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의 대표작인 <큐어>(1997)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은 연출과 미장센에 대한 부분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극 중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이들이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상의 안전을 단번에 공포로 치환시켜 버리는 그의 감각은 우리 무의식 속의 불안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동일한 맥락에서 그의 신작 <클라우드>는 영화 <큐어>와 마주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인물을 극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과 범인의 정체를 쉽게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역시 일상의 공포를 건드린다는 점에서다.

영화 <클라우드> 속 요시이(스다 마사키 분)는 Ratel(라텔)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리셀러(Re-seller)다. 상품을 헐값에 구매해 그럴듯하게 포장한 다음 인터넷에 재판매하는 방법으로 차익으로 수익을 구현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수익뿐이다. 상품의 진품 여부나 상태와 같은 구매자에게 중요한 지표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구매자가 그 사실을 알아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팔아버리는 것이 요령이라고까지 믿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익 실현은커녕 재판매를 위해 구입해 온 제품들의 폐기 비용까지 자신이 모두 떠안아야만 한다.

문제는 재판매하는 과정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상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최저의 가격만을 요구한다. 상대의 손익이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

영화의 첫 신, 토노야마 상에게 의료기 30대를 헐값에 판매하도록 강요하는 요시이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그는 판매가보다 원가가 낮은 점을 이용해 합리적으로 가격을 낮춘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특허권과 디자인비 등의 생산비 외의 비용을 고려하면 제품의 상품화에는 원가의 몇 배나 되는 비용이 수반된다. 이렇게 헐값에 받아온 상품이 6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리는 동안 그 아래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02.
"인생을 바꾸는 거야. 돈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될 거야."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리셀러 활동을 전업으로 시작하기 위해 호숫가 근처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그를 향해 있는 명백한 적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위협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주변 상황 및 인물에 대한 불신과 불안의 감정을 인물은 또한 경험하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명확한 위협이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 불안이 내부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직원 사노를 온전히 믿을 수 없도록 위치시킨다거나 제일 가까운 존재였어야 할 여자 친구 아키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의 감정을 자극해 이탈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다.

요시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확인해 가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좋지 않은 예감에서 출발하는 적대심을 가진 존재에 대한 감각은 벽(문) 너머의 존재로, 다시 자동차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동력을 가진 조금 더 명확한 존재로, 마지막에는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존재로 번져나간다.

점진적으로 그 대상이 선명해지도록 유도되는 이 설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이 실질적인 공포로 실현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인터넷과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가상 공간의 존재가 물리적 존재로 전환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영화의 중반을 지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불특정 다수, 요시이를 살해하기 위해 모이게 되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순식간에 시작되고 끝이 나는 관계이자 그저 이해관계에 따라 자발적으로 모인 집합이라고 설명되는 온라인 공간 이용자들의 규합은 특정 대상을 죽이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것이 없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는 정확히 반대쪽에서 제작자나 구매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던 요시이의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그들의 동인이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복수나 사적 처벌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요시이를 쫓는 과정에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도 죄책감이나 슬픔의 감정보다 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 집단의 모습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경계가 된다. 다른 의미로 개인의 목표만을 쫓는 두 집단 사이에 누가 더 비정상인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워지는 측면에서다(요시이 역시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쫓아오는 이들로부터 잠시 벗어난 사이 제일 먼저 걱정하는 일이 판매 상품이다).

영화적으로 이후의 장면들은 '일상에서 폭력과 연관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 결과적으로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극한적인 관계를 가진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04.
영화 <클라우드>는 처음에 이야기했던 일상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점, 요시이는 물론 그를 공격하기 위해 규합한 인물 모두가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중의 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의 감각을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강요하는 흐름의 속도가 아닌 객관적인 사유의 속도에 따라 다시 영화를 따르다 보면 극 중에 쌓인 증오의 크기가 조금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는 하지만, 집단의 광기라는 것이 언제나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설적으로 더 쉽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다.

다만 작은 회사이기는 하나 능력을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제 삶을 이끌고 있던 한 사람이 노력도 없이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고수익 앞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이 타인의 슬픔이나 피해 사실에 무감각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인터넷이나 클라우드 서비스와 같은 익명의 공간으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범죄의 형태를 간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이 분명히 현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감독은 사회와 공동체의 위험한 지점에 대해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그리려고 했던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모든 영화의 첫 시작이 리얼리즘이고, 영화를 출발시키고자 하는 첫 지점이 언제나 '현실은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에 놓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온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현실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반영이 된 것만 같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클라우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 <클라우드>와 함께 영화 <뱀의 길> 두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두 작품 모두 올해 완성한 영화로,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선보여왔음에도 이렇게 여전히 창작에 대한 왕성한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여전히 따라갈 길이 멀다고,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자신이 생각한 것의 일부밖에 달성하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고백한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그런 끊임없는 성찰과 채찍질이 69세의 나이에도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영화 <클라우드>는 그의 그런 면모를 충분히 다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클라우드 구로사와기요시 스다마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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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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