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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칭에 있는 한 고급 룸싸롱 입구. 입구부터 수많은 안내도우미들이 도열해 있고 그 안에는 100여명의 '샤오제'(小姐)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모종혁

'따이징'의 하루는 보통 오전 11시부터 시작된다. 오늘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해가 중천에 떠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밤늦게까지 디스코텍에서 친구들과 놀고 마신 탓이다.

@BRI@겉으로 봐서 따이는 늦잠 자는 버릇만 빼고는 능력있고 아름다운 중국 젊은 여성이다. 충칭(重慶)시 장베이(江北)구의 한 퓨전식 레스토랑 지배인인 그녀는 한 달 월급이 4000위안(약 48만원)에다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안에 혼자 살고 있다. 올해 22세인 그녀의 경제적 조건은 같은 또래 충칭 여성들에 비해 무척 풍족하다.

게다가 따이는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출퇴근을 전혀 간섭받지 않는다. 그녀는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지루하면 바로 퇴근할 수 있다.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아예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사장이 자신의 '라오공'(老公, 남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이와 그녀의 남편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그들 부부는 항상 같이 살지도 않는다. 따이의 라오공은 한 달에 네다섯 번 충칭에 들러 레스토랑의 수입을 거둬가고 따이를 품에 안을 뿐이다.

따이는 필자에게 "유치원 교사로 일하다가 작년말 놀러간 술집에서 사업가인 지금의 '라오공'을 만났다"면서 "내 처지가 유부남의 '얼나이'(二奶, 둘째 부인이나 첩)이나 다름없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원하는 것은 모두 살 수 있는 현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부자-외국인-부패관리들 앞다퉈 축첩

1949년 공산당의 신중국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첩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개혁개방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성공한 부자들과 중국에 홀로 온 외국인들이 다투어 축첩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부정부패를 일삼는 중국정부의 탐관들까지 첩들을 두고 있다.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도시인 중국 남부의 광둥성 선전(深圳)시. 여기는 '얼나이'가 처음 등장한 곳이다. 중국 투자를 위해 홍콩, 대만, 동남아 등지의 화교들과 외국인들이 오가고 사업에 성공한 중국인 졸부들이 넘쳐난 선전에는 1980년대부터 젊은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주로 가난한 동북지방이나 내륙지역에서 온 여성들은 선전 곳곳의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적지않은 여성이 물질과 향락에 굴복했다. 혹자는 어쩔 수 없이 혹자는 자발적으로 화교나 외국인의 현지처나 부자의 애인, 정부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후베이(湖貝)촌은 '얼나이촌'이라 불릴 정도로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선전에서 시작된 이 축첩 현상은 오늘날 중국 전역에 만연하고 있다. 부유한 동부연해지역 뿐만 아니라 빈곤한 서부지역과 농촌 소도시까지 얼나이가 횡보한다. 일반적으로 첩이 있는 이들이 한 명의 얼나이만 두지 않는다. 따이징은 "내 라오공은 나 외에 3명의 애인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레스토랑의 지분 일부를 내 몫으로 확실히 돌려놔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 오래된 주택가 안에 있는 한 허름한 미용실. 겉만 미용실일 뿐 실제로는 매매춘 장소이다.
ⓒ 모종혁

남편의 첩 찾아내는 탐정업체까지 등장

작년 11월 미국 LA타임스는 "중국에서 공산당 간부, 정부 관료, 사업가들 사이에 첩이나 정부를 두는 것이 과거 신분과 부의 상징처럼 필수조건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축첩 문화가 기승을 부리면서 남편의 얼나이들을 찾아내는 사설탐정업체들까지 성업하고 있다"면서 "상하이, 둥관, 청두 등 신흥 도시들에까지 '얼나이촌'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홍콩 빈과일보는 축첩으로 인한 또다른 현상을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부정부패를 일삼는 탐관오리들이 첩들의 생계유지와 소일거리를 위해 요식업소나 향락업소 등을 차려준다는 것이다.

빈과일보는 "후난(湖南)성 샤오양(邵陽)시 부시장이었던 따이숭린은 8명의 정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찻집, 가라오케, 마사지업소 등을 차려주었다"면서 "첩을 둔 다른 당·정 간부들도 유흥, 퇴폐업소를 개점하여 샤오양이 서비스업 도시로 발전했다"고 웃지 못할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 5월 중국 관영영자지인 차이나데일리(China Daily)의 기사도 보는 이들을 실소케 한다. 이 신문은 "선전에서 친자확인을 위한 DNA 검사 클리닉이 성업중"이라며 "첩을 두고 있는 홍콩 및 대만인들과 그 첩들이 주고객"이라고 보도했다.

차이나데일리는 "검사신청자의 21%가 홍콩인, 12%가 대만인이고 첩 노릇을 하는 여성들도 적잖이 찾아온다"면서 "검사료가 사무직 직원의 한 달 월급을 웃도는 4~6천위안임에도 자신의 첩이 여러 남자와 교제하는 것을 의심한 남성들과 더 큰 아파트 및 비싼 자동차를 얻기 위해 친자확인서를 받아가는 여성들로 인해 사업 전망이 밝다"고 전했다.

중국 당·정 간부들의 사생활도 갈수록 난잡해지고 있다. 지난 달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9월 실각한 천량위 전 상하이시 당서기가 톱모델, 여성공무원 등 여러 명의 정부를 두었고 손녀뻘의 어린 호텔 직원과 사이에 아이까지 낳았다"고 보도했다.

같은 달 부패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류진바오 전 중국은행 홍콩지사 총재는 10여차례 400만위안(약 4억8천만원)을 들여 정부의 얼굴과 몸매를 첫사랑의 연인으로 바꾸는 성형수술을 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최고위급 군장성인 해군 부사령관 왕서우예 중장은 여러 첩 중 하나를 떼어내려다가 적은 대가에 격분한 정부가 왕 중장을 군당국에 고발하면서 면직당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 논란이 되고 있는 얼나이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사이트.
ⓒ 모종혁

'얼나이' 전문변호사 성업... 권익보호 사이트도

친자확인과 왕서우예 면직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 이익을 취하려는 얼나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얼나이들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주는 전문변호사 사무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가 하면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되어 활동중이다.

베이징 춘샹 변호사사무소를 사무장인 정바이춘 씨는 지난 6월 '얼나이권리보호' 사이트를 개설, 600여백명의 첩들에게 법률적 도움을 주었다. 이 달 11일 젠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얼나이는 사회적 약체집단이기에 그들의 법률적인 권리보호를 위해 사이트를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얼나이 여성들은 기혼남성들과 성관계를 맺고 그들의 재산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미혼 여성"이라 규정했다. 그는 본인은 축첩 현상을 반대한다면서도 "얼나이들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학교수들은 "얼나이들도 법률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는 있다"면서도 "정씨의 활동이 축첩을 금지한 '혼인법'에 어긋나고 얼나이 자체를 합법화하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이트가 가져올 부정적 파장을 우려했다.

한편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주간지인 <난팡주말>은 "정바이춘이 사이트 개설시 자신을 중국정법대학 석사학위를 받은 변호사라고 소개했지만 확인결과 모두 가짜"라면서 "자신은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얼나이들의 사연을 조작까지 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와 달리 얼나이를 적극적으로 직업화 하려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 홍콩 <문휘이바오>는 "축첩 현상이 만연하면서 돈만 많이 주면 계속 남자를 바꾸는 직업 얼나이족이 생겨났다"면서 "이들은 자신의 육체를 돈벌이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매매춘 여성이나 마찬가지"고 보도했다.

수 천년 동안 내려온 축첩 전통이 천민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중국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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