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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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는 세 쌍둥이의 재미있고 감격적인 재회에서 출발해, 그들의 재회가 중단시킨 '무엇'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 '무엇'이란, 연구대상자들 모르게 진행된 심리학 실험이었으며, 일란성 쌍둥이를 분리입양하는 실험조건을 요구하는 연구 프로젝트였다. 작품의 상영시간은 1시간 37분이다.
그런데 비밀리에 실행된 일란성 쌍둥이 실험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몇 번의 단계가 필요했다. 첫 번째 단계, 세 쌍둥이의 입양부모 여섯 명은 아기들을 분리입양시킨 입양기관 루이스 와이즈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려 했다. 실제로 세 아기는 입양 초기 분리불안 증세를 극심하게 겪었다. 양부모들은 속수무책으로 아기들을 지켜보았다. 만일 그때 아기들이 세 쌍둥이인 줄 알았더라면 양부모들은 아기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든지, 아무튼 더 나은 해결방안을 강구하려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쌍둥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에 아기들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해줄 수도 다독여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속았다는 억울한 마음으로 기획한 양부모들의 집단소송 계획은 이내 좌절되고 말았다. <루이스 와이즈>는 "세 쌍둥이를 한꺼번에 입양시키기 어려웠다"는 원론적 해명을 내놓았고, 법률 전문가들은 소송의 유익이 없다며 양부모들을 주저앉혔다. 시간이 흘러 <루이스 와이즈>는 입양활동을 종료하고 문을 닫았다.
두 번째 단계, 세 쌍둥이는 <루이스 와이즈>의 기록을 토대로 자신들의 생모를 추적했다. 그들의 생모는 출산 직후 아기들을 포기했노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세 쌍둥이의 운명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이들 세 쌍둥이 외에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채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한동안 자라다가 해후한 쌍둥이 사례들이 더 발견됐다(역시 <루이스 와이즈>를 통한 입양). 이같은 수상한 공통점에 대하여 조사하던 중 로렌스 라이트 기자는 수상쩍은 논문 한 편에 주목하게 된다. 그 논문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들의 분리입양은 인간 정신질환의 유전성 관련 생체실험 연구를 위해 신중히 설계된 실험조건의 일부였다. 일란성 쌍둥이는 동일한 유전자를 지녔기에 이들에게 서로 다른 양육을 제공한다면 유전병력의 강약 여부를 추적관찰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 마침내 세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그와 같은 생체실험 대상자 중 한 사례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 쌍둥이 연구는 예일대학 아동발달센터의 피터 뉴바우어 박사가 주관하는 심리학 연구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1960~1980), 세 쌍둥이가 재회한 시점에 해당 연구 프로젝트는 긴급히 종결됐다. 그러나, 연구 프로젝트는 그렇게 종결됐지만(1980년), 연구결과는 30년이 넘도록 미발표 상태다(2018년). 연구는 수행하되, 결과는 비공개! 왜 그랬을까?
연구방법의 비인간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구가 아무리 흥미롭고 의미있고 유익할지라도, 연구대상자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연구는 연구윤리에 저촉되는 까닭에 함부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나치의 잔혹한 생체실험 이후 무겁게 강제되는 연구윤리 규정이다. 이러한 연구윤리 규정에 비추어볼 때 뉴바우어 박사의 연구 프로젝트는 연구대상(일란성 쌍둥이 아기들)이 이유도 모르는 채 평생 겪을 고통에 대해 아무런 배려도 대책도 없이, 연구자의 이익만을 중심으로 하여 설계된 연구임에 틀림없었다.
생체실험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무렵 연구 책임자 뉴바우어 박사는 이미 별세한 뒤여서 만날 수 없었는데, 연구에 참여했던 조교들 두 명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그중 한 명 나타샤 조세프위츠는 이 쌍둥이 실험에서 '유전 vs. 양육'의 요인 중 유전의 강력한 힘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논문이나 저서가 발표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자신의 유전과 태생적 특질을 뛰어넘어 성공하고 싶어하는데, 유전적 힘이 더 강하다는 연구결과를 그대로 발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연구조교 로렌스 펄만은, 자신이 세 쌍둥이의 가정을 각각 방문할 때마다 "다른 집에 너의 형제가 자라고 있어"라는 실언(?)을 할까봐 매순간 긴장했어야 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그것이 '연구 금기사항' 중 하나여서, 그걸 위반했다면 그때 연구직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세 쌍둥이의 생모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는데, 로렌스는 세 쌍둥이 실험을 포함해 모든 쌍둥이 실험이 계획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자녀들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어느 일란성 세 쌍둥이의 재회>에는 세 쌍둥이 중 두 명(바비&데이비드)이 번갈아 등장해 자기들의 기막힌 경험을 소상히 들려준다. 19년 만에 만나 몹시 기뻐했던 것, 셋이 함께 놀러다니며 즐거웠던 사연, 세 양아버지 중 데이비드의 아버지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 청년을 심리적으로 포용해주었던 일, 세 쌍둥이가 동업하는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이 유쾌한 세 쌍둥이를 좋아했다는 사실 등.
그래서 "음, 그런데 왜 유쾌한 청년 세 명 중 한 명, 에디는 등장하지 않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궁금증은 꽤 오랫동안 풀리지 않다가, 한 시간쯤 영화가 흘렀을 때 해소된다. 에디는 요절했다. 헌데 그의 죽음은 사고사나 자연사가 아니었다. 에디는 셋 중 가장 섬세한 성품을 지녔으며, 세 쌍둥이의 재회 자체에 기대가 컸으며, '부벌라(이디시어: 사랑, 포옹, 뽀뽀)'라는 별명을 지녔던 데이비드의 아버지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세 쌍둥이 사이에 다툼이 생겨 동업을 중단했을 때는 에디가 제일 크게 낙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 많았던 '부벌라'마저 돌아가셨다. 결국 에디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생의 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