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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독 오래달리기엔 젬병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오래달리기만큼은 언제나 거꾸로(?) 수위를 다투곤 했었다. 그래서 언제나 이맘때 찾아오던 체력장을 늘 두려워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운동장을 달음박질 칠 때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심장박동 소리가 신경에 거슬리는 것은 물론, 오금이 저릴 정도로 그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게 그 때는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무척이나 철이 없었던 나는 이것은 모두 아무런 기능도 없는 내 신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에어’가 장착된 신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새털처럼 가볍게 해주지 못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어쩌면 당시 올림픽에 나와 금색 런닝화를 신고 트랙을 휘젓던 마이클 존슨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천국의 아이들>은 ‘신발’을 둘러싼 가슴 찡한 우화다. 몸이 아픈 엄마의 심부름으로 장에 나온 착한 알리는 동생 자라의 하나뿐인 구두를 수선하고 오는 길에 잃어버리고 만다. 집에 새 신발을 살 여유가 없다는 생각과 무서운 아빠에게 혼날 걱정에 알리는 거리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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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신을 신발이 없는 동생 자라와 알리는 궁리 끝에 신발을 교대로 신고 가기로 약속한다. 오전반인 자라가 학교가 파하자마자 알리의 신발을 꺾어 신고 달려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급하게 오는 도중에 신발을 도랑에 빠뜨려 울음을 터뜨리는 자라의 모습에서는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탄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자라는 전교생이 모인 학교 운동장에서 잃어버린 구두를 신고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하고는 알리와 함께 그 아이의 뒤를 밟게 된다. 앞못보는 아버지를 둔 가난한 그 아이의 집을 숨어서 들여다보는 두 남매를 돌아서게 하는 것은 바로 가난 때문.

며칠 후, 알리는 3등상에 새 운동화가 상품으로 걸려있는 어린이 마라톤 대회에서 꼭 운동화를 타겠노라고 동생 자라에게 약속한다. 오로지 3등을 목표로 참가한 알리의 표정은 완주를 목표로 출발선에 선 내 표정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말하는 ‘천국’은 어떠한 곳일까. 그것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과감히 소중한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회이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 갖지 않아도 밝게 웃을 수 있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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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그 흔한 빈부격차나 가난에 대한 고달픔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위를 흐르는 소박한 마음들이 모여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꾸민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구축해놓은 ‘착함’ 이란 영화의 대부분이 따르고 있는 ‘노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따뜻한 온정으로 차고 넘친다.

정원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잘 사는 동네에서 일거리를 찾는 알리. 늘 행복해 보이는 그 곳에서 사는 아이에게 외로움을 발견한 알리는 일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로 내려오는 그 넓은 길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내려온다.

특히 이 영화를 꾸려가는 후반부는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꼭 3등을 해야 하는 알리와 순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엎치락뒤치락 하는 아이들을 굳이 슬로모션으로 잡아챈 까닭도 바로 긴장의 완급을 조절하기 위한 감독의 계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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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아이들의 경주와 잃어버린 구두 때문에 눈물짓는 동생 자라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영화는 가장 절실하고 때 묻지 않은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그것이 <천국의 아이들>에서 얻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학창시절 나를 새털처럼 가볍게 해주리라 굳게 믿었던 ‘신발’과 헐떡거리며 운동장을 같이 뛰었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닌데, 영화 속의 알리처럼 다 떨어진 신발로도 달리기를 곧잘 하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2003-09-23 10:0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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