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1집 < Seotaiji And Boys > 앨범 커버 이미지
반도음반
'아이콘'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다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지(Grunge)를 메인스트림으로 옮겨 얼터너티브 록의 부흥을 이끌었던 커트 코베인이 그러했고, 압도적인 음악성과 퍼포먼스,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로 충격을 주며 팝 음악의 판도를 뒤집은 마이클 잭슨이 그러했다.
국내 가요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미친 영향력은 앞서 나열한 이름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단순히 상업적 과업뿐만 아니라 현재 K팝 컴백 시스템을 확립하며 문화에 미친 파급, 시대를 앞서간 패션 스타일은 그들 앞에 붙는 1990년대 젊음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정당한 타이틀로 만든다.
그중에서도 국내 힙합 신에 미친 영향력은 거대하다. 한국어 랩의 역사를 훑었을 때 '김삿갓'을 노래한 홍서범, '슬픈 마네킹'의 현진영 등이 먼저 놓이긴 하지만 힙합 문화를 매스미디어로 가져온 아티스트가 누구냐 묻는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대답에 반기를 들기는 힘들다.
한국 최초의 맙(Mob)
갱스터 문화를 힙합에 대입한 맙(Mob)은 '무리'를 뜻하는 은어로 조금 더 어감을 살려 번역하면 '떼거리'이다. 미국 대중음악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그룹 이름에 '갱(Ga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더 슈가힐 갱(The Sugarhill Gang)이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런 디엠씨(Run DMC),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앤더블유에이(N.W.A) 등이 맙으로서 활동했다. 힙합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1990년대에 이르러 우탱클랜(Wu-Tang Clan)의 영향력이 불어나 크루(Crew)라 불리는 '떼거리' 문화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힙합과 뗄 수 없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적어도 대중적인 한국 최초의 맙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옷 입는 스타일을 통일하고 젊음을 표방해 하나의 목소리를 이끌어냈으며 무엇보다 대다수가 랩으로 동의할 수 있는 사운드를 양지로 이끌었다. 많은 음절을 리듬에 맞춰 나열하는 데에 그쳤던 홍서범이나 현진영에 비하면 서태지는 랩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작법을 구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을 한다는 말을 못 했어/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 버렸어/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어."
"그 미소/ 그 눈물/ 그 알 수 없는 마음/ 그대 마음/ 그리고 또 마음/ 그대 마음."
-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중에서.
어미를 맞추거나 같은 단어를 배치하는 정도지만 유사한 발음을 통해 리듬감을 살리는 라임(Rhyme)에 대한 이해가 가사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소위 비보잉이라 부르는 브레이킹 댄스를 본격적으로 무대 위에 올린 선구자이기도 하다. 서태지는 랩을 적절하게 꾸며줄 수 있는 춤을 찾았고 당시 언더그라운드가 활성화되어 있던 비보잉 신에서 이주노와 양현석을 발굴해 냈다. 3명이 손을 잡아 팀을 이루면서 랩, 패션, 비보잉을 제대로 구사하는 맙이 탄생한 것이다.
힙합적 상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