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보 마누라 이혼 소송 사건> 포스터
안정인
제목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불이 켜지면 법원 경찰이 나타나 배심원들을 무대 위로 안내한다. 즉, 무대 위는 법정이다. 배심원 맞은편에는 연주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고수를 겸하는 타악 연주자와 함께 바이올린과 건반도 보인다. 창극이다. 이렇게 '창극 법정 드라마'의 판이 깔린다.
<흥보가>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원전을 찾아 읽거나 판소리 완창을 듣지 못했더라도 대강의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니 <흥보가>의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 스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흥보가>는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보와 착하고 우애 있는 아우 흥보 및 그들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형제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다르게 키웠다. 큰아들 놀보는 일찍부터 돈을 벌게 만들었지만 흥보는 글공부를 시켰다. 놀보는 어렸을 때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런 형을 향해 동생 흥보는 문자를 써가며 훈계를 늘어놓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놀보는 흥보와 그의 가족들을 내쫓는다. 벌어오는 것도 없이 착한 척, 아는 척 하는 흥보가 짜증났기 때문이다. 쫓겨난 흥보는 많은 자식들(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판본이나 20명은 훌쩍 넘는다. 이 창극은 아들, 딸 합해서 40명인 판본을 따른다)과 함께 어렵게 살아간다. 그 와중에 흥보의 큰 아들은 장가를 보내 달라고 성화다. 철없기가 아버지 못지않다.
흥보는 자신의 몸을 움직여 돈 벌 생각이 없다. 가난해도 양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먹고살까? 아내가 삯 바느질을 하거나 잔칫집 허드렛일을 돕거나 식모 일를 해서 벌어온 것으로 목숨을 연명한다. 몸을 써 돈을 벌면서 스무 명이 넘는 자식을 돌보고, 살림까지 하자면 슈퍼 히어로 대여섯은 관여해야 할 것 같은데, 이 힘든 일을 흥보 마누라씨 혼자 해냈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흥보는 형의 집에 구걸하러 갔다 흠씬 매를 맞고 돌아온다. 답이 없는 남자다.
흥보는 곡식을 구걸하러 관아에 가서 매를 대신 맞는 '매품팔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선금조로 돈을 받아 흥청망청 써버린다. 돈을 쓸 때까지는 좋았지만, 다음 날 매를 맞을 생각을 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흥보는 매품팔이도 실패한다(판본에 따라 실패하는 이유는 다르다).
어느 화창하고 아름다운 날, 흥보 부부는 다리가 부러져 처마 밑에 떨어져 있는 제비 새끼를 치료해 준다. 몸을 회복하고 건강하게 떠났던 제비가 다음 해 나타나 박씨 하나를 툭 던져 준다. 흥보 마누라는 속은 끓여 먹고 겉은 바가지라도 만들어 볼 요량으로 박씨를 처마 밑에 잘 심고 거름을 주어 기른다.
팔월 추석이 돌아와 동네 사람들 곳간은 넘쳐나지만 흥보 내외에게는 그림의 떡. 두 사람은 지붕에 달린 박을 먹기로 결정한다. 박을 타자 그곳에는 금은보화 및 온갖 재물, 심지어 흥보의 후처도 들어 있었다(야, 제비, 너 이놈!). 흥보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놀보가 달려온다. 흥보는 놀보를 잘 맞이하여 잔칫상을 대접한다.
이후에 이어지는 스토리도 있지만 이 창극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여기서 접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