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인 영화가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어서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펼쳐내고도 극찬을 받는 영화가 있는 것이다. "이야 완전 영화네" 하는 흔한 감탄사는 주로 후자에 따라 붙는다. 삶 가운데 흔히 만나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 멋진 풍광 앞에서 그러한 표현이 터져 나오곤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경험을 영화를 통해 맛보는 건 대중의 자연스런 욕구다. 내 삶이 이미 범상한데 비싼 돈과 아까운 시간을 들여 흔한 이야기를 접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현실에는 없는 이야기, 오로지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사건에 흠뻑 젖어드는 일, 아마도 영화란 매체가 사라지기 전까지 관객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일 테다.

어떤 작가는 이러한 특징을 절묘하게 활용한다. 현실에선 좀처럼 시도할 수 없는 이야기를 영화 안에서 마음껏 펼쳐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대표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같은 것. 현실에 터를 잡고 있지만 다분히 영화적인 이야기. 말하는 이도, 보는 이도 이것이 현실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즐거워지는 작품 말이다. 현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그림 같은 풍광 안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 죽음과 원한, 기적적 성취마저도 아무렇지 않은 무엇으로 그려내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영화 같다고 표현하고는 하는 것이다.

양자탄비 포스터

▲ 양자탄비 포스터 ⓒ 엠레콘


전혀 다른 두 영화가 닮았다고 하다니

"꼭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더라니까."

누군가 건넨 그 말 때문이었다. 전혀 관심 없던 영화 <양자탄비>를 찾아보게 된 이유 말이다. 30년 전쯤이라면 달랐을 테다. 네 글자 한자어를 제목으로 빼어단 홍콩과 중국영화가 한국 극장가를 휩쓸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무심하여 한때는 뜨겁던 것을 차갑게 식혀놓으니 홍콩영화가 내게 갖는 가치도 전과는 전혀 달라졌던 일이다.

그러나 추천은 추천이다. 그것도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작품 사이를 은근히 이어붙인 끈이 있다면야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픈 생각이 들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아기자기한 미술과 영상연출로 주목받은 영화다. 반면 <양자탄비>는 어느 모로 보아도 그와는 딴판이지 않은가. 과거 어느 시점으로 건너가 펼쳐지는 이야기란 점은 같지만, 동유럽과 중국, 또 애드리언 브로디와 주윤발 만큼이나 먼 거리가 있는 것이다. 두 작품의 무엇이 통하여 그는 <양자탄비>로부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리게 된 것일까.

활극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하는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청나라가 멸망하고 군벌이 난립하던 100년 전,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시대, 돈으로 마을 현장 자리를 산 마방덕(갈우 분)이 아내(유가령 분)와 함께 부임지로 향하다 마적떼의 습격을 받는다. 습격을 한 이는 일대에 이름난 마적 장곰보(강문 분)다. 목숨을 함께 나눌 만큼 충성스런 부하들과 기차를 습격한 이들은 호위병을 모조리 처단하고 겨우 살아남은 마방덕과 그 아내를 포로로 붙잡는다.

양자탄비 스틸컷

▲ 양자탄비 스틸컷 ⓒ 엠레콘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로부터

마방덕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현장이 아닌 그 부관인 탕비서라 거짓부렁을 한다. 한편 아내는 현장의 죽음으로 과부가 되었다고 말하니 장곰보는 이들이 부부란 사실을 전혀 의심치 못하는 것이다.

현장이 부임하는 기차를 털어 돈을 뜯으려 했던 장곰보 일당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는 재물은 얼마 없고 빈 주머니의 탕비서와 과부뿐이다. 마적들은 탕비서를 채근해 현장이 본래 부임하기로 한 어청이란 지역에 실제로 가게 되면 큰 돈을 벌 수 있단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하여 장곰보가 직접 현장을 연기하기로 하는 것이다. 탕비서는 그를 보조하는 고문이 되고, 과부가 된 현장의 아내는 장곰보의 아내 역을 하기로 한다.

중앙의 힘이 미치지 않는 어청엔 지역의 실세인 황사랑(주윤발 분)이 군림한다. 그는 현장이 부임한 첫날부터 제 부하들에게 모자 하나를 들려 보내 인사를 대신했을 뿐, 따로 예를 표하지 않는다. 황사랑의 졸개들이 장곰보와 그 수하들에게 텃세를 부리고, 마침내 힘겨루기에 돌입하는 건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저 평범한 마적이 아닌 장곰보가 역시 흔해 빠진 부호가 아닌 황사랑과 대립하는 과정은 <양자탄비>의 핵심적인 줄기가 된다.

양자탄비 스틸컷

▲ 양자탄비 스틸컷 ⓒ 엠레콘


총알이 날아가도록 두라... 그 의미는?

<양자탄비>는 중국어로 적자면 '让子弹飞', 즉 '총알이 날아가도록 두라'는 뜻이란다.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한 이 말은 영화 속 이야기와 맞물려 특별한 의미를 드러낸다. 한 때는 잘 나갔던 과거가 있었다지만 현실은 마적에 불과한 장곰보다. 실제 현장인 것도 아니고 신분을 속여 부임한 사기꾼이니 상황은 갈수록 나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어청은 황사랑의 횡포 속에서 민중이 시름하는 땅이다. 가진 자들만을 털어온 장곰보는 황사랑을 남겨둔 채 물러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민중의 분노를 깨워 그를 끌어내릴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총과 총알을 민중에게 주고,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길 바라는 계략을 짜는 건 그래서다. 양자탄비, 성공률이 채 삼할에 미치지 못할 그 계략에 모든 것을 건 장곰보와 그를 좌절시키려는 황사랑의 대결, 실제 역사 속엔 없는 작은 마을의 만화 같은 이야기가 두 시간이 넘는 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양자탄비>가 특히 흥미로운 건 막무가내로 펼쳐지는 파격적인 이야기다. 처음 탕비서와 현장의 아내가 부부란 사실을 장곰보는 물론 관객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죽어나가고 이제까지의 설정을 뒤덮는 전환이 거듭해 일어난다. 현실과 달리 목숨은 가볍기 짝이 없다. 돈과 권력을 탐하는 이 대신, 이를 아무렇지 않게 내버리고 뜻을 취하려는 이가 당당히 활보한다. 심지어는 승리하기까지 한다.

통상의 영화라면 중요한 것들이 <양자탄비>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평생의 사랑처럼 애달피 슬퍼하던 아내를 마방덕은 금세 잊어버린다. 아내의 목숨값으로 차고 넘치는 돈을 받았다면 된 거라며 어서 어청을 뜨자고 한다.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사실을 아는 관객의 입장에선 민망하기까지 할 정도. 뿐인가. 아내를 두고 따로 사귀었던 다른 여자가 훌쩍 큰 아들까지 데리고 찾아오니, 사람 사는 것이 한 걸음 떨어져 이처럼 그려내면 코미디가 짝이 없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양자탄비 스틸컷

▲ 양자탄비 스틸컷 ⓒ 엠레콘


무엇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가

장곰보가 끔찍이 아끼던 죽은 친구의 아들 또한 덧없이 죽어버린다. 제가 모은 돈으로 멀리 서양으로 유학까지 보내겠다 다짐했던 그 녀석이 황당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으니 장곰보의 삶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복수를 다짐하고 황사랑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략을 마련하려는 장곰보다. 그러나 어느새 죽은 이는 죽은 이로 남겨질 뿐,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이 금세 그 자리를 채워버리는 것이다.

황사랑은 어떠한가. 그토록 증오했던 황사랑을 패퇴시킨 뒤 장곰보가 마주한 현실은 증오나 그 비슷한 무엇도 아니다. 황사랑이 끌어 모은 재물들도 한 순간에 산산이 흩어진다. 목숨줄 길게 가져가려 했던 마방덕은 어처구니 없는 운명을 맞는다. 장곰보의 수하들은 뜻을 이루자 마자 제 갈 길을 간다. 말하자면 <양자탄비>는 세상 무엇도 영원치 않음을 보인다. 모든 것은 흩어지고 사라진다. 물질도 마음도 인간도, 모두 다.

<양자탄비>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총알은 그저 황사랑을 향한 분노이기만 한 걸까. 영원한 것 없는 세상, 멈출 수 없는 시간이다.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도, 가장 못한 것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를 애써 부여잡아봐야 거듭 실패하고 실망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양자탄비, 그저 총알이 날아가도록 두는 것뿐이 아닌가.

더없이 영화적인 영화다. 그리하여 누구는 <양자탄비>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닮았다고 말한 것일 테다. 가만 보니 정말 그러하다. 삶은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비현실적인 동화와도 닮았다. 그러나 그 또한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일 테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발버둥치는 우리네 삶 가운데, 가끔은 이런 조언이 필요한 게 아닐까. 양자탄비, 날아가도록 두라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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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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