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 정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앨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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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Indie)는 본래 거대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립'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럼에도 '인디 음악', 특히 '인디 록'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감히 의견을 내보자면 기성 주류 음악 스타일에 반하는 성향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대중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세에서 비롯되는 비범함 정도 아닐까.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1996년 데뷔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들으면 떠오르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고 소탈한 연주, 산뜻한 멜로디와 얼핏 무기력하게도 들리는 보컬 이석원의 매력적인 부조화는 비주류 정신을 내뿜는다. 마치 세상 한가운데 남들과 섞이기를 거부하는 별종, 우리가 소위 인디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원형에 가깝다.
1집 앨범의 다섯 번째 트랙 '생일기분'의 가사가 특히 그렇다. 축하해 주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스무 번째 생일을 보낸 화자의 기분은 행복하기는커녕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명확한 이유도, 원인도 없는 우울한 정서. 그러나 이것은 꽤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대를 자아냈다. 획일적인 규범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작은 반항심과도 연결된다.
범상치 않았던 시작, 악기 다룰 줄 몰랐던 3인조
사실 밴드 언니네이발관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이석원이 PC통신 서비스 하이텔에서 활동하며 현직 음악인들과 거침없는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꽤 유명한 일화다. PC통신에서 모던 록 소모임을 만든 그는 성인영화 비디오 제목을 따 자신이 리더인 가상의 밴드 언니네이발관을 창시했고, 이 '사기극'은 이석원이 KBS 라디오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출연하면서 졸지에 전파까지 타버렸다. 류한길과 류기덕이 각각 키보디스트와 베이시스트로 동참하면서 악기 연주 하나 할 줄도 모르는 3인조가 만들어졌다.
일련의 촌극이 역사가 된 것은 노이즈가든 덕분이었다. 당시 친분이 있던 밴드 노이즈가든의 리더 윤병주의 모습을 보고 '가짜' 밴드를 '진짜'로 만들고자 결심한 이석원은 유철상을 팔이 길다는 이유로 드러머로 데려오면서 밴드 구성을 완성했다.
노이즈가든 윤병주의 특훈은 오합지졸 멤버들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합숙을 통한 연습으로 멤버들은 비약적으로 실력이 발달했고 어느덧 그럴듯한 진짜 밴드가 되어 있었다. 이석원은 세 멤버를 데리고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다시 출연해 '로랜드 고릴라'와 훗날 '우스운 오후'가 되는 'Funny Afternoon'을 선보이며 금의환향을 완수했다. 여기에 기타리스트 정대욱이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며 언니네이발관은 5인조로 데뷔하게 된다.
때로는 모호하고, 가끔은 추상적인 가사 사이 직설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로랜드 고릴라'는 이러한 독보적인 언니네이발관의 서사와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처음 너를 봤을 때/ 네가 하는 일이라곤 남의 흉내 내는 것."
자작곡 대신 커버로 레퍼토리를 채우는 다른 팀들에 대한 이석원의 일갈이다. 하지만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PC통신에 접속해 키보드로 싸우던 음반 가게 사장은 이제 진짜 음악으로 말하는 음악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열등감으로 시작했지만... 정겹게 솔직한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