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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째 오후 4-6시 책임지는 '라디오 시대'의 뚝심

[장수프로] MBC표준FM 라디오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23.02.27 17:09최종업데이트23.02.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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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MBC 표준FM 라디오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제작진인 강다미 작가, 박혜지 작가, 박정언 연출, 이윤용 작가, 김동현 연출. ⓒ 이정민

 
"<지금은 라디오 시대>만큼 청취자의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방송이 있었던가. 이건 매체라기 보다, 이웃이라고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옆에 있는 사람. 그게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고 생각한다."(이윤용 작가)

1995년 첫 방송된 MBC의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아래 <라디오 시대>)는 올해로 29년째 청취자의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이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박정언 PD는 <라디오 시대>를 MBC 라디오의 또 다른 간판 프로그램 <여성시대>에 비유하며, "예를 들어 <여성시대>가 함께 울어주는 친구라면 <라디오 시대>는 옆에서 같이 웃어주는 친구같다"고 표현했다.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에서 진행된 <라디오 시대> 녹음 현장에 다녀왔다. 매일 오후 4시 5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시대>는 요일에 따라 코너별로 나누어서 미리 녹음을 할 때도 있다. 이날 진행된 녹음은 '사랑극장, 어느날 사랑이...' 코너였다. "함께 웃어주는 친구"답게 녹음 현장 역시 웃음이 가득했다.

오후 3시쯤 스튜디오에 도착한 DJ들은 간단하게 제작진과 대화를 나눈 뒤 익숙하게 대본을 건네받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본 사이에 DJ들이 던진 농담 한 마디에 갑자기 웃음꽃이 피기도 하고, 효과음 삽입을 위해 녹음을 수정하기도 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 시간여 동안 녹음을 마친 뒤 4시부터는 곧바로 스튜디오를 이동해 생방송이 이어진다. 녹음을 마무리 하자마자 제작진과 DJ들은 일사불란하게 생방송 준비에 돌입했다.

"늘 고증의 작업 필요하다"
 

▲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정선희 DJ, 문천식 DJ, 김영선 성우, 남유정 성우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MBC 표준FM 라디오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금요일 코너인 '사랑극장, 어느날 사랑이..'를 녹음하고 있다. ⓒ 이정민

 
'사랑극장, 어느날 사랑이...'는 1995년 시작된 <라디오 시대>와 함께 긴 세월을 달려 온 간판 코너다. 청취자가 보내는 절절한 러브 스토리 사연을 제작진이 각색하고 DJ와 성우 김영선, 남유정씨가 리얼하고 맛깔나게 재연하는 것. 이날도 제작진들은 인터뷰에 앞서 '사연 속 주인공이 시티폰을 사용했을 법한 나이인가'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정언 PD는 "보내주신 사연을 어떻게 각색하면 재미있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시대적인 설정을 어떻게 하면 들으시기에 편할까에 대한 논의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윤용 작가도 "사연은 보통 짧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DJ들과 성우들이) 재연하기 위해서는 살을 붙일 수밖에 없다. 가장 합리적으로 시대 상황을 표현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시티폰 소리가 그때 들어가도 되나. 늘 고증의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PD 2명, 작가 3명, 엔지니어 1명. 총 6명이 <라디오 시대> 제작진의 전부다. 엔지니어는 스케줄에 따라 매번 바뀐다는 점을 감안하면 <라디오 시대>에만 전념하는 스태프는 5명 뿐이라는 이야기다. 100명도 넘는 스태프가 모이는 TV 프로그램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이지만, 이들은 매일 머리를 맞대고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박정언 PD는 "MBC 라디오는 역사가 긴 프로그램들이 많다. 오래된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전통이나 명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청취자 분들에게 어필을 해야 하는 이중적인 과제가 앞에 놓여있어, 늘 어렵다"라며 말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그날 (방송에 대한) 아이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편이다. 작가님들은 10시부터 저녁 7시~8시까지 원고를 쓰시는데 늦어질 때는 새벽 3시, 4시까지 쓰실 때도 있다. 작가님들이 쓰신 글을 저도 그때그때 확인해야 하니까, (스태프들은) 깨어있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라디오에) 쓰는 것 같다. 방송으로는 15분 정도 나가는 코너지만 그걸 결정하기 위한 회의에 1시간을 쓰기도 한다. 이번주에는 문자 사연 주제를 뭘로 정할지, 어떻게 각색할지 (정해야 한다.) 생방송 2시간 빼고는 거의 다 (제작에) 들어가는 셈이다." (박정언 PD)

라디오는 매일 생방송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되다 보니, 하루 종일 준비한 코너와 대본이 있더라도 그날 생방송 분위기에 따라 정해진 게 완전히 뒤바뀌기도 한다고. 이윤용 작가는 "있는 코너를 아예 날려버릴 때도 있고 없는 코너를 급하게 만들 때도 있다. 모든 것은 그날 방송 상황에 따라 즉각적으로 바뀐다. 저희는 청취자들의 문자 반응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까 모든 방송은 청취자가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전날이었던 20일에는 코미디언 배연정이 출연했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배연정 선생님과 방송 전에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말씀을 잘하시고 (이야기가) 풍부하시더라. 그래서 선생님 출연 전에 작은 코너가 있었는데, 그걸 없애고 바로 선생님과 이야기를 시작했다"라고 귀띔했다. 

언제나 청취자들과 함께 호흡
 

▲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MBC 표준FM 라디오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제작진들이 금요일에 방송되는 코너인 '사랑극장, 어느날 사랑이..'를 녹음하고 있다. ⓒ 이정민

 
청취자 반응이 좋을 때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와 같이 사회적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에도 생방송은 갑작스럽게 바뀔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이태원 참사 당시에는 피해자 애도를 위해 준비한 코너들을 모두 바꾸어야 했다. 박정언 PD는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청취자와 깔깔 웃을 수 있겠나. 그럴 땐 준비한 대본을 날리고 즉석에서 문자를 받고 신청곡을 들려드리기도 한다"라며 "'웃음은 묻어나는 편지'는 저희 시그니처 코너이지만 의도도 웃음이고 결과도 웃음이어야 한다. 그런 시기에 차마 그런 코너들을 방송할 수 없었다. 정규 코너를 한동안 중단하고 사연과 신청곡으로만 진행했다"라고 털어놨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라디오 시대>는 코로나 최전선에 있는 청취자들과 함께 호흡했다. 

"코로나 때는 '자영업자를 돕자'라거나, '마스크를 나눠주자' 등의 이벤트성 코너를 준비하기도 했다. 자영업자 돕기 코너를 할 때는 자영업을 하시는 분이 사연을 보내고, 그 사연을 들으신 청취자 분이 '제가 지금 근처를 지나고 있다. 직접 가보겠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럼 청취자 분들이 직접 가서 영수증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시면 저희는 선물로 보내드리는 식이었다. '마스크를 나눠주자' 할 때도,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마스크 만든 거 보내드릴게요'라고 해서 (MBC로) 보내주시면 저희가 청취자 분들에게 나눠드리기도 했다. 청취자와 함께 고난을 겪었고 더불어 같이 지내왔다. 라디오랑 더불어 산다는 느낌을 (청취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이윤용 작가)

<라디오 시대>가 긴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는 DJ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7년째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정선희, 문천식 DJ는 때론 배꼽 잡고 웃게 만드는 콩트 연기로, 때로는 위로와 공감이 담긴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윤용 작가는 두 DJ에 대해 "두 분 다 정말 솔직하시다. 그래서 라디오를 오래할 수 있는 것 같다. (방송에서) '티격태격' 하는 남매처럼 보이지 않나. 그게 연기가 아니라 진짜다. 정말 가족같은 느낌으로 솔직하게 대해 주신다. 라디오에는 가식이 엿보이면 오래 갈 수 없거든. 그런 면에서 정말 훌륭한 DJ다. 제작진에겐 이런 DJ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극찬했다. 

이어 박정언 PD도 "희한하게도 라디오는 (매스미디어지만) 일대일 매체같은 느낌이다. 이 사람의 목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슴 아픈 사연을 읽을 때, 분노할 때 그 감정이 듣는 분들에게도 뚜렷하게 전달이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데도 가감 없이 끌어 당겨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시는 재능이 있다"라고 말했다.
 

▲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박정언 연출 MBC 표준FM 라디오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박정언 연출. ⓒ 이정민

 
1979년 영국 밴드 더 버글스가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를 발표한 지도 40년이 훌쩍 지났다. OTT, 유튜브 등 콘텐츠의 흐름은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라디오는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28년째 매일 같은 시간 청취자와 만나고 있는 <라디오 시대>의 미래는 어떨까. 박정언 PD와 이윤용 작가는 "가장 착한 친구"로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가 27년 전에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때 다들 제게 라디오는 하지 말라고 했다. 곧 없어질 것이라고. 그런데 여전히 라디오는 존재하지 않나(웃음). 라디오는 강자와 약자가 있다면, 늘 약자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면,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들이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게 라디오의 가장 필수 덕목이자 우리의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싶다. 정의로운 방송을 하고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착한 친구로서 30년 뒤에도 머물러 있고 싶다."(이윤용 작가)

"라디오는 OTT 콘텐츠처럼 몇백억 원을 투자하는 대작도 아니고 화려한 매체도 아니다. 그렇기에 더 부침 없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플랫폼 자체의 하락세는 있을 수 있어도 분명한 것은 사라지지 않을 매체라는 것이다. 누구나 비용을 내지 않고 전파만 잡힌다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통신필수매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라디오 시대> 역시 제작진이 바뀌고 진행자가 바뀔지언정, 사람들은 미래에도 누군가와 일대일로 소통하고 싶어 할 것이고 그런 느낌을 받고 싶어 할 것이다. 아마 영원히 그렇지 않을까.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느낌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정언 PD)
지금은라디오시대 정선희 문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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