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70일 파업. 그 후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시간에도 MBC 구성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좌천당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MBC를,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지켜보면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만 '엠X신'이라는 오명을 끝내고, 다시 우리들의 마봉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시 싸움을 시작한 MBC 구성원들의 글을 싣습니다. 바깥에서 다 알지 못했던 MBC 담벼락 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열두 번째 글은 대전MBC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 이교선 기자의 글입니다.

 6월 21일 대전MBC 사옥 앞에서 열린 '언론적폐청산과 부역자 퇴진을 위한 기자회견'. 이들은 이 자리에서 이진숙 대전MBC사장과 최혁재 보도국장의 퇴진을 촉구했다.
6월 21일 대전MBC 사옥 앞에서 열린 '언론적폐청산과 부역자 퇴진을 위한 기자회견'. 이들은 이 자리에서 이진숙 대전MBC사장과 최혁재 보도국장의 퇴진을 촉구했다.오마이뉴스 장재완

[하나] '알 자리라 대전지사'로 전락한 대전MBC

"요르단이요? 에이 설마..."

2015년 봄, 취재부장은 이진숙 사장의 친분 덕(?)에 요르단 관광청 초청 취재를 가야 할 것 같다며 난감해했다. 이때는 메르스로 온 국민이 공포에 빠져있었고, IS에 의한 요르단 공군 조종사의 화형 소식 등 테러 위협이 산재할 때였다. 요르단은 여행 주의 지역이었고, 대전MBC기자단은 비상 총회를 통해 이를 지적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공주·부여 세계문화유산지정 등과 적당히 의미를 엮은 요르단 기획 취재물은 그럴싸하게 연속 보도됐다.

이후, 대전MBC 기자들 사이에서는 '알 자지라 대전지사가 됐다'는 한탄이 나왔다. 이진숙 사장이 걸핏하면 대전MBC 기자들을 동원해 지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중동 이슈를 취재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기자 시절 이라크 전쟁을 취재해 '중동통'이라 불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4백만 시민이 거주하는 대전세종충남을 담당하는 공영 방송사에서, 지역과 상관없는 취재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추진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지역 이슈와 현안에만 매달려도 부족한 여건인데, 지역과 상관없는, 서울에서 열리는 아랍문화제를 취재하게 하거나, 이라크 외무장관과의 대담이 추진됐다. 심지어 이진숙 사장 본인이 직접 이집트 대통령과 인터뷰까지 했다. 지역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이진숙 사장 개인의 관심과 친분에 따라 뉴스가 제작됐다.

지역MBC에는 지역 언론의 역할이 있지만, 대전MBC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뜬금없는 중동 뉴스가 전파를 타는 동안, 지역에 뿌리 내린 다양한 NGO의 목소리와, 갑을오토텍 사태처럼 중요한 지역 이슈는 실종됐다. 53년간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아온 공영방송사는, 그렇게 '낙하산 사장'에 의해 사유화됐다.



[둘] 김재철의 입 이진숙, 낙하산 타고 대전MBC 사장되다

2015년 3월, 이진숙 사장이 대전에 부임했다. 전임 사장이 대전을 내어 주고 제주MBC 사장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김재철 사장의 입'에서 대전MBC 사장이 된 이진숙 사장에게는 '첫 지상파 방송사 여성 사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이 덧붙여졌다.

보직 간부들이 사장과의 첫 대면 만찬에 이전과는 달리 버선발로 맞았다는 소리가 들렸다. '창피하지도 않나?'라는 우려와, 그래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것'이라는 기대가 교차했다.

순진했다. 이진숙 사장이 누구인가? 김재철 사장 밑에서 MBC 민영화를 은밀히 추진하고, 세월호를 폄훼하는 등 부역의 선봉에 섰던 이다. 서울MBC의 DNA를 뼛속까지 바꿔왔던 1등 공신이다. 이진숙 사장은 망설임 없이 대전도 망가뜨렸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카메라 기자에게 기자 호칭을 빼앗는 것이었다. 이는 이진숙 사장이 서울MBC 보도본부장일 때 실행한 일로, 2012년 파업 당시 선두에 나섰던 영상취재기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였다. 서울MBC는 2012년 파업 직후인 8월, 카메라 기자들이 소속돼있던 영상취재1부 및 2부, 시사영상부, 스포츠영상부 등의 부서를 폐지했다.

이진숙 사장이 대전에 오면서, 대전MBC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전MBC 보도국장은 이 사장의 지시에 따라, 보도국에 나란히 걸려있던 영상부 팻말을 떼어냈고, 뉴스 영상 말미에 등장하는 영상 기자들의 이름 자막을 삭제했다. 보도국장은 "대전MBC에는 카메라 기자가 없다. 편성국 소속 카메라맨이 촬영 지원을 나올 뿐이다"라는 막말로, 카메라 기자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에게는 어김없이 징계가 돌아왔다. 껄끄러운 일부 기자들은 편성, 사업국으로 보내졌다. 대전MBC 보도국에 기자가 10명인데, 그 중 무려 3명이 '감봉 징계'의 칼날을 맞았다. 서울MBC 보도본부장으로 일하며 체득한 거침없는 탄압 방식 앞에, 대전MBC 구성원들은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MBC 카메라 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8일 오전 MBC 영상기자회는 'MBC판 블랙리스트'를 비판하면서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MBC 카메라 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8일 오전 MBC 영상기자회는 'MBC판 블랙리스트'를 비판하면서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언론노조MBC본부

[셋] 아전인수, 후안무치...견고하고도 집요한 카르텔

2015년 11월, 노사협의회 때 사장의 전횡에 첫 브레이크를 걸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대전MBC 민주방송실천위원회 보도 부문 간사였던 나로서는 당연한 문제 제기였다.

권역을 벗어난 해외 취재와 관련해 '지역 어느 시청자가 이진숙 사장 입맛에 맞춘 중동 보도를 의아해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또 촬영·기사 작성·데스킹·영상 편집까지, 모든 제작 과정을 마친 갑을오토텍 사건과 버스 안 원자력 안전회의 아이템 등을 왜 뺐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최소한 그럴싸한 핑계는 대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최혁재 보도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교선씨는 얼마 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오키나와 마무리 캠프 취재 다녀왔죠? 그건 권역 벗어난 것 아닙니까?" "글로벌화, 글로컬화를 주장하면서 우리는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예요. 지역 시청자라고 아랍영화제를 몰라야 하나요? 궁금하다니까요!"

"보도국은 제 책임 권한입니다. 취재기자의 취재 자율성? 그럼 보직자 권한은 없습니까?"

마치 군대 대대장이 신참 소위 훈계하듯 매몰차고 일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 앞에 논리와 설득은 없었고, 자신의 권위와 권한에 대해서만 소리쳤다. 예의나 배려 따위는 기대도 안 했지만, 정당한 비판에 이런 식으로 대응할 줄은 몰랐다. 이진숙 사장은 보도국장의 무논리·막무가내 대응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었다.

[넷] 제작 간섭 지적하자 "내가 수습 때는..."

지역MBC는 10년 차 안팎의 기자들에게 50분 분량의 특집 프로그램 제작 기회를 준다. 보통 2~3분 남짓한 분량의 뉴스 리포트를 제작하는 기자들에게, 관심 아이템을 긴 호흡으로 취재하고 제작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 때문에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맡는 기자들은 큰 책임감과 부담을 느낀다.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다. 때문에 많은 기자들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선보일 수 있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이진숙 사장과 최혁재 국장은 이런 소중한 기회조차 빼앗으려 했다. 지난 3월, 느닷없이 토요일에 출근한 국장은 아침부터 작가와 담당 기자에게 전화해 '출근하라'고 했다. 작가는 임신 중인 데다 시댁에 가던 중이라 어렵다고 했고, 담당 기자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국장은 폭발했다. 다른 기자들에게까지 전화해 호통을 쳤다. 방송까지 3주나 남았는데 최 국장은 "방송이 내일모레인데 뭐 하자는 거냐"며 난리를 쳤다. 지난해 한화 이글스와 김성근 감독을 다룬 다큐멘터리 <야신의 기적>을 제작하며 겪었던 정신적 충격이 되살아났다. 최 국장이 갑자기 토요일에 출근해 근무 열기를 불태운 이유는 뻔했기 때문이다.

슬라이드  2013년 3월 26일, 이진숙 당시 MBC기획조정본부장이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2013년 3월 26일, 이진숙 당시 MBC기획조정본부장이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권우성

이진숙 사장은 취임 후 특집 프로그램 사전 시사회를 실시했다. 이전에도 잘 만들어졌는지, 국장의 데스킹 과정은 있었다. 하지만 이 사장의 시사회는 달랐다. 작은 아이템까지 하나하나 간섭했다. 시사회를 빙자해 프로그램을 '분' 단위로 트집 잡았고, 수정을 지시했다. 대전MBC에서 제작되는 모든 콘텐츠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자기 눈높이에만 맞추려고 했다.

이는 당연히 제작자의 제작 자율성 침해로 이어진다. 이런 일은 이 사장 부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사장의 세심한 간섭 탓에, 자율적이고 창의적이던 조직은 3년 만에 잔뜩 얼어붙었다. 하지만 국장은 이 사장의 요구에 맞춰 극성을 부렸다.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는 국장의 충성심에, 애먼 기자와 작가가 느닷없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4월 노사협을 통해 이런 과도한 제작 개입에 대해 지적했다. 하지만 이진숙 사장은 "기자들의 인식이 놀랍다"고 했다.

"기자들의 인식이 놀랍네요. 제가 수습 때는 단신 기사 잘못 썼다고 선배한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30분간 듣고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이 반응에 더 놀란 것은 대전MBC 기자들이었다. 2017년에, 198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벽 대고 말하기'였다.

[다섯] 보복 징계·전보·인사고과... 그래도 싸운다

보도국장은 앞장서 후배들을 징계했다. 전 노조 민실위 간사, 전국MBC 기자회장을 지낸 안준철 기자에게 2년 연속 D의 저성과자 낙인을 찍고는 임금을 깎았다. 나는 지난 4월 노사협의회 직후, 후배 이승섭 기자와 함께 '근무 태만, 지시 불이행'으로 '감봉' 징계 된 뒤 홍성지사로 기습 발령됐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진숙 사장의 방송 사유화와 보도 논조에 극렬하게 저항한 '전력'이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대전MBC 기자회는 지난 5개월간 3차례 성명을 내고, 50여 년 대전MBC 역사상 처음으로 민실위 보고서 '촛불& 중동... 부역자의 중동사랑.. 곁불된 촛불 뉴스'를 발간해 이 사장의 방송 사유화를 꼬집었다. 언론노조 MBC본부 대전지부도 지난 5월부터 사내외 집회를 열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다.

"부당 징계로 꺾였던 대전 MBC의 허리, 두 열정 가득한 기자의 펜이 지역의 더 낮은 곳, 더 부조리한 곳도 용기 있게 파헤칠 수 있도록. 반환점을 부디, 꼭, 더 늦기 전에 마련해 주십시오."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징계 구제신청 최후 진술은 이렇게 마쳤다. 결국 사측의 부당징계로 인정받았지만, 기쁨보다는 서글픔이 컸다. 50년 넘은 지역 언론이, 낙하산 사장에 의해 불과 3년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망가지다니...

방송 사유화에 지역 의제가 실종되고 구성원들이 피폐해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진숙 사장과 공영 방송을 망가뜨리며 부역한 인간들은 이제 오히려 제 책임이 아니라고, 전전긍긍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른 것은 그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싸운다.

"낙하산 사장 이진숙은 사퇴하라! 후배 등에 칼 꽂은 부역자 최혁재를 처벌하라!"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을 위한, 지역 MBC 동료들의 경위서" 영상에 참여한 대전MBC 이교선 기자.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을 위한, 지역 MBC 동료들의 경위서" 영상에 참여한 대전MBC 이교선 기자. 전국MBC기자회

* 이교선 기자는 2004년 대전MBC에 입사해 사건과 세종시, 정치 등을 두루 취재했습니다. 촛불 집회와 관련해 올 초 '용기를 낸 막내 기자들을 위한 지역MBC 동료들의 경위서' 동영상에 참여해 전국 최초로 '주의 각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올 4월 노사협의회 직후 후배 기자와 함께 '근무 태만, 지시 불이행'으로 '감봉' 징계 된 뒤 홍성지사로 발령됐고, 이 징계 건이 이진숙 사장 퇴진 운동을 촉발해 5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봉 징계는 최근 충남지방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징계로 인정받았고,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청구를 포기했습니다.

MBC 대전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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