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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월 25일부터 스페인을 여행하여 쓴 글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중해 지역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여행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세계사의 용광로 지중해를 향한 여정

한 차례 한파와 함께 찾아온 눈이 아직 창밖의 들판에 잔설로 남아 있었다. 2024년 청룡의 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말, 한국을 떠나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하니 차가운 한국의 날씨에 비해 봄날 같은 훈훈함이 느껴졌다. 그 피부로 전해오는 날씨에 대한 감각이 아주 먼 이국땅에 도착했음을 실감나게 하였다.

열네 시간의 긴 비행 시간을 지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열네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다보면 해지는 서쪽을 향해 계속 가기만 하여 해가 지지 않는 느낌이다. 한국과의 8시간 시차 때문에 8시간은 멈추어 서 있었다.
 
비행기 밖으로 내다 보이는 설원의 풍경은 지구가 한 겨울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 비행기 밖으로 내다 보이는 내몽고 지역의 설원 비행기 밖으로 내다 보이는 설원의 풍경은 지구가 한 겨울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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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동안 운 좋게 창밖으로 내몽고와 중앙아시아 산맥의 눈 덮인 설원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스페인은 겨울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지구의 거의 반대편에 와 있는 셈이었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항로는 내몽고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나 흑해와 지중해 위를 날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나는 가는 동안 내내 위성으로 나타나는 비행항로를 지켜보며 지루한 비행시간을 견뎌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지구가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느낌이 든다. 세상이 한눈 아래에 있는 것이다. 비행기의 항로가 흑해를 지나면서 나의 시선은 온통 앞자리 의자 뒤 모니터에 나타나는 위성지도와 창밖으로 향하였다. 혹시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아래 흑해와 크림반도가 보이지는 않을까? 그러나 비행기 아래로는 구름이 잔뜩 끼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중해는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며 고대로 부터 현재까지도 가장 치열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진행중이다.
▲ 세계사의 용광로 지중해 지역 지중해는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며 고대로 부터 현재까지도 가장 치열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진행중이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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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다시 지중해의 해역 위를 날고 있었다. 비행기 아래로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위성지도에는 지중해의 에게 해와 아드리아 해를 지나가는 항로가 표시되고 있었다. 비행기는 프랑스 남부 모나코 아래의 리구리아 해를 지나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지중해를 탐험(?) 해보기로 한 지중해 순례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까지도 신문과 방송의 외신뉴스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야기가 장식하고 있었다. 이제 이웃나라를 한낮에 침범하는 시대는 지났을 것 같은데 아직도 이런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역사는 아직도 과거의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은 흑해도 지중해 문화권 속에 포함된다고 볼 때 모두 지중해 문화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세계사를 통해 볼 때 지중해처럼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이토록 긴 쟁투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지역이 있을까?

어렸을 적 읽었던 그리스 로마신화는 모두 지중해에서 벌어졌던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지중해의 동부 연안에서 시작된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래 이곳은 수없이 많은 문명의 역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다 명멸한 곳이다.

가장 치열한 역사의 현장임을 증명하듯 가까운 현대사만 보아도 1912년 발칸동맹과 오스만제국과의 발칸전쟁, 이 전쟁은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해 고스란히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게 된 배경이 된다. 유럽의 화약고가 된 발칸반도….

지난 1991년부터 2001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보스니아·코소보 전쟁 등 끝없이 진행된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수십만명이 비극적인 희생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때 유럽지역으로 흘러 들어간 난민 문제로 인해 유럽은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중해 동부 연안의 시나이반도 레반트 지역은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이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많은 희생과 난민이 발생하였고 바로 아래 동네인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맑고 푸른 지중해의 바다와 어디를 가도 아름답고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수천년을 이어온 유구한 문명의 역사유산이 산재한 지중해는 왜 이토록 긴 싸움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지중해의 서쪽 끝 스페인

지중해의 서쪽 끝 스페인으로의 첫 여정은 지중해 동부 연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불안한 전쟁으로 인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 아래 정열이 느껴지는 나라, 그래서 스페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투우와 플라멩고 춤, 축구와 같은 것이다. 이베리아반도의 뜨거운 태양아래 지나쳐온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를 느껴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 대한 로망으로 찾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플라멩고, 투우, 축구와 같은 것은 스페인을 대표한다. 플라멩고는 빠른 리듬의 격정적인 춤사위가 펼쳐지지만 노랫가락속에는 웬지 애절함이 느껴진다.
▲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플라멩고 플라멩고, 투우, 축구와 같은 것은 스페인을 대표한다. 플라멩고는 빠른 리듬의 격정적인 춤사위가 펼쳐지지만 노랫가락속에는 웬지 애절함이 느껴진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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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현재를 말할 때 보통 몰락한 양반, 잠자는 사자, 지중해의 태양을 팔아 먹고사는 나라 등 여러 가지로 지칭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스페인 역사의 흥망성쇠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은 15세기와 16세기를 이어가면서 가장 황금기를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로마제국의 영화를 이어받을 정도로 유럽의 거의 전역을 스페인 영토 아래 두었으며, 대항해 시대를 열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식민지를 두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든 것은 스페인 역사의 최고 절정기였다.

스페인 황금시기에 합스부르크왕가의 카를로스1세(카를5세) 때는 모계와 부계로부터 유럽의 각지에서 상속받은 땅으로 인해 로마제국 이래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하였다. 이로 인해 카를로스1세는 가장 많은 왕관을 가진 인물로 기록된다.

이들은 나라와 나라, 왕족간의 사돈네 팔촌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왕가를 이루는데 유럽사를 보면 이러한 왕족간의 비화가 모두 영화로 만들 스토리다. 나중에는 왕족간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러한 근친혼이 가장 성했던 것이 합스부르크가라 할 수 있는데 카를로스1세(1500 ~1558)의 그림사진을 보면 턱이 길게 내려와 있는 주걱턱이다. 이는 근친혼으로 인해 나타나는 유전적인 질병 때문이라 하며 카를로스1세는 말년에 이 같은 근친혼으로 인한 여러 가지 후유증을 앓다가 58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스페인은 18세기 이후부터 힘을 잃기 시작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는데 1898년 미국과의 식민지 쟁탈전쟁에서 패배하여 많은 식민지를 잃고 1936년 스페인 내란과 같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 되기에 이른다. 이때 승리한 프랑코 독재 정권은 1975년 그가 죽을 때까지 39년간을 그의 철권통치 아래 폐쇄된 세계 속에 있게 만들었다.

이 같은 영향 탓인지 현재 여러 방면에서 경제발전의 기틀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1인당 GNP 3만4천달러 정도의 유럽에서는 그리 잘 살지 못하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다. 현재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는 유럽연합에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 네 돼지라고 한다. 한때 세계를 재패한 국가가 오늘날 유럽공동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스페인은 오래전부터 역사문화 자원과 자연자원 등 풍부한 자원 덕분에 현재 연간 7천만이 찾아오는 세계에서 세 번째의 관광대국이다. 세계문화유산도 중국과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아 연간 관광수입만 150조 원에 이른다고 하여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원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스페인은 앞으로도 몰락한 양반, 잠자는 사자일까?

사회 빈부격차가 심하고 청년실업률은 30%에 이른다고 하여 스페인이 유럽의 열강으로 두각을 나타내기에는 멀어 보인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물려받은 많은 문화자원과 풍부한 인적 자원이 스페인의 미래를 밝게 해주리라 믿고 있다.

태그:#스페인, #지중해, #몰락한양반, #카를로스1세, #플라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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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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