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퀸메이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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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끼리 모이면 서로 기싸움하기 바쁘다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여자는 여자와 싸울 때 가장 치열하고 재밌다. 여성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또 다른 강한 여성일 뿐, 그러니 여성의 적은 오적 '여성'만이 가능하다.

<퀸메이커>는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인 '황도희'가 인권 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드는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끼리 싸운다. 그런데 <퀸메이커>의 공격 패턴은 여성 혐오적이다. 여자들의 싸움판에 '여성 혐오'의 등장이라니. <퀸메이커>, 이렇게밖에 못 싸우나요?
 
주인공의 각성을 위한 위계 성범죄?
 
 넷플릭스 <퀸메이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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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메이커>의 주인공인 황도희가 처음부터 인권 변호사 오경숙의 편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원래 은성그룹의 더러운 비리를 해결하며 타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냉혹한 인물이었다. 그런 황도희가 각성하게 된 계기는 동료 비서의 자살이다.

그는 은성그룹 회장 사위에게 성폭행을 당하지만, 자신의 과거와 사회적 인식에 의해 꽃뱀으로 낙인찍힌다. 술집에서 일했던 경험이 들켜 '예쁜 몸으로 남자 이용하는 게 직업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고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를 유혹했다고 의심받는다. 결국, 동료 비서는 억울함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동료 비서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드라마임에도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성범죄가 발생한 원인을 두고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그가 방탕한 인물이기에 범죄를 당한 것이라고 합리화하거나 위계를 이용해 가해자가 성폭행하였을 때 되려 피해자가 유혹한 것이라며 '꽃뱀'이라 칭하는 것은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의 모습이다.

그러나 <퀸메이커>는 이러한 현실을 아무런 비판적 의식 없이 재현하였다. 동료 비서의 자살 장면은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는 사회적 관행이나 위계에 따른 성범죄를 재고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단순히 '황도희'를 각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을 정신 차리게 하려고 현실 속 수많은 이들의 상처를 이야깃거리로 사용한 셈이다.

게다가 은성그룹 회장 사위의 범죄 행위를 두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계집질', '스트레스 해소'라 칭하며 그 심각성을 축소한다. 현실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한 누군가의 상처가 드라마 소재로 쓰여도 될까. <퀸메이커> 속 피해자의 죽음은 시청자를 드라마 세상에서 현실로 깨어나게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것  
 
 넷플릭스 <퀸메이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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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메이커>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방식은 여성이 가진 선천적인 특징, 혹은 사회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은성그룹의 '은채령'은 검찰 수사를 받다가 동정표를 사기 위해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찍어 언론에 퍼뜨린다. 예상대로 그를 동정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수유하는 은채령을 향해 젖소 같다고 비꼬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였다.
 
수유하는 여성의 신체를 젖소에 빗대는 것은 여성의 성을 비하하는 표현이자 현실에서도 여성을 공격할 때 사용된다. 수유는 출산한 여성이 겪는 불가피한 행위임에도 그 자체로 존중되지 못하고 사람이 아닌 동물적인 행동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은채령은 드라마상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상무 이사임에도, 수유하는 여성이기에 '젖소'라 불린다.

더불어 <퀸메이커>에서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기 위해 그의 아내가 신는 신발, 옷이 얼마나 명품인지 언급하며 사치스러운 여성이라고 비난하는 장면은 현실 속 여론과 비교할 수 없다. 개인의 소비는 타인이 함부로 평가할 영역이 아니지만, 여성의 소비는 합리적인 비교 없이 무조건 사치스럽고 허영인 행동으로 판단된다.

<퀸메이커> 속 여성들은 여성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신체적인 변화로 공격받고 여성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싸운다. 이는 개인이 가진 능력, 위신과 무관하게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그야말로 <퀸메이커> 속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과 싸우고 있다. 어쩌면 여자의 적은 또 다른 여자가 아니라 자신이 '여자라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운동권 문소리, 냉정한 김희애
 
 넷플릭스 <퀸메이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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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러 아쉬움을 압도하는 건 <퀸메이커>가 보여준 익숙한 배우들의 낯선 모습이다. 김희애, 문소리, 진경 등 이미 유명한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한국 드라마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다. 정의를 위한 인권 변호사 '문소리', 오직 성공만 바라보는 '김희애', 안경 쓴 여성 정치인 '진경'까지!
 
게다가 그들은 사랑에 매달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싸운다. 남자를 위해 살아가지 않고 남자를 장기판의 말로 이용할 줄 안다. 여성들이 권력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퀸메이커>, 앞으로도 여자 배우들이 더는 사랑에 울지 않고 자주 싸우길 바란다.
넷플릭스 퀸메이커 김희애 문소리 여성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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