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승객에 대한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 4월 16일 그날 아침'전원구조' 보도가 나왔다는 걸 타고 있던 선박 위에서 전해 들었다. 선수만 남긴 채 모두 잠겨 물살에 떠밀리고 있는 대형 선박에서 언제 어떻게 누가 그 많은 승객을 구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사가 난 맹골수로는 물살이 세기로 이름 높은 내 고향 서거차도의 앞바다다. 구조된 승객들은 서거차도 옮겨진 뒤, 다시 서거차도에서 배로 1시간 이상 걸리는 진도 팽목항으로 이송됐다. 고향 분들에게 전화했다. 대략 몇 명이 구조됐는지. 그리고 참사 해역에서 서거차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진도 팽목항으로 이송된 승객들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초기 '전원 구조 오보'는 사고 해역에서 서거차도로 옮겨진 승객의 수와 이 승객들이 서거차도에서 진도 팽목항으로 이송된 수를 중복으로 계산해 빚어진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 목포MBC 기자 전원은 세월호 참사 취재에 투입됐다. 사고 해역으로, 구조된 승객들이 도착하는 서거차도로, 구급차가 집결한 팽목항으로, 서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목포해양경찰서로, 나머지 2명은 보도부장과 함께 사무실에서 제보와 뉴스특보 등을 챙겼다. 기자들의 초기 취재 내용은 제보 등 창구가 다양한 데다 해경의 공식 확인이 제대로 안 돼 현장별로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었다.
10명이 안 되는 목포MBC 보도부 기자들은 다른 결과물들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오류를 바로 잡아 나갔다. 현장 보도와는 별도로 당시 목포MBC 보도부장 등이 지역MBC뉴스를 총괄하고 있는 부서인 MBC 보도국 전국부에 "전원구조가 아니니 확인하라"고 수차례 알렸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우리의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