 구출한다. 히미는 자신의 능력을 오직 위기에 처한 타인을 구할 때만 사용한다.
본질적으로 '불'은 파괴다. 거대한 숲도 불길 한 번이면 꿈틀대는 생명력을 뒤로한 채 잿더미가 되지 않던가. 그러나 동시에 생명과 창조의 힘을 지녔다. 타오르는 불은 따뜻한 온기를 주고 문명의 불씨를 지피며 악한 것을 태우기도 한다. 히미의 캐릭터성은 불에 얽힌 상징성을 관통한다.
히미는 불을 다루는 초능력을 발휘해 세계를 점령하려 하는 악당을 물리치고 주인공과 와라와라 무리를 구출한다. 또한 자신의 동생 '나츠코'가 터부(taboo)에 갇혀 세뇌당하자 모조리 태워 없애버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히미는 주인공이자 자신의 아들인 마히토를 낳기 위해 건물 화재로 죽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미래를 택하기도 한다.
히미는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해 '마히토'와 함께 세상을 구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 캐릭터다. 뭐든지 태워버릴 수 있는 능력으로 세상의 악을 제거하고 끝내 불 속에서 맞이할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아들의 탄생은 포기할 수 없는 히미. 그가 지나간 길에는 그을음이 아닌 희망을 되찾은 세상과 가족이 있었다.
지브리의 또 다른 불꽃, 에보시 고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