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가>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영화의 시작은 재복의 상황을 중심으로 한 노조의 농성 문제지만 영화가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자리는 가족의 문제다. 그렇게 가족을 오래 떠나 있던 아버지를 대신해 현실을 살아야만 했던 두 딸의 이야기가 그의 모습에 드리우는 순간, 영화에 의해 재복의 두 다리를 강하게 붙잡히며 현실로 내던져진다. 대학 예치금 문제만이 아니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는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큰딸의 사정으로 인해, 다시 한번 아버지가 집을 비우게 되면 중학생인 둘째 딸은 혼자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재복이 직시하지 않고 있던 시간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딸의 예치금을 구하기 위해 단기 일자리라도 구해 돈을 벌어보고자 하지만 농성을 했던 지난 5년의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래된 친구 우진(신문섭 분)을 불러 돈을 빌려보고자 하지만, 벌써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온 터라 그의 신용과 평판 역시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보상금을 받아 갚겠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미 재판은 패소로 끝이 났고, 투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다행히 우진이 자신이 일하는 목공방에서 일주일 동안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집으로 돌아와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될수록 '열흘의 휴가'라는 단어의 의미만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휴가라는 단어에는 일정한 기간 동안 행동을 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다시 말하면 지금 잠시 중단되고 있는 농성이 다시 재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재복에게는 집으로 영영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며,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야 함을 말한다.
04.
우진의 목공방에서 발생하는 20살 준영(김아석 분)의 사고는 영화가 오래된 재복의 사건을 통해 말하지 못했던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그 문제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러티브가 된다. 특히 사측에 해당하는 친구 우진도 산재 처리와 치료비 청구에 대한 부분을 처리하기 어려워하고 사고 당사자인 준영 역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히지만, 기어이 나서 중간에 놓여 있는 재복이 애를 쓰는 모습은 현재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그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는지, 투쟁을 하는 5년의 시간 동안 변화를 겪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여기에는 자신은 사측에게 오랜 시간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준영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과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가슴속에 맺힌 그 응어리가 심지어는 그 사측이라는 대상이 자신에게 일자리까지 마련해 준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경미한 사고이기는 하지만 당장 일을 할 수 없는 준영의 자리에 기술고등학교를 다니는 다른 어린 학생이 들어서는 모습은 역시 과거 재복이 회사로부터 쫓겨나던 장면,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을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끔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