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림축구> 포스터
ⓒ SKC
어제 밤, 도쿄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나 보다. 한창 한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그곳에서 올림픽 전사들은 숙적인 일본을 무찌르기 위해 열심히 뛰고 또 뛰고 있었다. 작년의 그 열정적인 월드컵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듯 집집마다 응원소리가 요란하였다.

후반전이 다 지나도록 스코어는 1:1. 이쯤 되면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혜성처럼 나타나 골을 넣게 마련인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 슛돌이라도 있었다면 좋으련만!’ 탄식이 절로 나오는 밤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포츠는 승자나 패자를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초호화 군단 레알 마드리드도 무명의 팀에게 일격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다. 특히 축구는 어디로 굴러 갈지 모르는 공의 카오스적인 궤적 때문에 쉽게 승패를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여기 그 상식을 깨는 팀이 있으니, 바로 주성치가 이끄는 ‘소림축구단’.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하며 자유자재로 공을 다루는 이들 앞에 다른 팀들은 주눅이 들 법도 하다. 소림사에서 무공을 연마한 씽씽(주성치 분)은 다리 힘만은 세계 최고. 가난하고 남루하지만 씽씽의 막강한 다리 힘을 알아본 명봉(오맹달 분)은 그에게 축구단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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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예멤버를 모으는 게 가장 급선무! 씽씽은 과거 소림사에서 함께 무공을 배웠던 이들을 차례로 만나지만, 그들은 모두 외모비관론자, 돈벌레, 청소부 등 사회의 낙오자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독려하고 마침내 명봉의 과거 라이벌이었던 강웅의 축구팀과 일전을 벌이게 된다.

<소림축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인구단’식의 변주곡이다. 행색이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각자의 특기를 발휘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야말로 쿠에르탱 남작이 그토록 주창한 스포츠 정신이다. 그러나, 영화는 ‘주성치’의 영화답게 모든 영화의 법칙을 유쾌하게 거스르고 있다.

홍콩배우 주성치는 거의 모든 코미디 소재를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패러디’로서 관객들의 웃음을 촉발한다. 그러나, 그가 유도하는 웃음에는 언제나 눈물이 주는 페이소스가 있다. <덤 앤 더머>의 짐 캐리가 주는 무미건조함이 아니라, 그가 벌여놓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웃게 만드는 ‘실소’의 미학이다.

공중을 날아다니고, 발에서 불을 뿜는 슛이 나올지언정 그 누구도 그를 탓할 수 없는 것은 과거 주성치가 보여주었던 영화들이 이렇듯 ‘실소’로 가득 찬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림축구단’은 결코 패배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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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뿜는 불꽃슛이나 하늘을 가르며 내리꽂는 초절정 무공 슛 등 하나같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이렇다할 시원한 골 장면을 맛보지 못한 관객들에겐 더없이 좋은 장면이 될 것이다.

특히, <매트릭스>에서나 나왔던 360도 카메라 워크를 그대로 본뜬 화면은 그야말로 뻔뻔스러운 주성치만의 전매특허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지난해 그 열기를 잠시라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이나 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자리에서 들썩거리셨던 분들이라면 한번쯤 <소림축구>만의 신선한 경기를 관전하시길 권한다. 아, 국가대표를 이렇게 내보내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즐겁다.
2003-07-24 14:1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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