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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사망정식'? 임지연이 짜장면을 먹은 진짜 이유

[리뷰]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이 보여주는 여성의 해방감

23.06.25 11:36최종업데이트24.05.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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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화면 갈무리 ⓒ Genie TV

 
남편이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냐고? 처음 '남편사망정식'이란 표현을 접하였다면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겪고도 허기를 느낀다는 건 어딘가 인간답지 않은, 적절한 애도를 거스른 상황이다. 하지만 23일, 트위터에는 '#남편사망정식'이 실시간 트렌드 상위권에 오르며 2만 4000회 이상 공유되었다. 많은 누리꾼이 '오늘 저녁은 남편사망정식을 먹어야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편사망정식'은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추상은(임지연 분)'이 남편의 죽음을 확인하고 홀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 군만두를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에서 비롯되었다. 추상은의 한 맺힌 식사에 사람들이 희열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 남편의 죽음으로 그 여자는 폭력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 배고플 수밖에.
 
임신을 해도 배고프지 않은 여자
 

<마당이 있는 집> 스틸컷 ⓒ Genie TV

 
상은은 남편의 폭력으로 무기력한 인물이다. 가정폭력 신고를 하겠다는 경비원의 말에 다신 이런 일 없을 거라며 도움을 거절하고 남편이 자신을 때려도, 몸부림치기보다 맞은 흔적을 몰래 촬영하는 게 그의 최선이다. 그래서일까, 임신 5개월 차여도 상은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좁아터진 배에서 아이가 잘 자라겠냐고 남편이 비아냥댈 때 힘겹게 떠올린 '딸기'가 유일한 요구다.

그러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고 경찰서에서 그의 시신을 확인하게 된다. 상은은 재차 경찰관을 붙잡고 남편이 죽은 게 맞냐며 묻는다. 너무 편안한 남편의 모습에서 죽음을 찾기 어려운 걸까. 경찰 조사에서 올케가 남편을 '세상 힘들어도 티 낼 줄 모르는 남자'라 칭할 때 그의 시선은 멀리서 짜장면을 먹는 사람에게 꽂힌다.

경찰서를 나온 그는 곧장 중국집으로 향해 짜장면, 탕수육, 군만두를 허겁지겁 먹는다. 남편의 죽음을 묻는 전화에도 "제가 지금 밥 먹는 중이라서요"라고 말하며 끊는다. 임신하고 남편에게 맞을 때조차 배고픔을 몰랐던 그가 지금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입에 음식을 넣고 있다. 그를 향한 폭력이 사라지자, 다시 인간적인 감각인 '배고픔'을 되찾게 된 것이다.

타인과 이야기할 때면 늘 무반응이던 그가 이젠 '밥 먹고 있으니 통화를 끊으라'고 답한다. 상은이 되찾은 건 배고픔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폭력에 당할 수밖에 없는 무력함에서 벗어나 한 사람으로 서 있는 감각을 일깨웠다.
  
'남편사망정식'에 열광하는 이유

'남편사망정식'이 화제인 이유는 상은이 보여주는 여성의 해방감이다. 폭력은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행위이고 이는 상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윤범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상은에게 무언가 선물할 때조차 '이게 뭔지 설명해도 네가 알겠냐'며 바닥에 내던지고 상은을 때리면서도 남의 좋은 집을 볼 때면 '나중에는 저런 집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행복한 미래를 약속한다.

윤범은 상은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 기분이 좋을 때는 상은에게 친근하게 대하며 자상한 남편인 척하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그를 때리고 물건을 던지며 폭력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아내의 감정과 욕구를 고려하지 않는 윤범 앞에서, 상은은 아무렇게나 대하여도 괜찮은 '물건'일 뿐이다. 결국, 상은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으로 어떠한 배고픔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상은이 남편의 죽음으로 폭력에서 벗어나자 게걸스럽게 음식을 해치우는 모습은 그의 고통을 지켜봤던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한 여성이 남편의 폭력에서 해방되어 무감각한 '물건'에서 배고픈 인간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죽음 이후 상은의 얼굴에는 더 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남편에게 맞아도 괜찮다고 하던 아내가 아닌 피로와 권태를 느끼는 인간 '추상은'이 된 것이다.

결코 '남편사망정식'은 한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보거나 남성을 무시하는 말장난이 아니다. 폭력에서 해방된 여성이 다시 허기를 느끼며 사람으로 돌아온 순간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광이다. 미디어 속 여성의 해방은 현실 속 여성들에게도 해방감, 그 너머의 자유를 느끼게 한다.
 
<마당이 있는 집>이 보여주는 여성 서사
 

<마당이 있는 집> 공식 포스터 ⓒ Genie TV

 
드라마 속 상은은 폭력에서 해방되어 자신을 되찾은 여성이라면, 또 다른 여성 캐릭터 '문주란(김태희 분)'은 그 반대다. 그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살다가 자신의 마당에서 나는 악취를 발견하며 원치 않은 균열을 마주하는 인물이다. 상은과 주란의 상반된 전개에 <마당이 있는 집>을 향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커져간다.

배고픈 상은은 앞으로 무엇을 욕망할까, 반대로 주란은 어떠한 결핍을 마주할까. 여성들이 보여주는 서스펜스 스릴러 <마당이 있는 집>에 입성할 순간이다.
GENIE TV 마당이 있는 집 김태희 임지연 남편사망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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