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혁개방과 함께 경제특구였던 선전에서 시작된 '얼나이(축첩)'문화가 이제 중국 전역에 걸쳐 만연되고 있다. 부동산으로 갑자기 성공한 부자들이나 외국 기업인, 부패 관리들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얼나이'문화를 모종혁 통신원이 MBC 'W'팀과 함께 취재했다. <편집자주>
▲ 교제술집에서 만난 직업성 얼나이들. 이들은 경제적 조건에 따라 '칭런'(情人)을 바꾸며 살아간다.
ⓒ 모종혁

8일 동안의 취재를 위해 기자는 5일간 수많은 자료 조사와 취재 대상지에 거주하는 다수의 취재원 및 인터뷰 대상에 대한 여러 경로의 섭외에 들어갔다.

특히 소설 <욕망파티>를 통해서 과거 '얼나이'였음을 커밍아웃한 중견소설가 하오샤오페이(郝曉飛), 중국 네티즌의 우상으로 떠오른 당당한 얼나이 스타 '아전'(阿珍)에게는 여러 경로로 통해서 취재를 요청했다.

관련
기사
사회주의 중국에 '축첩'이 웬말?

처음 취재를 시작한 광둥성 광저우와 선전에 각각 거주하는 두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아전과는 블로그를 통해서 쪽지와 메일을 보내어 여러 차례 메일 접촉이 오갔지만, 그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정식 취재가 끝난 지 하루 뒤 소설가인 하오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기자가 보낸 쪽지와 블로그 방명록에 남긴 글을 그제서야 보았다는 것이었다. 취재 기간 중 <욕망파티>를 발간한 출판사에도 전화를 해서 취재 협조를 구했지만, 하오는 출판사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기자를 당황케 했다.

▲ 과거 얼나이를 했던 경험담을 담은 소설 <욕망파티>를 낸 소설가 하오샤오페이. 그는 자신의 과거에 당당한 견해와 입장을 밝혔다.
ⓒ CCTV 홈페이지
"나보다 더 어린 여성을 찾아 떠난 라오공"

하오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을 "예술가 집안 출신의 베이징 사람"이라며 "<욕망파티>에 묘사한 것처럼 1999년 이혼 후 광저우에 온 뒤 인터넷을 통해 한 출판관련 기업의 사장을 알게 된 후 3년 전까지 얼나이 역할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얼나이가 될 당시 한 달에 수백위안을 벌기도 힘들었다"면서 "라오공(老公, 남편)이 아내가 있는 것은 처음부터 알았지만, 그가 내주는 원고를 간단히 손질만 해도 한 달에 적게는 5000~6000위안(약 60만~72만원)에서 1만~2만위안(약 120만~240만원)을 벌 수 있는 경제적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오는 "어느 친구의 말처럼 그 시절 나는 우리 안의 공작새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라오공과의 생활은 나름대로 행복했지만 그가 나보다 더 어린 여성을 찾으면서 헤어지게 됐다"면서 "라오공과 헤어진 얼마 뒤 <욕망파티>를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얼나이였던 과거가 결코 부끄럽지 않다"면서 "나는 사랑 지상주의자이기에 라오공과 함께 했던 것은 오직 돈만이 아닌 애정의 교류도 존재했다"고 자위하기도 했다.

선전에서 얼나이 관련 소송을 전담하는 주윈더 변호사는 "적지않은 얼나이들은 스스로를 '칭런'(情人, 애인)이라 칭하며 '돈보다는 애정이 있어 라오공과 함께 있는다'고 강변한다"면서 "그러나 이들도 권력있고 돈있는 기혼자를 찾아 함께 지내고 남자가 자신의 경제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주저없이 떠나기에 '직업적 얼나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 딴싱다오 교제술집에서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을,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모종혁
얼나이들의 활동 무대로 변한 교제술집

광둥성 선전시에서 취재진이 비행기를 타고 2시간 40분을 날아 찾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중국 정부의 야심찬 내륙개발사업인 서부대개발의 거점도시인 청두는 서부지역 최대의 소비도시이다.

청두는 오랫동안 쓰촨성의 수도로, 인구 1300만여명이 사는 중국 금융, 전자산업의 메카 중 하나. 세계 500대 글로벌 기업 가운데 300여개 회사가 진출한 청두는 내륙 도시답지 않게 곳곳에 자리잡은 다양한 유흥향락업소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관광지가 많고 물가가 싼 청두에서도 요즘 가장 인기있는 술집은 단연 딴싱다오구락부이다. 1999년 문을 연 딴싱다오는 남녀 쌍쌍이 함께 오는 여느 술집과 달리 전혀 모르는 이성간의 교제를 주선하는 경영방식으로 이름이 높다.

딴싱다오를 찾은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부킹의 대상이 된다. 딴싱다오에 들어서자마자 스코틀랜드풍의 의상을 입은 남자 종업원이 안내하고, 200여평이 되는 술집 안 테이블에 앉으면 이른바 '교제를 주선하는 천사'(交友天使)라는 여자 종업원이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이른바 '교제신청서'에는 자신의 성별·나이·직업·연락처와 원하는 이성의 나이·직업·외모·성격·교제 목적 등을 기입한다. 이 교제신청서를 종업원에게 제출하면 술집측은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이벤트 행사의 중간마다 방송을 통해 또는 전광판의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이 직접 부킹을 주선하거나 부킹의 메신저가 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 "스폰서 역할을 해줄 남성을 찾습니다." 이미 결혼한 기혼 남성도 가리지 않는 결혼소개소가 확보한 여성들의 사진.
ⓒ 모종혁
오직 돈과 향락만을 좇는 직업성 얼나이들

딴싱다오를 처음 찾은 날 밤 기자가 교제신청서를 제출하자 사회자는 기재한 내용을 소개했고 바로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Come… On… No. 10… Ms. Xiao…."

보낸 메시지에 따라 10번 테이블을 찾은 취재진을 맞이한 것은 묘령의 두 젊은 여성이었다. 취재진은 그녀들이 돈에 따라 상대를 자주 바꾸는 직업성 얼나이 여성들임을 직감하고 다음 날 오후 만날 것을 약속했다.

샤오징징(가명)과 왕리(가명)는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취재진이 묵은 호텔의 커피숍을 찾았다. 샤오는 "우리는 올해 24살 동갑으로 같은 대학을 나온 동창이고 현재 유치원 교사와 레스토랑의 직원으로 각각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정해진 기간만 같이 지내줄 수 있는 얼나이가 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제공해주고 일정한 생활비 외에 매달 5000위안(약 60만원)의 용돈을 준다면 바로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왕은 "이전에도 남성을 두 차례 바꾸어 '칭런' 역할을 해주었다"면서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칭런이 나타난다면 서슴없이 떠날 것"이라고 밝히어 취재진을 당황케 했다.

샤오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긴 하지만 더 좋은 생활과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 여러 칭런을 찾는다"면서 "한 남자에 구속받기 보다는 원하는 옷과 물건을 사고 가고 싶은 곳에 놀러 다니며 밤마다 즐겁게 사는 지금의 생활이 훨씬 좋다"고 당당히 말했다.

▲ "남편처럼 성심성의껏 모실게요." 결혼소개소의 소개로 나온 갓 대학을 졸업한 천리핑(오른쪽).
ⓒ 모종혁
"임신해도 보상만 해주면 상관없어요"

돈과 향락에 찌들어 사는 중국 젊은 여성은 샤오징징과 왕리만이 아니었다. 취재진이 같은 날 오전에 찾은 한 결혼소개소. 전날 전화를 걸어 외국인이며 기혼자임을 밝힌 기자는 앞으로 청두에 머물 3년 동안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조건으로 같이 생활할 여대생이나 갓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있는지 물었다.

결혼소개소 덩위친(가명) 소장은 "대학이 갓 방학을 해서 연락이 안 되는 회원이 많긴 하지만 희망자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장담했다. 그는 "금전을 매개로 여성을 찾는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확실히 소개시켜 줄테니 680위안(약 8만1000원)의 혼인소개클럽 가입비를 내라"고 강요했다.

150위안의 선납금을 먼저 지불하고 성사시 나머지를 완납하는 조건으로 물러나오자, 덩 소장은 다음 날 아침 조건에 부합하는 여성을 찾았다며 만남을 주선했다. 결혼소개소 여직원과 함께 약속한 식당에 나온 천리핑(가명)은 대학을 갓 졸업한 유명백화점 사원이었다.

처음에 수줍음을 타는 듯했던 그는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아파트와 한 달 6000위안(약 72만원)의 용돈을 주면 진짜 남편을 모시듯 성심성의껏 함께 지내겠다"고 말했다. 어떤 형태의 잠자리도 함께 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천은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며 "임신시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낙태수술 등 뒤처리만 확실히 해준다면 어떤 요구도 들어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축첩문화의 확산으로 호황을 맞고 있는 푸얼모스(福爾摩思)탐정회사 스민 사장은 "직장·술집·향락업소 등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부패한 관리들과 벼락부자들이 축첩을 나서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중산층 등 사회 전 계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얼나이현상은 가정을 파괴하고 이혼을 낳으며 이로 인한 재산분쟁도 늘고 있다"면서 "탐정업체를 찾는 고객의 절반 또한 배우자의 첩이나 외도를 찾아내어 이혼시 재산다툼을 대비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축첩문화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푸얼모스탐정회사의 스민 사장.
ⓒ 모종혁
친자 확인을 위해 DNA클리닉을 찾는 한국인들

취재진과 함께 동행에 나선 푸얼모스탐정회사의 직원은 "최근 한 여성고객의 의뢰로 촌민위원회 간부이자 공무원인 남성이 첩과 만나는 현장을 쫓고 있다"며 "의뢰 접수후 2대의 차량이 번갈아 추적 대상자를 감시하고 보통 1주일 안에 얼나이나 외도 대상자를 찾아낸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운 좋게 공무원이 시내 번화가에서 한 젊은 여성을 만나 식당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푸얼모스 직원은 "이번 의뢰건은 추적 3일만에 목표물을 발견했다"면서 "2~3일 더 추적하면서 캠코더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세밀히 촬영하고 얼나이 여성의 거주지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얼나이 여성을 쫓는 탐정업체까지 난무하는 오늘날 중국의 축첩문화, 얼나이 현상이 중국인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취재진이 찾은 광둥성 선전시의 한 DNA클리닉 상담직원은 "친자확인을 위해 찾는 고객 중에 외국인들이 적지 않고 그 가운데 한국인들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객들은 남성들이 2/3, 여성들은 1/3"이라며 "남성 고객들은 장기간 자리를 비우거나 출장을 간 사이 얼나이가 임신을 했을 경우 이를 의심하여 자신의 혈육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DNA클리닉을 찾는다"고 말했다.

가파른 경제성장과 드넓은 내수시장으로 블랙홀처럼 외국인 투자를 빨아들여 세계의 공장, 21세기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 사회도덕시스템이 붕괴되고 무분별한 가치관을 지닌 한가정 한자녀 체제의 소황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축첩과 얼나이의 유령은 더욱 강렬하게 중국을 휘몰아치고 있다.

▲ 푸얼모스는 추적대상자를 쫓기 위해 차량 2대와 무전기, 캠코더, 몰래카메라 등 첨단장비를 운용한다. 무전기 바로 위의 차량이 다른 푸얼모스의 차량이고 왼쪽에 백 헤드라이트를 켜고 주차장에 들어서는 차량이 촌민위원회 간부가 탄 차량이다.
ⓒ 모종혁

덧붙이는 글 | 취재원의 신변보호를 위해 기사 내 일부 사진의 인물 얼굴을 지웠습니다.


태그:#축첩, #르포, #중국, #호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