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네마서비스
고등학교 때 책상 서랍 밑으로 몰래 꺼내보던 <삼국지>는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와 조조는 영원한 ‘맞수’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한(漢) 왕조의 후손이라는 사실밖에는 없었던 돗자리 장수 유비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식조차 버리기를 서슴지 않았던 지략가 조조 사이에서 교집합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 쪽이 갈대의 유연함이라면, 다른 한 쪽은 뿌리 깊은 소나무의 강인함이다. 그러나, 유비가 가진 유연함은 번번히 조조의 강인함을 깨뜨렸다. 그는 죽을 때까지 조조의 명민한 지략을 그의 유일무이한 무기인 정통성과 온화함으로 앞질렀다.

대개 ‘적’(敵)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에는 반대적 성격을 지닌 사물 혹은 인물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게 작용한다. 앞서 이야기한 유비와 조조의 예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공공의 적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투캅스>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의 서술론은 <공공의 적>에 이르러 이러한 논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공공의 질서, 규범, 전통적인 관습 등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를 위협하는 존재에 대한 적법한 응징. 감독은 그 해답을 공공의 적으로 공시되고 있는 패륜아만큼 부패한 형사를 등장시킴으로서 완성하고 있다.

전직 권투선수인 형사 강철중(설경구 분)은 범인에게 아내를 잃고 삶의 궤적을 조금씩 이탈해 나간다. 비 오는 한밤, 잠복근무 중이던 철중은 부모를 살해하고 황급히 현장을 빠져 나가려던 펀드매니저 조규환(이성재 분)과 맞닥뜨린다.

일주일 뒤, 칼로 난자당한 노부부의 시체가 발견된다. 철중은 살해 당시 쓰였던 칼을 떠올리며 살해된 이들의 아들인 규환의 미심쩍은 동태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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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정재형은 강철중이란 캐릭터를 두고 “소시민적 이미지와 가공되지 않은 부패형사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불순한 캐릭터의 전범”이라고 말한다. 더운 여름날, 규환을 감시하기 위해 무작정 잠복에 들어간 철중은 가게에서 500원짜리 생수 한 병을 산다. 냉장고에 있던 생수병이 식으면서 다른 생수로 바꾸려는 그와 가게 여자와의 다툼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유유히 사라지는 규환의 모습과 민중의 지팡이임을 거듭 강조하는 철중이 중첩되면서 감독의 전작 <투캅스>와 같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해낸다.

요컨대 <공공의 적>이 보여주는 현대적인 코드에는 최근 개봉되었던 <와일드카드>가 배태되었던 형사물의 규범을 철저히 위반하는 데서 그 폭발력이 배가되고 있다.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야비한 엘리트와 그와 비견될 만큼의 부패한 형사의 대립관계는 앞서 이야기한 ‘적’의 개념과는 달리 처음부터 승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끝끝내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샤워 도중 자위하는 모습과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규환의 생활은 앞으로 진행될 그의 이중생활(성격)에 대한 은밀한 암시다. 하지만, 철중에게 머무르는 카메라는 시종일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몇 백원뿐인 은행 잔고에 고작 볼펜 한 자루 굴러다니는 깨끗한 책상 서랍, 무능력하다시피 한 그의 전력을 대변하듯 그를 몰아대는 반장에게 보란 듯이 검거해온 녀석을 다른 죄목으로 둔갑시키는 태연자약함은 철중의 '소시민적' 나르시즘을 묘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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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인물이 서로 나누어 가지는 ‘벤다이어그램’에서 유일하게 교집합을 형성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폭력’이다. 그들은 방법은 다르지만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마구잡이로 전기톱을 휘두르는 놈들에게 전기톱으로 응수하는 철중이나 옷을 더럽힌 사람에게 기분 나쁘게 웃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칼을 휘두르는 규환의 모습은 인간 내면에서 실존하는 응어리진 억제력을 분출하는 가장 과격한 행동이다.

그러나, 분격한다고 해서 그것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우리 영화의 서사구조에 유행처럼 번진 ‘조폭’ 신드롬은 폭력을 휘두를 수 없는 현대인의 의식 구조에 ‘헐크’가 가지고 있었던 잠재적인 자아를 선동했다. <공공의 적>에서도 이러한 점이 등장한다. 적어도 ‘착한’ 영화는 아닌 것만은 분명해졌다.

바꾸어 말하면, '폭력은 폭력으로서 제압한다'는 말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물리적, 정신적 폭력으로 말미암아 <공공의 적>이 내던지는 메시지는 그렇기 때문에 한없이 거칠어 보인다.
2003-09-06 11:1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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