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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 엘리어트'...그것은 성장이었을까

[김성호의 씨네만세 67] 다시 보는 '빌리 엘리어트'

15.07.15 11:10최종업데이트15.07.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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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엘리어트 포스터 ⓒ UIP코리아


이 영화,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사랑스럽다. 고난과 편견을 극복하고 마침내 꿈을 이뤄낸 빌리  엘리어트의 성공담은 어느덧 성장영화의 교범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를 본 사람 가운데 수컷 백조 분장을 하고 무대 위를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에 벅찬 감동을 느끼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니 당연한 일이다. 남성성에 대한 강요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꿈을 지켜낸 소년의 이야기는 스스로를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네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댄다.

영화의 배경은 광부 대파업이 있었던 1984년 영국의 한 광산마을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으로 기록된 광부 대파업은 대처 정부의 강경한 진압에 못이긴 광부노조가 현장복귀를 선언하며 일단락된 바 있다. 영화는 이 파업이 한창이던 시절 어느 탄광마을에서 시작된다.

광부인 아버지와 형. 미래가 없는 탄광마을에서 그들은 파업한다. 정부의 와해공작에 속속 배신자가 발생하고 형과 아버지는 강경하게 그들을 막아선다. 한편 빌리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 권투체육관을 찾는다. 체육관 한 쪽에서는 여자아이들이 발레를 하고 있다. 자신이 권투보다 발레에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은 빌리는 어느 날인가부터 발레를 시작한다. 그리고 더없이 매력적인 몸짓을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빌리가 날마다 발레를 한다는 소식이 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 빌리 엘리어트 발레하는 소녀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빌리(제이미 벨 분) ⓒ UIP코리아


'내 아들이 발레 따위를 하다니!'

한 달음에 체육관으로 달려온 아버지를 발견하고 춤을 추던 빌리가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 아버지와 빌리의 말없는 대치. 무거운 침묵을 딛고 빌리는 춤을 춘다. 두 입술을 앙 다물고 결연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다.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 소년의 몸짓과 내 지난날의 경험이 겹쳐진다. 이렇게 멋진 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춤을 추는 빌리를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는 아버지. 파업을 중단하고 탄광에 들어가려는 아버지와 그를 말리려는 형 토니가 광산 앞에서 맞닥뜨린다. 자신을 막아서는 토니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어쩌면 빌리는 발레의 천재일지도 몰라. 그리고 엄마가 계셨더라면 빌리에게 기회를 주었을 거야."

자신이 그렇게도 혐오했던 배신이지만, 그래도.

빌리가 아버지와 함께 왕립 발레단 면접을 보러 가서 춤을 출 때의 느낌을 더듬거리며 말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소름끼칠 만큼 매혹적이다.

"몰라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게 되고. 그리고 사라져버려요.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나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 네, 전기 처럼요."

▲ 빌리 엘리어트 소녀들 사이에서 발레를 배우는 빌리(제이미 벨 분) ⓒ UIP코리아


왕립 발레단에서 온 결과통지서를 방에 몰래 가져다 놓고 빌리가 들어오자 숨죽이는 가족들. 이내 들려오는 울음소리. 참지 못하고 문을 여는 아버지. 그 뒤에 늘어선 할머니와 형. 그들이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는 빌리를 바라본다.그리고 그들을 향해 빌리는 말한다. "합격했어요."

아버지는 마을을 가로질러 달린다. 푸른바다를 뒤에 두고, 기쁨에 겨운 얼굴로. 만면에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그리고.

영화의 결말은 이렇다. 소년은 왕립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성장하고 아버지와 형은 그들의 아들이며 동생이 거둔 성공에 가슴 벅찬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년의 극복일까, 가족의 희생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영화엔 몰락하는 것과 비상하는 것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먼저 무너지는 탄광촌과 쇠락하는 마을이 그려지고 뒤이어 비상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고 소년은 끝끝내 꿈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소년의 성공은 마을을 쇠락으로부터 건져 올리지 못했고 그 부모와 형제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 영화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성공이었을까, 몰락이었을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 빌리 엘리어트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 분)과 춤을 추는 빌리(제이미 벨 분) ⓒ UIP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와 빅이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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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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