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컷로버트 혹은 데이빗 (최악의 사기꾼)
넷플릭스
때마침 대학생 청년들이 로버트를 따라 나설 무렵(1993년)은 IRA 폭탄테러가 빈번히 일어나 엠아이파이브 조직원들이 비밀리에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자신을 엠아이파이브의 조직원으로 소개하는 한 남자(로버트)를 만난 대학생 네 명은 그가 향후 자기들을 보호 및 지도해줄 것으로 믿었다.
로버트는 삐끗 잘못하면 너희들이 오히려 폭탄테러 끄나풀로 오인되어 체포될지 모르니 이제부턴 친구도 믿지 말고 나만 따라와라, 강조하며 대학생 청년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었다. 로버트는 청년들의 공포심을 계속 유지시켰고, 두려움을 느낀 청년들은 로버트를 철저히 신뢰했다. 로버트는 이 청년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그들을 크고작은 일터에 위장취업시켜 푼돈을 벌어오게 하거나, 그들이 스스로 자기 집에 연락해 거액의 돈을 송금받을 수 있도록 시켰다. 청년들은 로버트를 완전히 신뢰하였기에 그의 명령이 떨어지는 족족 그대로 순종했다.
로버트는 그들을 데리고 다닌 지 5년쯤 지났을 무렵(1998년경), 상부의 명령이라며 이 청년 그룹을 해체했다. 그때부터는 그들을 따로따로 지배했다. 다행히 남학생 존은 로버트의 마수에서 시나브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여학생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새라는 환경이 열악한 로버트의 은신처에 감금됐고, 마리아는 또 다른 곳에서 로버트와 지내면서 온갖 폭행을 감수하며 임신과 출산을 두 번이나 반복하게 됐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로버트는 또 다른 피해자(킴)를 활용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킴에게 첩보학교에서 훈련받고 있다고 미국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상급단계로 나아가는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도록 거금을 받아내라고 지시했다. 킴은 로버트가 지시하는 대로 수행했는데, 킴의 부모들이 경찰에 협력을 요청했다. 결국 미국과 영국 수사관들이 대대적인 공조수사를 비밀리에 전개해 킴과 함께 공항에 나타난 로버트를 체포할 수 있었다(그때가 2003년이었음).
로버트는 수사관들의 신문에 시종일관 '노 코멘트'로 응했지만, 수사관들은 그를 재판에 넘기는 한편 '캐리'라는 이름으로 강제개명되어 로버트가 들여보낸 집에서 가사돌보미로 숨어 살고 있던 새라를 추적해 찾아냈다. 이때 새라는 로버트로부터 스스로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연 없었던 상태였다.
그런데 이 모든 범죄행각의 주범 로버트는 재판 결과 불법감금, 강제납치 혐의에서 무죄로 판명되었고, 곧 풀려나 자유인이 되었다(2009년). 자유인이 된 그는 얼른 데이빗으로 변신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장차 그의 손아귀에 자청해 들어올 사람을 물색했다. 이때 걸려든 여성이 두 남매를 키우며 즐겁게 잘 살고 있던 이혼녀 샌드라.
현재 샌드라는 자녀들에게서 떠나 오로지 데이빗(이전의 로버트)하고만 살고 있다. 샌드라는 이 다큐멘터리가 공개되기 며칠 전(2022년), 제작진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납치당한 것도 아니고 조종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자율적으로 데이빗과 함께 지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샌드라의 딸 소피, 아들 제이크는 어머니가 데이빗의 거짓말에 속았다고 이해하며,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를 걱정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산마저도 모두 데이빗에게 갖다바쳤으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 소재조차 알려주지 않으며, 필요한 때에 전화연락만 하는 샌드라를 두 남매는 어린 청소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른 지금까지 계속 걱정하며 기다린다.
▲영화 스틸컷<퍼핏 마스터>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말미에서 두 남매는 어머니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고자, 로버트(지금의 데이빗)에게 9년간 감금되어 살았던 새라를 만나러 간다. 새라는 두 남매에게 말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도망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장담컨대 어머니에겐 자유가 없기에(I bet she has no freedom)."
새라의 말을 들으며, 자유가 없으면 자유가 없으니까 자유를 갖기 위해 더 도망치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불현듯 질문이 올라왔다. 상식적으로 생각컨대, 자유를 빼앗은 억압자로부터 도망쳐 벗어나야만 자유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새라는 정반대로 말했다. 자유가 없으면 도망칠 수 없다!
우리말로 자유는 한자어로 표기된 '자유(自由)' 한 가지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로 하나다(독일어 Freiheit, 프랑스어 liberté). 그런데 영어로 자유는 두 개의 단어로 갈라져있다(liberty와 freedom). 이 작품에서, 스톡홀름 증후군과 지독한 무기력증 같은 증상을 보이며 감시자로부터 도망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감시자가 없을 때조차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새라는 'liberty'가 아닌 'freedom'을 말했다. 철학자들이 두 자유의 뜻에 관해 "같으냐 다르냐 비슷하냐" 오랜 세월 동안 논쟁중이라던데, 나는 새라가 'liberty' 아닌 'freedom'을 말한 의도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더불어 자유를 갖기 위해 도망친다, 자유를 갖고 있어야 도망칠 수 있다, 그 둘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저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위즈덤하우스), 해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지식공작소), 환경살림 80가지(2022세종도서, 신앙과지성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