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을 통해 운명을 바꾸려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너의 시간 속으로> 포스터
넷플릭스
존재감이 없던 민주
1998년. 고등학교 2학년인 민주는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아이다. 매일 아침 투정 부리는 남동생을 아무 말 없이 깨워주고, 늦잠 자는 엄마의 이불을 덮어주고서야 학교에 간다. 집에서 민주는 티 내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하고 가족들을 돌본다. 학교에서도 민주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말썽을 부리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살갑지도 않은 민주는 늘 혼자서 조용히 지낸다.
그런 민주에게 청각장애로 인해 홀로 지낸 경험을 가진 인규(강훈)와 그의 '절친' 시현(안효섭)이 다가온다. 민주를 마음에 품고 다가간 건 인규지만 민주는 그런 인규를 돕기 위해 다가온 시현에게 관심을 갖는다. 민주의 일상엔 이들로 인해 약간의 생기가 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기마저 막아버리는 일들이 생긴다.
셋이 함께 등교를 하다 지각을 한 날, 민주의 담임 선생님은 민주에게 이렇게 묻는다.
"야, 넌 몇 반이니?"
이후 민주는 부모가 이혼을 운운하며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그때 민주의 어머니는 남동생만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한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존재감 없음을 '실제'로 경험한 민주는 시현에게 "매사가 다 그래.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난 존재감이 없는 거야"(2회)라며 괴로워한다. 자신을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사람들 틈에서 민주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낸다.
인기 많고 활기찬 준희
그러던 중 사고로 2023년에 살고있는 활기차고 당당한 준희의 영혼이 민주의 몸으로 들어온다. 준희가 된 민주는 너무나 다른 대우를 받는다. 밝고 적극적인 준희를 친구들은 모두 좋아하고, 반 대항 농구 시합에서 활약하자 학교 전체의 '인싸'가 되기도 한다. 민주가 좋아하고 있던 시현도 달라진 민주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을 가져준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존재감을 빛내는 준희를 민주의 영혼은 유심히 관찰한다.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들을 준희가 1998년의 노래를 들으며 꿈을 꾼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나는 준희의 모습은 민주가 꿈꾸던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성격으로 바뀐 자신의 모습을 경험하고 이런 자기를 '이상적 자기'로 설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격만 바뀐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 상상하며 준희와 같은 자신이 되고자 열망했을 것이다.
정말로 깨어나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민주는 준희를 연기한다. 거울을 보고 준희처럼 표정 짓고, 웃어도 보며, 준희의 말투를 따라하며 준희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민주가 준희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은 예전 민주의 눈빛과 표정들을 읽어내고 민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민주 너 무슨 일 있어? 꼭 예전 민주 같다."
"너 성격 바뀐 뒤로 얼마나 좋았는데 그러니까 예전 권민주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이런 말들은 민주에게 자기 자신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시현마저 민주가 준희가 아님을 알게 됐을 때 민주는 크게 절망하며, 자신은 절대 준희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준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니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오늘 1998년 10월 13일에 내가 누군가한테 살해당한다면 난 그렇게 쉽게 잊혀지지 않을거야. 내가 한심하다는 얘기도 안 할 거야. 아니 못하겠지." (12회)
살해를 당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새기고 싶은 민주가 무척이나 안쓰러우면서도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렇다면, 민주야 너 스스로는 너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