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은 레지던트로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가족들을 걱정하고, 이로 인해 일을 그만둘 결심을 하기도 한다.
JTBC
<닥터 차정숙>은 40대 레지던트 정숙(엄정화)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까지 마쳤지만,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현모양처로만 20년을 살아온 정숙. 그녀는 간 이식을 수술을 받은 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고민하다 '정말로 괜찮은 의사'가 되고 싶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이 일하는 대학병원에 들어가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정숙이 변화를 결심한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가족에게서 소외감을 느꼈을 때였다. 간이식 수술을 하고 퇴원한 정숙을 가족들은 마치 '하녀'처럼 대한다. 그러던 중 정숙은 자신을 제외하고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우아하고 완벽했던 나의 아름다운 가족. 그들에게 난 무엇이었을까.' (2회)
즉,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정숙에게 판단의 중요한 기준은 '관계'였던 셈이다. 이후 레지던트로 활약하면서도 정숙은 관계를 중시한다.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들과 좋은 라포를 형성함으로써 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병원에서 고생하는 아들 정민(송지호)을 보며 불쑥불쑥 모성애가 발휘되기도 한다. 고3인 딸 이랑(이서연)이 힘겨워하자 이를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미안해하기도 한다. 5회에는 이랑에 대한 미안함으로 일을 그만두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숙은 자기 자신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책임감을 느끼며 복잡한 마음으로 지낸다.
반면, 남편 인호(김병철)는 판단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정숙에게 간 이식 수술을 해주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는 정숙의 목숨보다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더 생각한다. 남편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해 간 이식 수술을 결심하지만, 어머니와 오랜 애인 승희(명세빈)가 반대하자 쉽게 포기해버린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당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수술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외도를 계속하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 역시 그렇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애인과 가족을 생각하고 배려했더라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애인과 가족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겐 타인과의 관계보다 안정적인 가정과 낭만적 사랑 모두를 성취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의사로 만들고 싶은' 자신의 욕구만을 투사할 뿐, 자녀의 입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책임은 그저 정숙에게 돌릴 뿐이다.
가족이 전부인 유라 vs 욕구 혹은 인정이 우선인 도훈
첩보물과 코미디가 합쳐진 독특한 드라마 <패밀리>에서도 이런 패턴은 드러난다. 유라(장나라)는 당당한 며느리다. 결혼기념일을 잊은 남편 도훈(장혁)에게 화가 나 혼자 여행을 떠나고, 이런 며느리를 시가 가족들은 물심양면으로 돕는다(1회). 시가에서 유라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물로 묘사되고, 가족들은 그녀를 추앙하듯 따른다.
하지만, 이 같은 존중은 '유라'라는 한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의 역할 수행에 따른 것이다. 유라는 가족의 건강과 대소사를 챙기고, 대부분의 돌봄을 제공하며, 가족의 불화까지 해결하는 만능 며느리이자 엄마, 아내이다. 그녀의 일상은 모두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가족(혹은 가족과 관련된 사람)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장면조차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자아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