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자줏빛2일 오전 경기도 부천시 원미산 진달래동산에 진달래가 만개해있다.
연합뉴스
사람들의 마음이란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4월 들어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진달래꽃과 관련된 축제가 열리는 소식이 들리면 신청곡은 주로 '진달래 꽃'에 관한 노래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외국가요를 번안해 이용복이 부른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로 시작되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이 멧등마다'라는 가사 때문에 특히 처연한 '노찾사'의 '진달래'를 지나 이선희의 '진달래 꽃 유채꽃 한 아름을'의 '그리운 나라'로까지 이어졌다.
해마다 봄은 오고 진달래는 어김없이 피어나기에 노래도 봄의 생명력을 따라 계속 살아나 '온 에어'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펴내곤 했다. 그렇게 계절은 시간이 흐를수록 끈질겨졌고, 노래는 더욱더 불멸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해서 봄, 그것도 4월이 되면 따로 선곡 걱정을 하지 않아도 많고 많은 진달래 노래들은 방송을 위한 큐시트 위에서 피어났다, 지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이 유난하게 느껴졌던 어느 해 4월, 록 장르에 녹아들어 새로이 피어 난 진달래는 익히 알아왔고 숱하게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곤 하던 그 진달래가 아니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댈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대 행복하길 빌어줄게요
내 영혼으로 빌어줄게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내가 떠나 바람 되어 그대를 맴돌아도
그댄 그녈 사랑하겠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마야, '진달래 꽃' 가사
교과서를 통해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시인의 의도와는 별 상관없이 여리디 여린 꽃으로만 읽히던 '진달래'가 마야라는 가수의 목소리를 갑옷처럼 입고 언제라도 전장으로 떠날 준비가 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라디오를 통해 이 노래를 흘려보내는 동안 내내 느꼈던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것이었다.
사랑을 보내는 마음에 왠지 소심한 복수의 기운이 드리운 것처럼 보이던 소월의 시였다. 이런 시구가 마야의 힘 있는 목소리에 실리니 전혀 다른 헌화가가 되었다. 마치 나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씩씩한 인간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처럼 들렸다. 궁극적으로는 나는 누가 뭐래도 잘 살테니 당신도 이 꽃길을 걸어가 더 좋은 곳으로 가라는 축복이 돼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마야의 목소리만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삶(혹은 사랑)의 전투력을 장착한 듯했다. 마야가 목소리로 그려낸 진달래꽃은 시에서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 나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는 진격의 꽃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것은 아닐까.
진달래의 꽃말을 아는가, 어쩌면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말 '사랑의 기쁨'이다. 사랑의 기쁨이 불을 댕겨 온몸으로 타오르는 꽃, 그것이 진달래인 것이다. 꽃에는 이념도 사상도 없다. 그렇기에 이로 인한 갈등과 반목도 있을 리 만무하다. 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그 고유의 힘으로 아름다울 뿐이다. 4월도 깊어가는 이즈음 군락으로 피어 있어야만 더 아름다운 꽃 진달래가 일제히 꽃등을 켜든다. 그러니 이 꽃이 피어 있는 동안만이라도 모든 이념과 사상, 갈등과 반목을 넘어 오직 '사랑의 기쁨'만이 이 산하에 충만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