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연말에 개봉했던 <실미도>는 1108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천만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사실 <실미도>는 24편의 천만 영화 중 흥행 성적 22위에 불과(?)할 정도로 천만 영화 중에서는 썩 높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의 천만 영화 역사에서 <실미도>가 빠짐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실미도>가 역대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미도>가 최초의 천만 영화로 인정 받는 것처럼 최동훈 감독과 봉준호 감독, 김용화 감독, 이상용 감독 등은 두 편 이상의 천만 영화를 연출한 '쌍천만 감독'으로 인정 받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극장가에서 최초로 천만 관객 영화 두 편을 연출했던 감독은 따로 있다. 2009년 <해운대>를 통해 천만 감독에 올라선 후 2014년 차기작 <국제시장>으로 또 한 번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윤제균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극장가에서 <국제시장>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단 세 편 밖에 없다.
한국 극장가에서 <국제시장>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단 세 편 밖에 없다.CJ ENM

부산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들

부산을 배경으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역시 2001년에 개봉해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한국영화 최다관객 기록을 세웠던 곽경택 감독의 <친구>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네 친구가 친해졌다가 멀어지고 원수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친구>는 런닝 타임 내내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관객들은 사투리 대사를 불편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산 사투리를 배우면서 영화를 즐겼다.

2009년에는 부산을 배경으로 만든 독립영화 <바람>이 관객들에게 잔잔한 '바람'을 일으켰다. 배우 정우가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원안과 각본을 쓴 독립영화 <바람>은 1990년대 중·후반 부산 지역 실업계 고등학교의 현실을 코믹하고 리얼하게 표현하며 젊은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바람>은 정우 뿐 아니라 황정음,손호준, 지승현 등 훗날 대중들에게 익숙해지는 배우들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다.

"살아있네"라는 유행어로 설명이 가능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역시 부산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건달도 민간인도 아닌 반쪽 짜리 건달과 조직폭력배 두목, 성공에 목 마른 검사 등 여러 인물들이 얽힌 범죄 군상극으로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순 없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은 '싸움 못하는 마동석'이 나오는 흔치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1980년대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변호인>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물론 한편에서는 '좌파영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색깔을 차치 하더라도 <변호인>은 경상도 토박이로 자란 송강호의 사투리 억양이 섞인 디테일한 연기와 스타 배우가 된 임시완의 신인 시절, 고 김영애 배우의 인간적인 연기를 볼 수 있는 수작이다.

다양한 세대에게 통했던 아버지의 이야기

 군사정권 시절에는 부부싸움 도중에도 애국가가 흘러 나오면 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부부싸움 도중에도 애국가가 흘러 나오면 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CJ ENM

웃음으로 시작해 눈물로 마무리되는 '한국형 코미디 영화'의 대표 감독인 윤제균 감독은 2009년 <해운대>를 통해 천만 감독에 등극했다. 전작으로 스케일이 큰 재난영화를 만들었기에 관객들은 윤제균 감독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차기작으로 만들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2014년 대한민국 역사의 격변기를 경험한 산업화 세대의 이야기를 조명한 <국제시장>을 차기작으로 선보였다.

사실 <국제 시장>은 개봉 당시만 해도 타깃 관객층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우려를 듣기도 했다. 극장가의 주 고객인 10~30대 관객들에게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윗 세대의 이야기고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는 극장과 영화관람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공감 가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 배우들의 호연으로 다양한 세대에게 어필하며 1425만 관객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126분의 런닝 타임 내내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오지만 역시 관객들의 눈물샘을 폭발 시켰던 장면은 덕수와 동생 막순(최 스텔라 김 분)이 재회하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 아닐까. 지난 1983년 KBS에서 138일 동안 진행됐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재현한 남매의 상봉 장면은 1950년 흥남 철수 당시 남매가 헤어졌던 장면과 교차되면서 극장 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국제시장>은 N포털사이트에서 9.16점의 높은 관람객 평점을 받은 데 비해 기자 및 평론가 평점은 5.81점에 불과했다. 윤제균 감독이 지금껏 해왔던 '억지감동을 강요하는 신파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였다. <국제시장>은 주인공 덕수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보다는 덕수가 독일과 베트남 등에서 겪은 고생과 희생을 강조하면서 관객들의 눈물을 억지로 끄집어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제시장>은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막순이를 찾은 후 다시 2010년대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다. 물론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 같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은 정치적인 논쟁을 피하기 위해 제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한·일 월드컵 같은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들이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덕수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의형제

 달구는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덕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형제 같은 사이다.
달구는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덕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형제 같은 사이다.CJ ENM

국내와 해외 활동을 병행하던 김윤진은 <국제시장>에서 서독에 간호사로 파견돼 덕수와 결혼하는 오영자를 연기했다. 영자는 덕수가 동생의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베트남으로 떠나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남편을 막지 못한다. 독일에서 처음 덕수를 만날 때 표준어를 구사하던 영자의 말투가 결혼 후 부산에 살면서 점점 사투리로 바뀌는 것은 김윤진의 섬세한 연기 변화였다.

2013년 한 해 동안 천만 영화 두 편에 출연했던 오달수는 2014년 <국제시장>을 통해 자신의 천만 영화를 5편으로 늘렸다(목소리 출연한 <괴물> 포함). 오달수가 맡은 덕수의 절친 달구는 소년 시절에 덕수를 만나 독일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베트남에도 함께 가고 이산가족 찾기도 함께 가는 등 덕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그리고 노인이 된 후에도 덕수와 싱거운 농담을 주고 받는 '평생친구'로 남았다.

드라마와 영화,연극을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에도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게는 < SNL >의 욕쟁이 크루로 인상이 강한 배우 김슬기는 <국제시장>에서 덕수의 막내 동생 끝순을 연기했다.

<국제시장>이 오마주한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도 포레스트가 엘비스 프레슬리와 존F.케네디,존 레논,리처드 닉슨 같은 실존 인물들을 만나는 것처럼 덕수 역시 유명 인물들을 많이 만난다. 어린 시절엔 고 정주영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식당에선 소년 시절의 이만기를 만난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덕수를 구해주는 해병대원은 유노윤호가 연기했던 197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 남진이었다.
덧붙이는 글 지금까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는 28일부터는 새로운 연재 <드라마 보는 아재>가 주1회씩 연재될 예정입니다.
새 연재에도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국제시장 윤제균감독 황정민 김윤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